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질 태호 에게 주다[與閔姪 台鎬] |
산촌의 비가 아침에 개었으니, 아마도 북엄(北崦)의 온갖 꽃망울이 다 터져나왔을 듯하다. 그 옛 비에 내 옷 적시던 일이 언뜻 생각나고, 옛 이끼에 내 나막신 자국 박히던 것도 기억이 났는데, 때마침 보내온 서신을 받아 보니, 더욱 내 마음이 멀리 미쳐가는 것을 감당치 못하겠다.
범사도(泛槎圖)를 이렇게 보내주니, 노안(老眼)이 번쩍 뜨인다. 이것을 가지면 수일 동안 무료함을 달랠 수 있겠다.
《예운(隸韻)》은, 처음으로 예서(隸書)를 배우는 자들은 결코 이것으로 입문(入門)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필력이 익숙해져서 세인(世人)의 평가를 받은 다음에 글자를 주박(湊泊)할 수 없는 경우에만 부득불 한번 그것을 펼쳐보아서 그 결함된 편방(偏旁)을 메우어 보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글을 읽으면서 촌서(村書)에도 미치지 못한 격이니, 단사(彖辭)·상사(象辭)의 기이한 글과 하도(河圖)·낙서(洛書)의 오묘한 말들을 연구하고자 한들 될 수가 있겠느냐? 내 서함(書函)에 소장된 것은 마침 퇴옹(退翁)이 가져가고 없으니, 가져오기를 기다려서 의당 한번 보여주겠다. 그러나 의당 이 뜻을 알고 이 책을 보아야 할 것이다.
《예변(隸辨)》 한 책은 초발심(初發心)을 열어 인도할 수 있는 것인데, 이를 찾아내려고 하나 책이 잔뜩 많이 쌓인 속에 들어있는데다 중씨(仲氏)가 지금 몸이 아픈 중이라 마음대로 빼낼 수가 없으니, 한탄스럽다. 모두 남겨두고 갖추지 않는다.
[주D-001]초발심(初發心) : 불교의 용어로, 처음으로 불도(佛道)를 수행하려고 하는 마음을 이른 말이니, 전하여 여기서는 어떤 일을 해보려고 처음으로 마음 먹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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