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위당 관호 에게 주다[與申威堂 觀浩][1] |
외도(畏塗)요 궁도(窮塗)인 이곳에까지, 세속의 투식을 탈피하여 고의(古誼)를 숭상하시는 영감(令監)이 아니라면 어떻게 능히 바다 건너까지 사람을 보내서 정성스레 위문해 주시는 것이 이와 같이 진지하고 정중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이 다 죽어가는 물건이 어떻게 지금 세상에 이런 덕을 입게 되었는지 실로 알 수가 없습니다. 서신이 있은 이후로 하늘 높이 바람이 불고 바다는 추워졌습니다. 다시 생각건대, 초겨울을 당하여 영곤(令梱)의 동정(動靜)이 평안하고 다복하시며 군영(軍營)의 모든 일에 있어 일찍이 별다른 고심거리는 없으십니까? 여러 가지로 우러러 송축합니다. 바다 구름 한 가닥은 우리 두 사람의 호흡을 서로 연접시킬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 죄인은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이는 모두 성상께서 은혜로 살려주신 덕택입니다. 그러나 장습(瘴濕)이 빌미가 되어 온갖 질병이 침범해옴으로써 눈과 귀와 코와 혀가 아프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의원도 없고 약도 없으므로, 또한 오직 그대로 내버려둘 뿐입니다.
내려주신 여러 가지 물품은 특별하신 생각에서 나온 것임을 잘 알겠으니, 그 얼마나 대단히 감사하겠습니까. 나머지는 후일의 서신으로 미루고, 모두 남겨두고 격식을 갖추지 않습니다.
시폭(詩幅)과 예폭(隸幅)·해폭((楷幅) 등 여러 작품에 대해서는 지금 세상에 찾아본다면 능히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금마문(金馬門)·승명전(承明殿)에 출입하는 여러 명공(名公)들에게 부끄러운 것이 없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고 반복하여 소리내어 읽고는, 모두 원본(原本)에다 망녕된 평어(評語)를 써서 하나하나 살펴 보존하였습니다.
나의 졸렬한 예서(隸書)에 대해서는 안병(眼病)과 비통(臂痛)이 있는데다 또 온갖 생각까지 다 식어버렸으니, 어느 겨를에 이 일을 착수하겠습니까. 그러나 영감의 애써 요구하시는 뜻을 저버리기 어려워서 옹졸한 지킴을 깨뜨리고 억지로 이렇게 우러러 색책을 하고 보니, 모양이 너무도 조잡하여 아마 한 번의 웃음거리에도 차지 못할 듯합니다.고기관지(古器款識) 일함(一函) 삼책(三冊)에 대해서는 한 번 열람하실 뜻이 있다고 하시니, 이에 할애하여 받들어 올립니다. 뜻을 다하여 열람하시고 편리할 대로 돌려보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종정고관(鐘鼎古款)은 바로 예서가 나온 곳이니, 예서를 배우는 이가 이것을 알지 못하면 이는 곧 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근원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그런데 내 집에 서로 나누어 완상할 것이 있을 듯하고 또는 증정할 만한 것도 있을 것도 있을 듯하나, 지금은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백발의 나이에 영락(零落)하여 흘러 떠돌아 여기에 이르렀는지라, 약간의 금석문(金石文)의 가품(佳品)을 누구에게 줄 곳이 없으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끝내는 영감에게 부촉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수금편 와련(壽琴篇瓦聯) 일구(一具)를 받들어 드리오니, 이것 또한 받아두시기 바랍니다.
허치(許癡)는 아직도 그곳에 있습니까? 그는 매우 좋은 사람입니다. 그의 화법(畫法)은 종래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루한 기습을 떨어 버렸으니, 압록강 동쪽에는 이만한 작품이 없을 것입니다. 그가 다행히 주리(珠履)의 끝에 의탁하여 후하신 비호를 입고 있으니, 영감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사람을 알아주겠습니까. 그 또한 제자리를 얻은 것입니다.
초사(草師) 또한 남쪽 지방의 이름난 숙학(宿學)으로 총림(叢林) 가운데 흔히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그의 시론(詩論)을 보건대, 또한 거울과 거울이 서로 비추고 도장과 도장이 서로 부합되는 것을 알겠으니, 참으로 매우 훌륭합니다.
내가 쓰고 있는 붓에 대해서는 강유(剛柔)를 따지지 않고 있는 대로 사용하며, 특별히 한 가지만 즐겨 쓰는 것은 없습니다. 이에 조그마한 붓 한 자루를 보내드립니다. 이 붓의 제도가 극히 아름답고 털을 고른 것도 아주 정밀하여 하나도 거꾸로 박힌 털이나 나쁜 끝이 없으니, 다행히 이 붓의 제작에 의거하여 많이 받들어서 스스로 쓰시고 또한 약간의 붓을 나에게까지도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큼직한 액필(額筆)은 차제에 즉시 도모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승(寺僧)의 무리들은 기약한 날짜를 약간 지나치기 쉬울 듯합니다.
공비(孔碑)의 임본(臨本) 두 장은 매우 아름다우나, 다만 굳세고 예스러운 맛이 적습니다. 대체로 한칙비(韓敕碑)는 임모(臨摸)하기가 극히 어려우니, 그것은 바로 일곱 사람이 쓴 것이요 한 솜씨로 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비문이 예서가(隸書家)의 정법(正法)이 되기는 하나, 초학자들은 의당 촉도(蜀道)의 여러 석각(石刻)과 북해상비(北海相碑)를 가지고 먼저 착수를 한 다음에야 속체(俗體)에 오도(誤導)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D-001]허치(許癡) : 조선 말기 서화가로서 호가 소치(小癡)인 허유(許維)를 말함. 그는 특히 시·서·화를 모두 잘하여 삼절(三絶)로 일컬어졌고, 글씨에 있어서는 김정희(金正喜)의 서체를 따라 썼다 한다.
[주D-002]주리(珠履) : 권문 세가(權門勢家)의 문객(門客)을 뜻함. 전국 시대 초(楚) 나라 재상 춘 신군(春申君)의 문객이 3천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 중에 상객(上客)들은 모두 구슬로 장식한 신을 신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史記 春申君傳》
[주D-003]초사(草師) : 조선 말기의 스님으로 호가 초의(草衣)인 의순(意恂)을 이름. 그는 특히 학식이 뛰어나서 당시 김정희 등 명사(名士)들과 교유가 많았다.
[주D-004]총림(叢林) : 많은 승려들이 모여서 수도하는 곳을 나무가 우거진 숲에 비유하여 이른 말로, 즉 많은 승려들이 모여 수도하는 사찰 등을 가리킨다.
[주D-002]주리(珠履) : 권문 세가(權門勢家)의 문객(門客)을 뜻함. 전국 시대 초(楚) 나라 재상 춘 신군(春申君)의 문객이 3천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 중에 상객(上客)들은 모두 구슬로 장식한 신을 신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史記 春申君傳》
[주D-003]초사(草師) : 조선 말기의 스님으로 호가 초의(草衣)인 의순(意恂)을 이름. 그는 특히 학식이 뛰어나서 당시 김정희 등 명사(名士)들과 교유가 많았다.
[주D-004]총림(叢林) : 많은 승려들이 모여서 수도하는 곳을 나무가 우거진 숲에 비유하여 이른 말로, 즉 많은 승려들이 모여 수도하는 사찰 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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