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무아에게 주다[與懋兒][3]

천하한량 2007. 3. 7. 00:56
무아에게 주다[與懋兒][3]

집의 사자(使者)가 와서 편지를 받아보고 가을 이후의 안부 소식을 알고 나니, 답답하던 마음이 매우 위로가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이 닥쳤는데, 온 집안의 대소 제절이 다 편안하고, 너의 중부는 저번에 서울에서 돌아와 네가 회갑의 축수잔을 인아(麟兒)와 함께 올렸느냐? 멀리서 매우 염려되는 것이 더욱 다른 때에 비할 바가 아니로구나.
그리고 등잔불 아래 일과로 글 읽는 것은 중지하지나 않았느냐? 늙은 나는 잠이 없어 매양 생각하면 너희들의 글 읽는 소리가 어슴푸레 귓가에 들리는 듯하니, 이 마음이 참으로 괴롭다. 나는 예전처럼 잠꼬대를 하고, 위장은 끝내 시원하게 트이지 않으며, 눈의 흐리는 것도 한결같이 더 심해지기만 하니, 걱정이다. 우(佑)는 아직 그리 아픈 데는 없다.
이 고을에 사는 이생 시형(李生時亨)은 나이 젊고 재주가 뛰어나서 이 학문을 하려고 결심하였는데, 그 뜻이 퍽 견고하여 막을 수가 없으므로 이에 그를 올려 보내노니, 시험삼아 함께 연마해 보아라. 비록 그의 견문은 넓지 못하나 거기에 더 연마만 해놓으면 충분히 이곳의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배편을 따라서 가자면 늦어질 듯하다. 아직 다 갖추지 않는다.
북쪽으로 온 이후로는 소식을 들을 데가 없는데다 비바람이 연해서 몰아치고 장마비까지 또 심해지니, 멀리서 매우 많이 염려되었다. 그런데 방금 인편이 이르러 수서(手書)를 보니, 온 집안에 그리 손상됨이 없음을 알겠다. 그러나 중수(仲嫂)의 병환이 저번에는 퍽 나빴다가 이
제는 비록 조금 덜한다 하더라도 염려스러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느냐.
소식이 있은 후로 여러 날이 지났는데, 대소가 모두 편안하여 다시는 그리 괴로운 일이나 없느냐? 나는 3일 동안 몸이 편찮았으나 다행히 손상됨은 없다. 이제 또 순일(旬日)을 만났는데, 강루(江樓)가 자못 화창하고 수천(水泉)이 대단히 아름다워서 조금 유유자적할 수 있고, 가옥에 단란히 모여앉아 친척들끼리 정담을 나누면서 10년 동안 쌓인 회포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으니, 생일을 쇠어주는 일도 오늘날에는 받을 수가 있겠다.
눈의 어른거리는 증상이 더위를 만나 더욱 심해져서, 편지를 보내온 곳에 일일이 다 답장을 쓰지 못하고 이 평안의 소식 한 장만을 부쳐 보내노니, 여러 곳에 두루 안부를 전해 주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