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종질 상일 에게 주다[與從姪 商一]

천하한량 2007. 3. 7. 01:00
종질 상일 에게 주다[與從姪 商一]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승천(陞遷)된 것에 대해서는 감격하여 축하한다. 오늘날에 우리 집안 사람으로 이런 기회를 얻은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존외왕부(尊外王父)의 옛 업적을 소급할 수 있고, 작고하신 수씨(嫂氏) 또한 일찍이 존외왕부를 모시고 가셨던 지역이므로, 굽어보고 쳐다보며 느끼는 회포가 또 다른 군(郡)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생활의 풍검(豐儉)에 대해서는 세속의 생활 방식을 면할 수 없을 것인데, 만일 이것이 없었던 때를 가지고 생각하면 여유있는 것이 기쁘겠으나, 서생(書生)에게는 매양 분수에 넘침을 경계하는 것이 있고 보면 검박함도 또한 기쁜 것이다. 《대역(大易)》에서 '집에서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은 집에서 먹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니, 기쁜 대로 순리대로 지낸다면 어디 간들 여유작작하지 않겠느냐.
또 큰 바다가 앞에 가로질러 있어 푸른 고래[鯨]와 붉은 게[鰲]는 나의 소유이고, 방어[魴]와 연어[鰱]도 돈을 따지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집에서 먹는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것이겠느냐. 나 같은 노탐(老貪)은 벌써 입 언저리에 침을 흘리면서 봄 방어를 한껏 먹으리라 자부하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다. 다시 너를 위하여 구복(口福)을 축하하노니, 능히 자잘한 알[卵]이 붉은 꼬리[赬尾 곧 방어를 말함]로 바뀐다면 어찌 식지(食指)가 크게 움직이지 않겠느냐. 더 말하지 않는다.

[주D-001]집에서……좋다 : 집에서 먹지 않고 벼슬하여 조정(朝廷)에서 녹봉을 받아 먹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 《주역(周易)》 대축괘(大畜卦)에 "크게 기름은 곧은 것이 이로우니, 집에서 먹지 않는 것이 좋다.[大畜利貞 不家食吉]"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식지(食指)가……움직이지 : 식지는 집게손가락인데, 이 집게손가락이 자연히 움직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조짐이라는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