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이공 선재 에게 주다[與李公 善在]

천하한량 2007. 3. 7. 01:04
이공 선재 에게 주다[與李公 善在]

예를 생략하고 말씀드립니다. 외고주(外姑主 장모를 이름)의 상사(喪事)는 이것이 무슨 업보이며 이것이 무슨 변이란 말입니까? 환후(患候)가 계시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는데, 천만 뜻밖에 부음(訃音)을 갑자기 받으니, 지극히 놀랍고 슬픔을 다시 어디에 비유하겠습니까. 순수하고 지극한 효심(孝心)으로 사모하여 호곡하고 절도하면서 어떻게 몸을 지탱하겠습니까.
다만 창졸간에 변을 당했는지라 빈렴(殯殮)의 도구도 아마 미처 유의(留意)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시골 밖은 서울과 다른데, 과연 어떻게 기일에 맞춰 모든 것을 유감없이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들으니, 세속의 꺼림[拘] 때문에 아무도 들어가 보는 사람이 없다 하는데, 애(哀 모상 당한 사람을 가리킴)는 또 큰 일을 처음 당하여 슬프고 황급하기 그지없어 더욱 사람으로서 감당하지 못할 바가 있을 터인데, 모르겠으나 어떻습니까?
그리고 삼가 생각하건대, 춘부빙장(春府聘丈)의 고분(叩盆)의 슬픔은 자못 노경(老境)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제절은 손상됨이 없으며 체후는 또 어떠하십니까? 애(哀)는 또 감정대로 지나치게 슬퍼하여 몸이 훼상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제(禮制)를 굽어 따라서 춘부장의 인자하신 생각을 우러러 위로해 드리고, 노인을 보호하여 조금도 손상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도리어 장례(葬禮)룰 신중히 잘 치르는 일보다 더 급하니, 다만 깊이 스스로 감정을 너그럽게 억제하시기 바랍니다. 애통함을 어찌하며 망극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제(弟)는 문득 새로운 슬픔을 만나 옛 슬픔까지 함께 일어나서 스스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습니다. 도리상 당연히 진작 달려가 위로를 드려야 하나, 정성대로 할 길이 없으니 가신 이에 대한 상심이 더욱 간절합니다.
산지(山地)는 미리 잡아놓은 곳이 있을 터인데 연운(年運)은 잘 맞으며, 장사(葬事)는 의당 예월(禮月)을 기다려서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우러러 염려가 됩니다. 우선 남겨두어 다음으로 미루고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 없어 소례(疏禮)를 갖추지 않습니다. 애(哀)는 비춰 보시기 바랍니다.

[주D-001]고분(叩盆)의 슬픔 :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름. 장주(莊周)가 아내가 죽었을 때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사발을 두드리며 노래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