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종형 교희씨 에게 올리다[上從兄 敎喜氏][1]

천하한량 2007. 3. 7. 00:59
종형 교희씨 에게 올리다[上從兄 敎喜氏][1]

경득(庚得)이 와서 삼가 하서(下書)를 받아보니, 이는 바로 20일도 다 안 된 최근의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바다에 들어온 이후로 인편이 이렇게 신속히 이른 것은 또 처음 있는 일이라 우러러 기쁘고 위로가 되어, 형님의 쑥대 사립문과 기침 소리를 직접 가서 보고 들은 정도뿐만이 아닙니다. 세월은 도도히 흘러 겨울철이 이미 이르렀는데, 고목(槁木) 같은 형체와 사회(死灰) 같은 마음으로 가만히 앉아서 이 흐르는 세월을 보낼 뿐이란 말입니까.
이 해국(海國 여기서는 제주도를 이름)은 아직 겨울 기후가 더디지만, 북쪽 육지에는 아마 산천이 황량해지고 초목이 다 시들었을 것인데, 이때에 체후(體候)와 제절(諸節)이 또 어떠하십니까? 수신(壽辰)이 또 머지 않았고 해옥(海屋)의 산가지는 다시 일갑(一甲)에 이르렀는지라, 저 북두성(北斗星) 자루를 가지고 이 수성(壽星)을 떠다가 멀리서 두 손 모아 축수하는 마음이 또 다른 때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술잔 잡고 한 번의 송축(頌祝) 올리는 정성도 펼 길이 없으니, 아득한 바다 한구석에서 정을 다 펴기가 어렵습니다.
근래의 제절은 더욱 좋으시고 보리(步履) 또한 왕성하시며, 농과(農課)는 몇 분(分)이나 성취하여 정을 붙이고 걱정을 물리쳐서, 곤궁을 참고 견디는 한 가지 법칙을 쾌히 얻으셨습니까? 지(芝)의 소식은 연해서 받으시고 먼 데 기별도 들은 바가 있습니까? 여러 가지로 우러러 염려가 됩니다.
종제(從弟)는 예전같이 고루하고 둔한 데다가 갑자기 피풍증(皮風症)을 얻어 온 몸에 비늘처럼 반점(斑點)이 생겨서 가려움을 견딜 수가 없으므로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예전의 비 올 때에는 잘 자던 그 수면까지도 이제는 이룰 수가 없으니, 이것이 가장 걱정거리입니다.
집사람[室]은 또 노학(老瘧)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갑자기 물리치기가 어려운 병입니다. 그토록 오래 쌓인 초췌함으로 어떻게 지탱을 하겠습니까? 그 동안의 동정을 계속해서 들을 수가 없으니, 다만 여기에 애가 타서 마음을 정할 수가 없습니다.
손중(孫仲)은 요즘에 퍽 무병한데도 걱정이 파도처럼 일어서 혼자 스스로 지쳐 있으니, 실로 작은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무서(無瑞)의 행차는 아직 이루지 못하셨습니까? 염려됨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아직 다 갖추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