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석파 흥선대원군 에게 주다[與石坡 興宣大院君][3]

천하한량 2007. 3. 7. 01:08
석파 흥선대원군 에게 주다[與石坡 興宣大院君][3]

은연중 생각하고 있던 가운데, 존서(尊書)를 전인(專人)으로 보내면서 은교(恩敎)를 받들어 싸보내셨는바, 이것이 6일 만에 당도하여 집의 서신보다 먼저 왔는지라, 권주(眷注)에 대하여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놀라서 넘어질 지경입니다. 평소에 이 몸을 권주하시는 마음이 하늘에 사무쳐서 아프거나 가려움이 서로 관섭된 바가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은혜를 입을 수가 있겠습니까.
불초무상한 이 몸은 죄악이 극에 달하였으니, 먼 북방(北方)으로 쫓겨난 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요, 자신의 분수로 말하자면 영원토록 침륜(沈淪)되어 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고 천년 만년을 깨어나지도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빛나는 천일(天日)이 깜깜한 구덩이의 속에까지 비춰주심으로써 그 은택이 사방으로 흘러서, 벙어리·귀머거리·절름발이·앉은뱅이들까지도 같은 소리로 함께 떠들어대면서 요순(堯舜)의 창성한 시대에 기뻐하며 춤을 추니, 햇빛을 보매 천하가 문명(文明)해진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비록 영원한 억겁의 세월을 두고서 천만 번 분골쇄신을 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 은택의 만분의 일이나마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인하여 갖추 살피건대, 이슬이 차가운 계절에 존체(尊體)가 신명으로부터 복을 받으신지라, 우러러 송축하는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끝이 없습니다. 척종(戚從)혜주(惠州)의 밥을 실컷 먹었는데, 이제 곧 살아서 옥문(玉門)을 들어가게 되면 또한 존안(尊顔)을 받들어 뵐 날이 있을 것으로 압니다. 여기 온 사자(使者)를 수일 동안 머물게 했다가 이제야 비로소 돌려보내면서 감히 약간의 말씀만 드리고 이만 갖추지 않습니다. 황공합니다.

[주D-001]척종(戚從) : 이 역시 저자가 흥선대원군과 서로 인척간의 종형제(從兄弟)가 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02]혜주(惠州)의……먹었는데 : 귀양살이한 것을 비유한 말. 송(宋) 나라 때 소식(蘇軾)이 일찍이 혜주에 폄적(貶謫)되었던 일을 두고 한 말이다.
[주D-003]옥문(玉門) : 대궐(大闕)의 문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