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이당 면호 에게 답하다[答趙怡堂 冕鎬][3] |
강가의 추위가 어느덧 필발(觱發)에 미쳤는데 때마침 위문(慰問)해주심을 받으니, 전번의 감하함에 이어서 위로가 됩니다. 다만 살피건대, 동정(動靜)이 편안하시다 하니 우러러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다친 손가락이 끝내 좋은 효험을 보지 못한 데 대해서는 도리어 간절히 염려가 됩니다.
종(從)은 한결같이 이불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 전혀 의취(意趣)가 없습니다. 중씨(仲氏)의 행차는 일전에 대사(大事)를 순조로이 마치고 돌아왔으니,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계씨(季氏)의 정진(精進)하는 묘는 실로 금지할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내가 노둔하고 졸렬하여 그 졸졸 흐르는 샘물이나 한창 무성해지는 나무와 같은 재능을 비추어 발전시킬 수 없을 듯하니, 이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매 부끄럽고 두려울 뿐입니다.
양지(羊脂)를 보내주신 데 대해서는 밤은 길고 잠은 적은데 등잔불로 새벽을 댈 수가 없던 차에 이렇게 특별히 생각해 주심을 입으니, 이토록 주도하고 진지하신 훌륭한 뜻에 감송(感誦)하는 바입니다. 나머지는, 눈이 어른거려서 어렵스레 이만 초하고 갖추지 않습니다.
당승(唐僧)의 탑명(塔銘)은 바로 주국인(周菊人)의 소장(所藏)이었는데, 마단서(馬丹書)가 풍주소(馮注蘇)의 시(詩)로써 바꾸어갔던 바, 이것이 또 전전하여 우리나라에까지 온 것입니다. 이 명(銘)은 곧 저수량(褚遂良)의 서파(書派)로서 또 삼감비(三龕碑)의 서체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唐) 나라 일대(一代)의 서법(書法)은 구양순파(歐陽詢派)가 아니면 곧 저수량파이어서 이 양파(兩派) 이외에는 다른 문호(門戶)로 갈려나간 것이 거의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신라(新羅)·고려(高麗)의 금석문(金石文)에 이르러서는 일체 모두 구양순의 서법이고, 평백제탑(平百濟塔)만 저수량의 서체입니다. 그리고 마단서의 발문(跋文)에서는 '문(文)도 당서(唐書)의 일종(一種)이다.'고 말하였습니다.
황학산초(黃鶴山樵)는 원(元) 나라 때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화권(畫卷)은 유전(流轉)한 것이 아주 드물고, 대치(大癡 황공망(黃公望)의 호)나 운림(雲林 예찬(倪瓚)의 별호) 같은 이의 작품은 꽤 남아있습니다. 오직 황학산초의 작품은 겨우 한두 가지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나, 그것도 모방본(摸仿本)인데, 이 모방 또한 극히 어려워서 이를 안작(贋作)하는 자도 또한 착수(着手)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의 법칙으로 한 것일 뿐이요, 진본(眞本)은 아닙니다.아배(兒輩)들에 의해서 연구(聯句)를 보았는데, 글자만 좋을 뿐이 아니라 시정(詩情)이 더 오묘하였습니다. 천기(天機)에 깊지 못하고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낼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좌우(左右)께서는 하나의 속리(俗吏)인 줄로만 알았는데, 뜻밖에 천심(天心)을 꿰뚫고 월협(月脇)에서 나온 훌륭한 솜씨를 이 상계(像季)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졸서(拙書)는 부탁하신 말씀에 따라 억지로 쓰기는 했으나 모양이 조잡함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창문 그림자는 어둠침침하고 눈은 어른어른 현기증이 나서 어렵스레 써서 보내고 보니, 오히려 남은 종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늙은이의 필력(筆力)이 미처 쓰지 못한 채 해를 보내고 또 해를 보낼 것이니, 가소롭고 가련합니다.
[주D-001]필발(觱發) : 음력 동짓달의 쌀쌀한 추위를 이름. 《시경(詩經)》 비풍(豳風) 칠월(七月) 에 "정월에는 바람이 쌀쌀하다.[一之日觱發]" 한 데서 온 말인데, 자월(子月)인 동짓달을 주(周) 나라에서는 세수(歲首)인 정월로 삼았기 때문에 정월이라 한 것이다.
[주D-002]삼감비(三龕碑) : 당(唐) 나라 때의 비명(碑銘)으로, 본디 잠문본(岑文本)이 비문(碑文)을 짓고 저수량(楮遂良)이 정서(正書)하여 정관(貞觀) 15년 11월에 세웠다.
[주D-003]황학산초(黃鶴山樵) : 원(元) 나라 때의 문인화가(文人畵家)인 왕몽(王蒙)의 호. 같은 문인화가인 예찬(倪瓚)·황공망(黃公望)·오진(吳鎭)과 함께 사대가(四大家)로 일컬어졌다.
[주D-004]천심(天心)을……나온 : 당(唐) 나라 때에 황보식(皇甫湜)이 한유(韓愈)의 글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천심을 꿰뚫고 월협에서 나왔다.[穿天心 出月脇]"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상계(像季) : 불교의 용어로 삼시(三時)인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 중의 하나인 상법 1천년의 말기를 이르는데, 또는 이를 상법과 계법(季法)이라고 하여 계법은 곧 말법의 시대라고 하기도 한다.
[주D-006]졸서(拙書) : 졸렬한 글씨라는 뚯으로, 즉 자신의 글씨를 낮추어 이른 말이다.
[주D-002]삼감비(三龕碑) : 당(唐) 나라 때의 비명(碑銘)으로, 본디 잠문본(岑文本)이 비문(碑文)을 짓고 저수량(楮遂良)이 정서(正書)하여 정관(貞觀) 15년 11월에 세웠다.
[주D-003]황학산초(黃鶴山樵) : 원(元) 나라 때의 문인화가(文人畵家)인 왕몽(王蒙)의 호. 같은 문인화가인 예찬(倪瓚)·황공망(黃公望)·오진(吳鎭)과 함께 사대가(四大家)로 일컬어졌다.
[주D-004]천심(天心)을……나온 : 당(唐) 나라 때에 황보식(皇甫湜)이 한유(韓愈)의 글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천심을 꿰뚫고 월협에서 나왔다.[穿天心 出月脇]"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상계(像季) : 불교의 용어로 삼시(三時)인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 중의 하나인 상법 1천년의 말기를 이르는데, 또는 이를 상법과 계법(季法)이라고 하여 계법은 곧 말법의 시대라고 하기도 한다.
[주D-006]졸서(拙書) : 졸렬한 글씨라는 뚯으로, 즉 자신의 글씨를 낮추어 이른 말이다.
'▒ 완당김정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석농 종우 에게 주다[與石農 鍾愚] (0) | 2007.03.07 |
---|---|
조 이당 면호 에게 답하다[答趙怡堂 冕鎬][4] (0) | 2007.03.07 |
조 이당 면호 에게 답하다[答趙怡堂 冕鎬][2] (0) | 2007.03.07 |
조 이당 면호 에게 답하다[答趙怡堂 冕鎬][1] (0) | 2007.03.07 |
민질 태호 에게 주다[與閔姪 台鎬] (0) | 2007.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