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신위당 관호 에게 주다[與申威堂 觀浩][3]

천하한량 2007. 3. 7. 01:15
신위당 관호 에게 주다[與申威堂 觀浩][3]

《금석원류휘집(金石源流彙輯)》은 과연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양공(歐陽公 구양수를 이름)의 《집고록(集古錄)》과 홍반주(洪盤洲)의 《예석(隸釋)》 등의 서적도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왕난천(王蘭泉)·전신미(錢辛楣) 등의 여러 저서와 담계가 편집한 책은 정밀하고 핵심적인 것입니다.
금석(金石)에 관한 한 가지 학문도 본디 하나의 문호가 따로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요즘 전서(篆書)·예서(隸書) 등 여러 서가(書家)들은 다만 그 원본(原本)에 나아가 일통(一通)만을 등사(謄寫)해낼 뿐, 어찌 일찍이 경사(經史)에 우익(羽翼)이 되는 것과 분례(分隷)의 같고 다름과 편방(偏旁)의 흘러 변천한 것들을 상고하여 연구해 본 적이 있겠습니까.
《한례자원(漢隷字源)》은 본디 좋은 책입니다. 거기에 수록한 숫자는 삼백구비(三百九碑)나 되니, 오늘날 현존한 한비(漢碑) 30여 종에 비교한다면 비록 이를 연해(淵海)라 이르더라도 옳을 것입니다. 판본(板本) 일례(一例)를 써서 보냅니다. 그리고 예기비(禮器碑)·공화비(孔和碑)는 양두비(羊竇碑)·척백비(戚伯碑)와 다를 것이 없는데, 이것을 어떻게 변증하겠습니까. 누씨(婁氏)의 원본(原本)은 반드시 이러하지 않을 것인데, 점차로 잘못 변천하여 마침내 본래의 면목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고남원(顧南原)의 《예변(隸辨)》 한 책이 도리어 이보다 나은 점이 있는데, 한 번 영감으로 하여금 하나하나 선정해서 구증(口證)하도록 할 길이 없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객지의 서협(書篋)이 매우 초과하여 이런 것을 고증할 만한 책들을 가져오지 못해서 멀리 보내드릴 수가 없으니, 자못 한탄스럽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는 모든 것들은 끝내 의당 일체 받들어 올려 열람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석암(石庵)의 서법(書法)은 또한 시가(詩家)의 어양(漁羊 왕사정(王士禎)의 호)과 같아 타고난 자품이 뛰어나서 실로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또 그의 진적(眞蹟)은 보지 못했고 다만 그 탁본(拓本)만을 열람했기에 더욱 착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의 행묵(行墨)은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고 파공(坡公 소식을 이름)의 묵법(墨法)을 깊이 체득하여 그 정묵(停墨)한 곳에는 심지어 마치 기장알 만한 크기의 묵흔(墨痕)이 튀어나오기까지 했는데, 파공의 묵법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록 글씨를 쓴다 하더라도 행묵할 줄을 모르니, 마음과 안목이 어떻게 여기에 미치겠습니까.
대체로 그의 글씨는 오로지 파공의 서법을 배워와서 스스로 하나의 문호를 개척한 것입니다. 청(淸) 나라 이후의 서가(書家)로서 하의문(何義門)·강서명(姜西溟)·왕퇴곡(汪退谷)·진향천(陳香泉) 등 여러 사람이 우뚝하게 서로 바라보았는데, 그들에 비하면 석암의 글씨가 의당 거벽(巨擘)에 해당하여 그들보다 나은 점이 있으니, 동현재(董玄宰) 이후의 일인자입니다. 그러니 만일 그의 서법을 배워 얻으려면 먼저 동파(東坡)의 글씨에서 찾는 것이 좋겠는데, 우선 그의 진적을 본 다음에야 또한 의논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영감의 서법을 보니 마치 장득천(張得天)의 서법을 받아온 것처럼 기미(氣味)가 그와 매우 가깝습니다. 장득천은 건륭(乾隆) 초기 사람인데, 그의 글씨는 오로지 동현재의 서법을 좇아 성장 발전된 것으로서 석암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합니다. 그래서 건륭 연간에는 장득천의 글씨를 논하면서 곧장 우군(右軍 왕희지를 이름)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그의 글씨의 탁본(拓本)이 아주 많고 유전(流傳)하는 것도 매우 많아서 나에게도 그의 진적(眞蹟) 한 권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가져가 버려서 지금은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장득천의 이름은 조(照)이고 시호는 동현재와 똑같은 문민(文敏)입니다.
영감의 시에는 내가 대략 망녕되이 평점(評點)을 한 것이 있으니, 웃고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예첩(隸帖)에 대해서는 출람(出藍)
의 기쁨이 있음과 동시에 문득 내 글씨가 조잡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매양 붓을 일으키고 붓을 거두고 하는 곳에는 십분 힘을 들이고 정신을 써야 하고 절대로 가벼이 지나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원지(原紙)는 특별히 따로 평(評)을 드릴 것이 없으니,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권(二卷) 및 십지(十紙)에 대해서는 삼가 의당 다시 써서 바치려고 합니다. 일권(一卷) 및 이지(二紙)는 이에 앞서 완전히 다 썼으므로 또 예전부터 남아있던 이지를 이것과 아울러 바칩니다. 그 나머지는 팔이 아파서 억지로 쓸 수가 없으니, 추후 신기(神氣)가 조금 나을 때를 당해서 다시 헤아려 보겠습니다.
한천척(漢天尺) 하나는 이것이 옛날에 만든 것인데, 낙관(落款)은 내가 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금석(金石)의 장단을 고정(考定)할 수 있어, 서주(書廚)에는 필수적인 물건이므로 이에 받들어 올리니, 보고 거두어 두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약 쇠로 주조한다면 더 좋을 것이니, 이를 주조할 적에 일본(一本)을 더 주조해서 나에게 주신다면 또한 좋겠습니다.
청애당필(淸愛堂筆) 한 자루를 또 이에 부쳐 드립니다. 이것은 바로 석암(石庵)이 옛날에 만든 것인데, 일찍이 서너 자루를 얻었습니다. 이 붓은 거세(巨細)와 강유(剛柔)가 모두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없어, 내가 예서(隸書)나 해서(楷書)를 쓸 적에는 오로지 이 붓만 사용하여, 한 자루를 가지고 20년을 사용했으나 아직도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이 붓 한 자루를 할애하여 드립니다마는, 영감이 아니라면 절대로 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름지기 나의 이런 고심을 잘 알아서 소중하게 쓰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혹 세간에도 이 붓을 모방하여 만든 것들이 있는데, 이는 다 가짜 털이고 석암의 집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석암의 영손(令孫)이 금석에 관해서 나와 서로 좋은 정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이를 얻은 것입니다.
연사(蓮師)의 시습(詩什)과 자폭(字幅)은 이것이 세상에 보기 드문 것이라, 나도 모르게 그 기발함을 부르짖고 한결같이 망녕되이 평어를 써서 받들어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나의 예서는 억지로 쓰기가 어려웠으나, 이 병든 팔을 놀리고 이 병든 눈동자를 비비고서, 이 애써 요구하시는 뜻에 보답하였으니, 보고 거두어 두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소첩(小帖) 두 책(冊)은 과연 장정이 좋지 않아서 한 통을 쓰기는 했으나 전혀 불성(不成)한 모양이었기 때문에 다른 본(本)을 가져다가 채워 써서 보내오니, 양찰하시기 바랍니다. 보내온 종이는 또한 다 써서 보낼 수가 없어 약간폭(略干幅)을 남겨두었는데, 추후로 의당 안질이 나아지면 다 도모할 예정이오니, 널리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주D-001]홍반주(洪盤洲) : 송 나라 때의 사람으로 《예석(隷釋)》·《예속(隷續)》등의 저서를 남긴 홍괄(洪适)을 이름. 반주는 그의 호이다.
[주D-002]왕난천(王蘭泉)·전신미(錢辛楣) : 왕난천은 청 나라 때의 학자로 호가 난천인 왕창(王昶)을 이르는데, 그는 《금석췌편(金石萃編)》·《시문사집(詩文詞集)》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전신미는 역시 청 나라 학자로 호가 신미인 전대흔(錢大昕)을 이르는데, 그 역시 《당석경고이(唐石經考異)》·《금석문발미(金石文跋尾)》 등 수많은 저서를 남기었다.
[주D-003]누씨(婁氏) : 송 나라 때 사람으로 특히 글씨를 잘 썼던 누기(婁機)를 이름. 그의 저서에 《한례자원(漢隷字原)》과 《반마자류(班馬字類)》 등이 있다.
[주D-004]고남원(顧南原) : 청 나라 때 서화(書畫)를 모두 잘했던 고애길(顧藹吉)을 이름. 남원은 그의 호이다. 저서에 《예변(隷辨)》이 있다.
[주D-005]석암(石庵) : 청 나라 때 사람으로 글씨에 뛰어났던 유용(劉墉)을 이름. 석암은 그의 호이다.
[주D-006]하의문(何義門)……진향천(陳香泉) : 하의문은 청 나라 때의 학자인 하작(何焯)을 이름. 의문은 그의 호이다. 강서명(姜西溟)은 역시 청 나라 때에 시(詩)와 고문(古文)을 잘하고 서법(書法)에도 통했던 강신영(姜宸英)을 이름. 서명은 그의 자이다. 왕퇴곡(汪退谷)은 역시 청 나라 사람으로 시와 고문을 잘하고 서법에도 통했던 왕사굉(汪士鋐)을 이름. 퇴곡은 그의 호이다. 진향천은 역시 청 나라 사람으로 시와 글씨에 능했던 진혁희(陳奕禧)를 이름. 향천은 그의 호이다.
[주D-007]동현재(董玄宰) : 명(明) 나라 때의 뛰어난 서화가인 동기창(董其昌)을 이름. 현재는 그의 자이다.
[주D-008]장득천(張得天) : 청 나라 때 사람으로 특히 글씨에 뛰어났던 장조(張照)를 이름. 득천은 그의 자이다.
[주D-009]출람(出藍) : 제자가 스승보다 더 훌륭함을 비유한 말. 청색(靑色)은 쪽[藍]에서 나오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는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