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침계 정현 에게 주다[與尹梣溪 定鉉] |
높은 누각(樓閣)은 백척(百尺)이나 되고, 긴 다리는 10리나 뻗치었습니다. 반생(半生) 동안에 처음 만난 인연으로 이런 그림 같은 곳을 원만히 차지하였으니, 비록 종전의 천맥(阡陌) 사이에서 지내던 생활도 반드시 이 한 승경(勝景)보다 낫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남북으로 전패(顚沛)하다가 말로(末路)에 끝을 잘 맺은 것이 또 당음(棠蔭)으로 보호해 주시던 즈음에 있었습니다. 자비(慈悲)로우신 노파심에 의해 복을 많이 받아, 주신 술에 취하고 베푸신 은덕을 흠뻑 입어 천리 길을 내려와 조용히 농촌에서 지내게 되었으니, 이것이 누구의 은혜이겠습니까. 송축하고 감격합니다.
즉시 삼가 태하(台下)의 서한을 받아보건대, 이 같은 눈과 이 같은 추위에 안찰(按察)하시는 체도(體度)가 신명의 도움으로 길이 평안하심을 따라서 알겠으니, 삼가 우러러 위로가 됩니다.
다만 내직(內職)으로 옮기기 위해 무성한 산림으로부터 행장을 꾸려 돌아오는 일을 이미 담당하셨을 듯한데, 그렇게 되어도 능히 남은 고민이 없고 또한 남은 그리움도 없겠습니까? 옥소(玉簫) 사이에서 즐기던 일이 아마 밭머리에 아른아른 보이는 것이 있을 듯한데, 이를 어찌하시겠습니까?
척하(戚下)는 관악산(冠岳山) 아래 돌아와 숨어 지내면서 어부초객(漁父樵客)과 형제 삼아 꿈같이 서로 마주하니, 말년(末年)의 온갖 감회가 창자 사이에 밀물처럼 끓어오르지만, 이것은 족히 외인(外人)에게 말할 것이 못 됩니다. 내려주신 물품들은 이 썰렁한 주방을 가득 채웠으니, 참으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남겨두어 따로 말씀드리기로 하고 아직 다 갖추지 않습니다. 오직 삼가 복을 맞이하여 속히 돌아오시기를 기원합니다.
[주D-001]당음(棠蔭) : 지방관의 선정(善政)을 비유한 말로, 전하여 지방관을 일컫기도 하는데, 주(周) 나라 소공(召公)의 선정에 감격하여, 백성들이 그가 일찍이 남국(南國)을 순행(巡行)하던 때에 감당(甘棠) 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하여 그 감당 나무를 소중히 여긴 데서 온 말이다. 《詩經 召南 甘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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