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재종형 도희씨 에게 올리다[上再綜兄 道喜氏]

천하한량 2007. 3. 7. 01:00
재종형 도희씨 에게 올리다[上再綜兄 道喜氏]

삼가 생각하건대, 어제 조서(調書)를 받들고 우러러 용광(龍光)을 뵌 다음 물러나와 초복(初服)으로 갈아입고서 각건(角巾)을 쓰고 집으로 돌아오셨으리니, 이는 진실로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궐(大闕)에 대한 남은 그리움을 펼 길이 없어 대궐을 향해 끝없이 머리를 돌릴 것입니다. 매양 보건대, 옛 어진이들은 훌륭한 모책과 곧은 말을 고휴(告休)하는 때에 우러러 진달하여 그 임금을 도와 큰 공훈을 이룩한 아름다움을 후인들에게 전하여 고해줄 만한 것들이 있었으니, 그 본보기는 고금이 한 가지인 듯합니다. 그래서 삼가 축하드리는 마음을 이루 감당하지 못합니다.
다시 삼가 묻건대, 요즘에는 균체후(勻體候)의 영휴(榮休)가 더욱 창성하십니까? 받들어 두 손 모아 축수드립니다. 야외(野外)에는 성문(聲聞)이 미치지 못하는지라, 이에 감히 대략만 말씀드리고 나머지는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금방 아이들로부터 금원(錦園)에 대한 제문(祭文)을 읽어보니, 글이 정(情)에서 나온 것인지, 정이 글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초췌(蕉顇)하고 완독(婉篤)하고 애염(哀艶)하고 비측(悲惻)함이 충분히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제이의(第二義)에 속합니다. 어쩌면 이와 같이 뛰어난 글이 있단 말입니까. 그 중에도 가장 사기(辭氣)가 안한(安閒)하고 체재(體裁)가 고상하고 바르며, 걸음걸이는 패옥[璜珮] 소리에 맞고 얼굴은 동관(彤管)에 맞아서, 옛날 여사(女士)의 요조한 품격만 있고 화장을 짙게 바른 여인의 기미는 한 점도 없는 것으로 말하자면, 턱 아래는 삼척(三尺)의 수염을 휘날리고 가슴속에는 5천 자(字)의 글을 저장해놓은 내가 곧장 부끄러워 죽고만 싶을 뿐입니다.
우리 집안에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도 어떤 모양인지를 알지 못하고 하나의 보통 테두리 속의 일개 보통 사람으로만 보았으니, 한갓 이 사람만 위하여 슬퍼하고 탄식할 뿐이 아닙니다. 가슴 속에 보배를 품은 사람들을 예로부터 어떻게 한할 수 있겠습니까. 한 치[一寸]의 금심(錦心) 속에 거대한 바다와 높은 산을 갈무리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참으로 아, 기이합니다.

[주D-001]초복(初服) : 아직 사환(仕宦)하기 전에 입던 옷을 이름. 초복으로 갈아 입는다는 것은 곧 벼슬을 그만두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감을 이른 말이다.
[주D-002]각건(角巾) : 처사(處士)나 은자(隱者)가 쓰는 두건을 이름.
[주D-003]동관(彤管) : 붉은 빛의 붓대. 옛날 후궁(後宮)에서 기록을 맡은 궁녀(宮女)가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