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종형 교희씨 에게 올리다[上從兄 敎喜氏][2]

천하한량 2007. 3. 7. 00:59
종형 교희씨 에게 올리다[上從兄 敎喜氏][2]

단(段 하인의 이름자임)이가 와서 삼가 하서를 받아보니, 조석으로 몹시 그리워하던 생각이 조금 우러러 위로가 됩니다. 동지·섣달 이후로는 서신 왕래가 모두 막히어 다만 가례(假隷) 이외에는 다시 소식을 접하지 못하여 안부 드리는 것도 궐루되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체후(體候)는 새해를 만나 편안하시고 합내(閤內)도 고루 평안하십니까? 경현(驚弦)의 나머지에 오직 두 글자 '평안(平安)'을 얻으시기만을 신년의 큰 축원으로 삼으니, 멀리서 간절히 사모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종제는 쌓이고 쌓인 재앙이 또 무고한 아내에게까지 미치어 천 리 밖의 해상(海上)에 부음(訃音)이 갑자기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놀랍고 슬픈 것은 오히려 제이(第二)의 일에 속하고, 40년 가까이 살아온 부부(夫婦) 간의 소중함도 오히려 사사로운 정에 속합니다. 그러나 누대(屢代)의 제사를 일체 전혀 익숙하지 못한 새 며느리와 자식 부부에게만 맡기게 되었는데, 가사 그들의 현효(賢孝)가 대단히 뛰어나서 아비의 사업을 잇고 가도(家道)를 보전할 만하다 하더라도, 아직은 우리 집의 규모(規模)에 익숙하지 못하여 마음은 비록 이르더라도 나이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으니,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지금 세상을 떠난 아내가 예전 병인년에 당했던 일이 오늘날의 일과 흡사하였는데, 그때에는 어른들에게서 보고 느낀 것이 있고, 여러 자씨(姊氏)들이 서로 끼고 도와준 바가 있어 이를 의지하고 힘입어서 오랜 세월을 허비하여 다행히 집안의 규모를 실추시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눈앞의 여러 가지 모양을 어디에서 보고 느끼며 누가 있어 끼고 도와주겠습니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두서가 아득하여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내가 몸소 집안이 이렇게 쇠퇴해짐을 눈으로 보고도 수습을 할 수가 없어 몸을 어루만지며 스스로 슬퍼하는 것이 이 세상을 떠남의 슬픔보다 더 심할 줄을 어찌 헤아렸겠습니까?
초종(初終)의 절차를 제때에 한 것은 다행이거니와, 판재(板材)는 아무 곳에서 취해 썼다고 하니 이는 분수에 지나친 듯합니다. 세 치[三寸]의 오동나무 판자만 쓰면 시체가 썩기도 쉽고 무방할 터인데, 어찌 세제(歲制)의 나머지를 주시기까지 하셨단 말입니까. 산사(山事)는 어느 곳에 정하였으며, 장사 날짜는 언제인지, 막연히 아무런 관섭도 없이 마치 길 가는 사람 보듯 하면서 눈이 말똥말똥 혼자만 살아남아, 뒤에 죽은 자의 책임이나마 다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으니, 이것이 어찌 세간에 살아있는 사람의 일이겠습니까.
순순히 위로해 주시고 면려해 주신 하교에 대해서는 감히 순령(荀令)의 마음 상한 데에 대한 경계를 지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또한 장수(莊叟)의 달관(達觀)도 따르지 않을 것이니, 너무 염려하실 것은 없습니다. 저는 매양 사중(舍仲)의 몹시 노췌(勞瘁)해진 것 때문에 조석으로 염려가 되어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오니, 형주(兄主)께서도 이 아우를 각별히 곁에서 보호하시어 더 이상 손상되는 데에 이르지 않게 해주신다면 바다 밖에서 늘 염려하는 이 마음을 또한 놓을 수가 있겠습니다.
저의 근황은 다만 전일의 상황에 비해 조금도 증감(增減)이 없이 매우 완둔하기가 이와 같습니다. 금년이 벌써 이곳에 온 지 4년째인데, 어떻게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역시 스스로 힘써 억제하면서 세월을 보낼 뿐입니다. 지(芝)의 안부는 연해서 받으시고 원근의 소식들도 모두 무량합니까? 나머지에 대해서는 바람 깃발이 흔들리듯 열 손가락이 마구 망치질을 하므로, 어렵스레 이렇게만 앙달(仰達)하고 아직 갖추어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주D-001]경현(驚弦) : 어떤 일에 대단히 놀란 것을 비유한 말. 현(弦)은 활시위를 말한 것으로, 《곡량전(穀梁傳)》소(疏)에 "활시위에 놀란 새는 활에 대응할 수 없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세제(歲制) : 미리 마련해둔 관(棺)을 이름.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나이 60세가 되면 세제한다.[六十歲制]" 하였는데, 그 소(疏)에 의하면, 관은 쉽게 만들 수가 없으므로, 한 해를 두고 만든다는 뜻에서 세제라 한다고 하였다.
[주D-003]순령(荀令)의……상한 : 순령은 삼국(三國) 시대 위(魏) 나라의 순찬(荀粲)을 이름. 순찬은 자기 부인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일찍이 부인이 겨울철에 열병(熱病)을 앓을 적에는 자신이 밖에 나가 몸을 차갑게 해서 들어와 자신의 몸으로 부인의 열을 식혀주었고, 이어 부인이 죽고 나서는 그 또한 지나친 상심(傷心) 끝에 요절하였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4]장수(莊叟)의 달관(達觀) : 장수는 곧 장주(莊周)를 이름. 장주의 부인이 죽었을 적에 그는 다리를 죽 뻗고 앉아서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했는데, 이것은 곧 장주가, 죽음과 삶이 두 가지가 아니며, 슬픔과 즐거움이 한 가지임을 달관했기 때문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至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