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우아에게 주다[與佑兒]

천하한량 2007. 3. 7. 00:57
우아에게 주다[與佑兒]

난(蘭)을 치는 법은 또한 예서(隸書)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文字)의 향기와 서권(書卷)의 정취가 있은 다음에야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난 치는 법은 그림 그리는 법칙대로 하는 것을 가장 꺼리는 것이니, 만일 그림 그리는 법칙을 쓰려면 일필(一筆)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조희룡(趙熙龍) 같은 무리는 나에게서 난 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 그리는 법칙 한 길[一路]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그의 가슴속에 문자의 향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 종이를 많이 보내온 것을 보니, 너도 아직 난(蘭) 경지의 취미를 알지 못해서 이렇게 많은 종이를 보내 그려주기를 요구한 것이니, 자못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겠다. 난을 치는 데는 종이 서너 장만 가지면 충분하다. 신기(神氣)가 서로 모이고 경우(境遇)가 서로 융회되는 것은 글씨나 그림이 똑같이 그러하지만, 난을 치는 데는 그것이 더욱 많이 작용하는 것인데, 무슨 까닭으로 많은 양으로 하겠는가. 만일 화공배(畫工輩)들의 수응법(酬應法)과 같이 하기로 들면 한 붓으로 천 장의 종이도 쓸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작품은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이 때문에 난을 그리는 데 있어 내가 많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바로 네가 일찍이 본 바이다.
그리하여 지금 약간의 종이에만 써서 보내고 보내온 종이를 다 쓰지 않았으니, 모름지기 그 묘리를 터득하는 것이 옳다. 난을 치는 데는 반드시 붓을 세 번 굴리는[三轉] 것을 묘로 삼는 것인데, 지금 보건대 네가 한 것은 붓을 한 번에 죽 긋고는 바로 그쳤다. 그러니 모름지기 붓을 세 번 굴리는 곳에 공력을 쓰는 것이 좋다. 대체로 요즘의 난을 치는 사람들이 모두가 이 세 번 굴리는 묘를 알지 못하고 되는 대로 먹칠이나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