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위당 관호 에게 주다[與申威堂 觀浩][2] |
새해의 초7일에 타운(朶雲)이 멀리서 내도하니, 황홀하기다 마치 희신(喜神)이 내림(來臨)한 듯합니다. 쓸쓸하고 적막한 이곳에 뜻밖에도 이런 서한이 왔는지라, 몇 번을 반복하여 펼쳐 읽으니 위로되는 마음이 한 자리에 마주 앉은 것과 같았습니다. 다만 지경을 넘은 불순한 기후는 의당 곧 온화해져서 많은 복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이 봄 사이에 영곤(令梱)의 동정이 더욱 많은 복을 받으시고 영무(營務)가 한가한 때에는 예년과 같이 필묵(筆墨)의 일에도 종사하시리니, 이 때문에 대단히 우러러 송축하는 바입니다.
이 죄인은 갑자기 정초부터 까닭 없이 대단히 아팠는데, 오늘에 이르러서야 다시 살 길을 찾기는 했으나, 완둔하고 어둡기가 목석(木石)보다 더 합니다. 그리하여 한갓 선신(船信)의 왕래만 모두 막힐 뿐이 아니라 붓을 손에 잡을 수가 없어서 한번 사례하는 일을 이렇게 지연시켰으니, 어떻게 나의 이 고통스러운 사정을 다 헤아리시겠습니까.
굽어 내려주신 여러 가지 물품은 모두가 각별히 생각해 주신 데서 나온 것으로, 못 먹어서 입침을 흘리던 병든 위장이 이를 힘입어 진정되었으니, 이 곤궁한 가운데 간절히 감사하는 마음이 어찌 백붕(百朋) 정도에 그치겠습니까.
이달 초부터 비로소 침석(枕席) 위에서 머리를 붙들고 일어나게 되었으므로, 또한 능히 팔 뚝을 놀려 이와 같이 글자를 써서 이에 강교(姜校)가 가는 편을 인하여 대략 몇 자를 적어 올립니다. 나머지는 남겨두어 별도로 갖추기로 하고 아직 다 갖추지 않으오니, 모두 영감께서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별지(別紙)에는 수많은 말로써 진정을 다 토로하여 이와 같이 나를 생각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돌아보건대, 나 같은 비재천식(菲才淺識)으로는 비록 한창 장성하여 정력이 충만한 때일지라도 족히 여기에 이를 수 없는데 또 어떻게 이 일에 부응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백발의 노경에 아무 이룬 것도 없이 장해(瘴海) 가에 전전하다 보니, 하찮은 지식마저도 전혀 남아있는 것이 없고, 간폐(肝肺)까지 말라붙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가소롭게 합니다.
그런데 다만 영감께서는 천품을 아주 잘 타고나신데다가 용맹스럽게 정진(精進)하시니, 천궁(天宮)이건 귀부(鬼府)이건 어디를 가나 막힐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영감의 예자(隸字)를 보니, 한 번 뛰어서 곧장 들어갈 기상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마다 문경(門徑)에 대하여 그림자나 찾고 빛이나 훔치면서 철두철미하게 하지 못하는데, 영감은 문경이 잘못되지 않아서 마치 순풍에 기러기 털을 날리듯이 그 성대한 형세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시도(詩道)로 말하면 어양(漁洋)·죽타(竹坨)가 문경이 잘못되지 않았는데, 어양의 경우는 순수하게 자연에서 나와 마치 천의무봉(天衣無縫)과 같고, 또 마치 화엄루각(華嚴樓閣)을 한 손가락으로 튕겨서 열어버린 것과도 같아서 자취를 찾아내기 어렵고, 죽타의 경우는 인력(人力)으로 정진하여 하나하나의 계제를 밟아 올라서 비록 태산의 정상까지라도 한걸음 한걸음으로 차츰 올라갈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모름지기 죽타를 위주로 하고 어양을 참작해서 한다면 색(色)·향(香)·성(聲)·미(味)가 완전하여 흠결이 없게 될 것입니다.
목재(牧齋)에 이르러서는 기력은 대단히 크지만 끝내 천마(天魔)의 외도(外道)를 면치 못하여 가장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니, 오로지 어양·죽타를 좇아서 착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아래로는 또 사초백(査初白)이 있는데 그는 어양·죽타 양가(兩家) 이후로 문경이 가장 잘못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삼가(三家 왕사정·주이준·사신행을 이름)로부터 시작하여 원유산(元遺山)·우도원(虞道園)으로 나아가서 다시 동파(東坡)·산곡(山谷)으로 거슬러 올라가 두보(杜甫)로 들어가는 준칙으로 삼는다면 공이 이루어지고 소원이 성취되어 견불(見佛)이라는 데에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이를 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밖에 제가(諸家)들을 두루 통하고 이어 일상생활 어디서나 속에 진취의 도리를 얻는 일은 곧 자신의 심력(心力)과 안력(眼力)이 함께 이른 곳에 마치 거울과 거울이 서로 비추듯, 도장과 도장이 서로 부합하듯 하여 마귀(魔鬼)의 지경에 오도되지 않는 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담계집(覃溪集)》은 과연 읽기가 어렵습니다. 경예(經藝)·문장(文章)·금석(金石)·서화(書畫)를 통틀어 한 덩어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니, 식견이 얕은 사람에게는 쉽게 이해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세하게 유의하여 읽어가노라면 노선(路線)과 맥락(脈絡)이 찬연히 갖추 나타납니다. 그런데 다만 세상 사람들이 마음을 쓰지 않고 무미하게 겉만 핥음으로써 간과(諫果)가 단 맛이 돌아오고 감자(甘蔗)가 점점 맛이 좋아지는 것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내가 보고 들은 바로 말하면, 건륭(乾隆 청 고종(淸高宗)의 연호) 연간 이래로 여러 명가(名家)들이 서로 연달아 나왔지만, 전택석(錢蘀石)과 담계(覃溪)만한 이가 없는데, 장연산(蔣鉛山)은 이들과 서로 견줄 만하고 원수원(袁隨園) 같은 무리는 족히 비유할 거리도 못 됩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보다 수준이 더 아래인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내가 일찍이 담계의 시 가운데서 누구나 알아보기 쉬운 것을 좇아 적구도례(摘句圖例)를 모방하여 뽑아 기록한 것이 백구(百句) 가까이 되는데, 이것을 의당 한 번 받들어 보여드리겠습니다.
[주D-001]타운(朶雲) : 드리운 구름이라는 뜻으로, 남의 서한(書翰)의 경칭(敬稱)으로 쓰인다.
[주D-002]백붕(百朋) : 많은 녹(祿)을 이름. 일붕(一朋)은 이패(二貝) 또는 오패(五貝)를 말하기도 하는데, 옛날에는 패(貝)를 돈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주D-003]어양(漁洋)·죽타(竹坨) : 어양은 청(淸) 나라 때에 시(詩)로써 일대의 정종(正宗)으로 일컬어졌던 왕사정(王士禎)의 호이고, 죽타는 역시 청 나라 때에 고증학과 시에 모두 뛰어났던 주이준(朱彝尊)의 호인데, 그 당시에 특히 시로써 이 두 사람이 주왕(朱王)으로 병칭되었다.
[주D-004]목재(牧齋) : 명말 청초(明末淸初)에 특시 시로써 이름이 높았던 전겸익(錢謙益)을 말함. 목재는 그의 호이다.
[주D-005]천마(天魔)의 외도(外道) : 천마는 천상(天上)에 거주한다는 악귀(惡鬼)를 이르는데, 이는 특히 인간을 외도 즉 사도(邪道)로 유인한다고 하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사초백(査初白) : 청 나라 때 사람으로 경학(經學)에 정통하고 특히 시에 뛰어나 청조 육가(淸朝六家)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사신행(査愼行)을 이름. 초백은 그이 호이다.
[주D-007]원유산(元遺山)·우도원(虞道園) : 원유산은 금(金)·원(元) 양대에 걸친 학자이며 시인으로, 금·원 시대 명망이 가장 높았던 원호문(元好問)을 이름. 유산은 그의 호이다. 우도원은 원 나라 말기 사람으로 역시 학자이며 시문에도 뛰어났던 우집(虞集)을 이름. 도원은 그의 호이다.
[주D-008]동파(東坡)·산곡(山谷) : 동파는 송(宋) 나라 때의 문장가인 소식(蘇軾)의 호이고, 산곡은 역시 송 나라 때의 문장가인 황정견(黃庭堅)의 호이다.
[주D-009]견불(見佛) : 부처를 본다는 뜻으로 즉 도(道)를 깨달은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곧 어떤 분야에 일가(一家)를 이루는 것을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주D-010]간과(諫果)가……돌아오고 : 오래오래 음미함으로써 그 참맛을 알 수 있게 됨을 비유한 말. 간과는 감람(橄欖)이란 과실의 별명인데, 이 과실은 처음에는 쓰고 떫지만 먹은 지 오래 되면 단맛이 돌아온다고 한다.
[주D-011]감자(甘蔗)가……것 : 점차로 좋은 경지에 들어가서 흥미가 깊어지는 것을 비유한 말. 감자는 사탕수수인데, 진(晉) 나라 때 문인화가인 고개지(顧愷之)가 사탕수수를 먹을 때마다 항상 끝부분부터 먹기 시작하여 밑동 쪽으로 내려가므로,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점차 좋은 경지로 들어가기 위해서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2]전택석(錢蘀石)과 담계(覃溪) : 전택석은 청 나라 때 시·서·화에 모두 뛰어났던 전재(錢載)를 이름. 택석은 그의 호이다. 담계는 역시 청 나라 때 학자로서 금석문(金石文)과 시·서·화에 모두 뛰어났던 옹방강(翁方綱)의 호이다.
[주D-013]장연산(蔣鉛山) : 청 나라 때 연산 사람으로, 시와 고문(古文) 등에 모두 뛰어났던 장사전(蔣士銓)을 가리킨다.
[주D-014]원수원(袁隨園) : 청 나라 때의 시인인 원매(袁枚)를 이름. 수원은 그의 호이다.
[주D-002]백붕(百朋) : 많은 녹(祿)을 이름. 일붕(一朋)은 이패(二貝) 또는 오패(五貝)를 말하기도 하는데, 옛날에는 패(貝)를 돈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주D-003]어양(漁洋)·죽타(竹坨) : 어양은 청(淸) 나라 때에 시(詩)로써 일대의 정종(正宗)으로 일컬어졌던 왕사정(王士禎)의 호이고, 죽타는 역시 청 나라 때에 고증학과 시에 모두 뛰어났던 주이준(朱彝尊)의 호인데, 그 당시에 특히 시로써 이 두 사람이 주왕(朱王)으로 병칭되었다.
[주D-004]목재(牧齋) : 명말 청초(明末淸初)에 특시 시로써 이름이 높았던 전겸익(錢謙益)을 말함. 목재는 그의 호이다.
[주D-005]천마(天魔)의 외도(外道) : 천마는 천상(天上)에 거주한다는 악귀(惡鬼)를 이르는데, 이는 특히 인간을 외도 즉 사도(邪道)로 유인한다고 하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6]사초백(査初白) : 청 나라 때 사람으로 경학(經學)에 정통하고 특히 시에 뛰어나 청조 육가(淸朝六家)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사신행(査愼行)을 이름. 초백은 그이 호이다.
[주D-007]원유산(元遺山)·우도원(虞道園) : 원유산은 금(金)·원(元) 양대에 걸친 학자이며 시인으로, 금·원 시대 명망이 가장 높았던 원호문(元好問)을 이름. 유산은 그의 호이다. 우도원은 원 나라 말기 사람으로 역시 학자이며 시문에도 뛰어났던 우집(虞集)을 이름. 도원은 그의 호이다.
[주D-008]동파(東坡)·산곡(山谷) : 동파는 송(宋) 나라 때의 문장가인 소식(蘇軾)의 호이고, 산곡은 역시 송 나라 때의 문장가인 황정견(黃庭堅)의 호이다.
[주D-009]견불(見佛) : 부처를 본다는 뜻으로 즉 도(道)를 깨달은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곧 어떤 분야에 일가(一家)를 이루는 것을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주D-010]간과(諫果)가……돌아오고 : 오래오래 음미함으로써 그 참맛을 알 수 있게 됨을 비유한 말. 간과는 감람(橄欖)이란 과실의 별명인데, 이 과실은 처음에는 쓰고 떫지만 먹은 지 오래 되면 단맛이 돌아온다고 한다.
[주D-011]감자(甘蔗)가……것 : 점차로 좋은 경지에 들어가서 흥미가 깊어지는 것을 비유한 말. 감자는 사탕수수인데, 진(晉) 나라 때 문인화가인 고개지(顧愷之)가 사탕수수를 먹을 때마다 항상 끝부분부터 먹기 시작하여 밑동 쪽으로 내려가므로,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점차 좋은 경지로 들어가기 위해서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2]전택석(錢蘀石)과 담계(覃溪) : 전택석은 청 나라 때 시·서·화에 모두 뛰어났던 전재(錢載)를 이름. 택석은 그의 호이다. 담계는 역시 청 나라 때 학자로서 금석문(金石文)과 시·서·화에 모두 뛰어났던 옹방강(翁方綱)의 호이다.
[주D-013]장연산(蔣鉛山) : 청 나라 때 연산 사람으로, 시와 고문(古文) 등에 모두 뛰어났던 장사전(蔣士銓)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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