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석파 흥선대원군 에게 주다[與石坡 興宣大院君][6]

천하한량 2007. 3. 7. 01:09
석파 흥선대원군 에게 주다[與石坡 興宣大院君][6]

주호(朱戶)에는 닭[鷄]을 붙이고 금반(金盤)에는 제비[鷰]가 모여들며, 천문(天門)이 열리어 하늘은 단단하고 맑은데, 새해의 복이 크게 이르러와서 온갖 일이 길(吉)하여 뜻대로 잘 되겠습니다. 삼가 높으신 서신을 받자옵건대 좋은 말씀까지 아울러 주시었으니, 이는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치는 훌륭하신 뜻이라, 찬송(贊誦)함을 이루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다시 삼가 묻건대, 근일에는 체중(體中)이 평안하십니까? 우러러 축수합니다. 슬하(膝下)의 청년(靑年)과 아녀(兒女)들의 청색·홍색의 단장이 세미(歲味)의 가장 좋은 것인데, 지금 온 가족이 완전하게 다 복을 받은 것이 아마 그 둘도 없을 듯하니, 더욱 얼마나 부러운 일이겠습니까.
척공(戚功)은 초목 같은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 어느덧 70세가 되어 맵고 쓴 고통이 갈수록 더욱 지리하기만 한데,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아도 추하게 느껴지니, 남들은 반드시 나를 보면 구역질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토록 후한 대접을 입으니, 그늘진 산골짜기에 따뜻함이 이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황량하고 춥고 적막한 곳의 누추한 집에 그 누가 말 한 마디나마 전해 주겠습니까.
예서(隸書)가 아주 좋아서 의당 난(蘭)의 작품과 쌍미(雙美)를 이루어 지붕 머리에 무지개를 꿰는 기이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다. 아직 다 갖추지 않습니다. 황공합니다.

[주D-001]주호(朱戶)에는……붙이고 : 주호는 붉은 칠을 한 권문 세가의 문을 말하고, 닭을 붙인다는 것은 곧 새해인 유년(酉年)을 표하는 문자를 문에 붙인 것을 이른 말인 듯하나, 또는 실제로 닭을 그려서 붙이는 것인지 자세하지 않다.
[주D-002]척공(戚功) : 역시 공복(功服)에 해당한 인척간임을 뜻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