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이당 면호 에게 답하다[答趙怡堂 冕鎬][2] |
듣건대, 계견(鷄犬)과 도서(圖書)를 강 건너로 옮겨올 뜻이 있다 하니, 이웃을 맺는 기쁨을 이룰 수 있겠기에 날로 그 소식만을 기다립니다. 덧없는 인생의 말년의 좋은 계획이란 바로 쉽게 가지지 못하는 것인데, 이렇게 좋은 소식을 받았으니, 그렇게 된다면 파천황(破天荒)을 이룰 수 있고, 흉금을 털어놓고 서로 담소를 나눌 수도 있고, 천맥(阡陌)을 거닐면서 두 지팡이가 머리를 나란히 하고 두 나막신이 앞축을 나란히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석으로의 즐거움이 어찌 방 참군(龐參軍)과 유 주부(劉主簿)에 비유할 뿐이겠습니까. 과연 정한 계획을 변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산빛은 밥을 지어먹을 만하고 시냇물은 떠마실 만도 하니, 또한 의당 오석산(五石散)을 복용하여 질병이 갑자기 나아버린 기쁨보다 더 기쁠 것입니다. 광릉(廣陵) 구경은 기다릴 것이 없거니와 또 다른 데는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음에랴.
즉시 깊은 은혜를 입었으나 다만 여기에 대한 서신은 한 글자도 보지 못하였으니, 장차 현(玄)이 돌아오는 때를 기다려서 방편대로 하시렵니까? 늙은이의 회포가 매우 초조하고 갈 급함을 느낍니다.
짧은 연구(聯句)는 이에 얼어붙은 벼루를 입김으로 불어서 한 번 시험해 보았으나, 사자(使者)를 세워 놓고 신속하게 써보려 하니, 젊은 시절과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그러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어렵스레 햇빛 아래서 잠깐 몇 말씀을 적고 아직 다 말하지 않습니다.
시(詩) 가운데에서 무릇 난정(蘭亭)을 말한 곳에는 모두 소릉(昭陵)의 고사(故事)를 인용하였으니, 이는 대단히 합당치 않은 듯합니다. 지금 난정의 계사(禊事)를 하는 것이 소릉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존십(尊十)의 첫머리 연구(聯句)는 극히 좋아서 비록 그 글 가운데 가장 잘된 것이라고 하여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직 '옥갑(玉匣)' 두 글자만은 세속 따라 오르내림을 면치 못한 것이니, 완전한 구슬의 티가 되었습니다. 나의 천견(淺見)으로는 '비궤(棐几)' 두 글자로 고치는 것이 더 나을 듯한데, 뜻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주D-001]방 참군(龐參軍)과 유 주부(劉主簿) : 진(晉) 나라 때 고사(高士)들로서 도잠(陶潛)과도 교의가 두터웠던 참군(參軍) 방통지(龐統之)와 시상령(柴桑令) 유정지(劉程之)를 가리킨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2]오석산(五石散) : 단사(丹砂)·웅황(雄黃)·백반석(白礬石)·증청(曾靑)·자석(磁石)으로 제조한 도사(道士)의 장생불사 약을 말한다.
[주D-003]소릉(昭陵)의 고사(故事) : 소릉은 당 태종(唐太宗)의 능호(陵號). 즉 당 태종이 신하들을 시켜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첩(蘭亭帖)의 진본(眞本)을 취득한 사연과 또는 당 태종이 죽은 뒤에 그 난정첩을 소릉에 순장(殉葬)한 일들을 가리킨다.
[주D-002]오석산(五石散) : 단사(丹砂)·웅황(雄黃)·백반석(白礬石)·증청(曾靑)·자석(磁石)으로 제조한 도사(道士)의 장생불사 약을 말한다.
[주D-003]소릉(昭陵)의 고사(故事) : 소릉은 당 태종(唐太宗)의 능호(陵號). 즉 당 태종이 신하들을 시켜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첩(蘭亭帖)의 진본(眞本)을 취득한 사연과 또는 당 태종이 죽은 뒤에 그 난정첩을 소릉에 순장(殉葬)한 일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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