선승들은 깨달음을 묻는 제자에게
棒이나 喝을 안겨주거나,
아니면 아예 주먹질을 하는 등의 방법을 썼다.
그도 저도 안될 때에는 示法偈를 남겼는데,
그 깨달음의 세계란 것이 워낙에 미묘하고 알기 어려운 것이어서
구체적인 설명 대신에 앞서 본 것과 같은
해괴한 상징과 비유를 동원하여 그들의 悟性을 열어주려 하였다.
그밖에 도를 깨닫는 순간의 느낌을 노래하는 悟道頌 같은 것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비유와 상징의
화법으로 전달하려 하였다.
禪의 사유와 詩의 방법은 이 지점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고려 때 선승 景閑은 〈祖師禪〉이란 글에서
시와 선이 만나는 지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達摩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면,
"아득히 강남 땅 2,3월을 생각자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 향기롭네.
遙憶江南三二月, 澝嘑啼處百花香"라고 대답한다.
또 스님이
"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대답하기를,
"뉘엿한 해에 강과 산은 곱기도 하고,
봄 바람에 꽃과 풀은 향기롭구나.
遲日江山麗, 春風花草香"라고 한다.
또 이르기를,
"산 꽃이 활짝 피자 비단만 같고,
시내물은 쪽빛보다 더욱 푸르다.
山花開似錦, 澗水碧於藍"라고도 한다.
이것을 묻는데 저것을 대답한다.
도무지 요령부득의 東問西答이다.
그러면서도 聲東擊西, 指桑罵檜의 통쾌함이 있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