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석파 흥선대원군 에게 주다[與石坡 興宣大院君] [1]

천하한량 2007. 3. 7. 01:07
석파 흥선대원군 에게 주다[與石坡 興宣大院君] [1]

자취가 얽매이고 형체는 떠나 있으나 매양 생각은 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외씨(外氏)가 이렇게 몰락함으로부터 특별히 염려가 되고 금석(今昔)의 사정을 살펴보매 마음에 걸린 것이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찾아 위문해 주신 성대한 은혜가 너무도 월등히 뛰어나서, 서신을 손에 쥐고는 가슴이 뭉클하여 스스로 마음을 진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삼가 살피건데, 숭체(崇體)가 신명의 보우를 길이 입으신지라, 우러러 송축하는 마음이 마치 밀려드는 조수(潮水)와 같습니다. 그리고 방수(芳樹)의 가연(佳緣)과 수죽(脩竹)의 풍류 속에 충실히 문자(文字)의 길상(吉祥)을 성취하시니, 바람을 임하여 생각하건대 더욱 그 얼마나 부러울 뿐이겠습니까.
척생(戚生)이 지금까지 죽지 않은 것은 분명히 이상한 일이거니와, 점차로 하나의 치완(癡頑)하여 신령하지 못한 물건이 되어가서 나날이 이목(耳目)에 접한 것이 모두가 고민스럽고 심란한 것뿐입니다.
내려주신 여러 가지 물품에 대해서는 정중하신 지극한 뜻을 나의 소망(素望)이 미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우러러 알겠습니다. 그러나 물리치는 것은 불공스러운 일이기에 마치 본디부터 소유한 것처럼 염치를 무릅쓰고서 받고 보니, 감격함과 부끄러운 마음이 함께 일어납니다.
눈은 더욱 어른거리고 팔목은 태산같이 무거워서 어렵스럽게 붓을 들어 이 몇 자만을 기록합니다. 우선 남겨 두고 장례(狀禮)를 갖추지 않습니다.

[주D-001]척생(戚生) : 저자인 김정희가 바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 서로 인척(姻戚) 사이가 되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어 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