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조 이당 면호 에게 답하다[答趙怡堂 冕鎬][4]

천하한량 2007. 3. 7. 01:12
조 이당 면호 에게 답하다[答趙怡堂 冕鎬][4]

사(詞)의 근원은 바로 《시경(詩經)》의 비(比)·흥(興)·변풍(變風)의 의리로부터 《초사(楚辭)》의 이소(離騷)·구가(九歌)·구장(九章)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사물에 감동하여 나와서 동류에 접촉시켜 조달창무(條達鬯茂)하게 되어 각각 귀착하는 곳이 있으니, 구차하게 아로새겨 꾸며서 말을 아름답게 만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당(唐) 나라 이백(李白)에 이르러서는 그가 사의 수창자(首倡者)가 되었고, 온정균(溫庭筠)은 더욱 여기에 특출하여 그 언사가 깊고 아름답고 광대하고 요약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대(五代) 시대 이후로는 맹씨(孟氏)·이씨(李氏)가 군신(君臣) 간에 서로 해학을 즐기어 서로 다투어 새 곡조(曲調)룰 만들어냄으로써 사의 잡류(雜流)가 여기로부터 일어났는데, 그 중 잘된 작품의 경우는 왕왕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송(宋) 나라 때에는 사가(詞家)가 극히 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식(蘇軾)·주방언(周邦彦)·신기질(辛棄疾)·강기(姜夔)·왕기손(王沂孫)·장염(張炎)의 작품이 깊고 조용하게 그 자질이 있었고, 이로부터 이후로는 모두 방탕(放蕩)하고 음미(淫靡)한 데로 흘러 들어가서 자못 현인군자들의 비통(悲痛)함이 얽히고 설킨 그런 뜻이 아니니, 시험삼아 다시 한 번 이것으로 착안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보내주신 시편(詩篇)은 대단한 재사(才思)가 있기는 하나, 다만 문로(門路)를 헤아려 정한 데에는 미치치 못했습니다.

[주D-001]맹씨(孟氏)·이씨(李氏) : 맹씨는 오대(五代) 시대 십국(十國) 가운데 하나인 후촉(後蜀)의 임금 맹창(孟昶)을 이르는데, 그는 사(詞)를 좋아하여 매양 세밑이 되면 학사(學士)들에게 명하여 사(詞)를 짓게 하고 자신도 짓곤 하였었다. 그리고 이씨는 바로 십국 가운데 하나인 남당(南唐)의 왕조 성씨를 가리키는데, 남당의 제2대 임금인 이경(李景)과 그의 아들인 이욱(李煜) 부자(父子)는 특히 풍류를 즐기어 항상 군신(群臣)들과 연회를 베풀고 사(詞)를 짓곤 하였었다. 《宋史 卷四百七十九》 《五代史 卷六十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