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사계 상희 에 주다[與舍季相喜][6]

천하한량 2007. 3. 7. 00:54
사계 상희 에 주다[與舍季相喜][6]

새해가 되고 보니 해상(海上)에 머무른 지가 꼭 9년이 되었네. 가는 것은 굽히고 오는 것은 펴지는 법이라, 굽히고 펴짐이 서로 감응하는 이치는 어긋나지 않는가 보네.
더구나 지금은 큰 경사가 거듭 이르고 성효(聖孝)가 더욱 빛나서, 온 나라 백성들이 기뻐하여 춤을 추고 큰 은택이 사방에 미치니, 비록 나같이 험난한 곤경에 빠진 사람도 빛나는 천일(天日) 가운데서 벗어나지 않는지라, 묵묵히 기도하여 마지 않네. 그리고 별도로 사사로이 두 손 모아 축하하는 것이 있네. 사중의 회갑이 또 요즈음인데 백발의 형과 아우가 서로 즐겁게 모일 수 있겠는가?
지난 동지 섣달 이후로는 북쪽 배가 들어오기만 하고 남쪽 배는 나가는 일이 없어서 마침내 오늘에 이르기까지 간간이 이쪽의 서신만 계속해서 부치고 또 부쳤는데, 이것이 아마 모두 한결같이 진두(津頭)에 막혀 있는 듯하네.
구성업(具聖業)과 정원종(鄭元種)이 서로 이어 찾아와서 수삼월(數三月) 사이에 연달아 근래의 서신을 보았는데 정원종 인편은 17~18일을 넘지 않은 아주 최근의 소식이었기에, 세밑의 쓸쓸하고 애타던 생각이 많이 위로가 되었네. 지난 겨울에는 이곳이 매우 추워서 북쪽 육지도 아마 여기보다 더 춥지는 않았을 듯하네.
다시 묻건대, 세후에는 온 집안이 길상(吉祥)을 맞이하여 다 편안한가? 그리고 사중은 회갑 노인(回甲老人)이 되어 수(壽)가 금석(金石)같이 탄탄하고 사체(四體)가 건강하여, 이전의 여러 가지 병증은 일체 다 물러가고 새로운 행운이 바야흐로 돌아오기를 멀리서 늘상 송념(誦念)하는 바이네. 늙은 자씨와 서모의 옥주(屋籌)도 각각 하나씩을 더하였으니, 기뻐하여 칭송하는 마음을 감당치 못하겠네. 제절이 모두 편안하고 왕성하기가 어제와 같은가?
경향(京鄕) 대소가(大小家)의 장정이나 노약자들도 한결같이 편안한가? 지난해 검손(儉孫)의 돌상[晬盤]에서 길상(吉相)의 징조가 이미 많이 나타났으니, 그처럼 큰 병을 앓은 나머지에 더욱 다행스러운 일이네. 또 1년을 더하였으니 대단히 기쁘네. 검손의 어미는 또 순산(順産)
하여 연달아 득남(得男)을 하였는가?
모질고 완악한 나도 또 신년(新年) 사람이 되었으나, 병세는 점점 더 고질화되어가고 일체 지난번의 편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조금도 더하거나 덜한 것이 없네. 아이와 여러 아랫것들은 아직 무량하니, 이것이 다행이네. 전번의 편지도 아직 발송하지 못하고, 또 신년의 안부 편지를 대략 이와 같이 두어 자 적어 부치노니, 어느 날에나 전번의 편지가 발송되어 오늘의 이 안부 편지와 서로 뒤바뀌어 들어가지 않게 될지 모르겠네. 이것이 자못 걱정이네. 나머지는 모두 남겨두고 다 기록하지 않네.
개심표문(開心表文)을 일체 산정(刪定)한 데 대하여 자네의 뜻도 달리함이 없으니 매우 다행스럽네.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일체 자네의 말대로 하여, 체단(體段) 또한 먹을 금같이 아낀다[惜墨如金]는 법칙을 쓸 뿐만 아니라, 지금 어디로 좇아 질정할 길이 없다[今無由從以質之]는 한 구절에 이르기까지 한두 글자를 산삭하더라도 이것이 진실로 불가한 것은 아니네.
그러나 이것을 당초 하필(下筆)할 때에 누차 초고(草藁)를 바꾼 것은 곧 한 군데도 빙거할 곳이 없기 때문이었으니, 자손이 된 사람의 마음에는 송구스러움을 감당할 수 없고 또 처창하고 허전함도 감당할 수가 없네. 대체로 조어(措語)는 약간 긴중(緊重)하여야만 신중한 체단을 잃지 않겠거니와 그러나 만일 이 한두 글자를 산삭한다면 아마도 조어가 장중한 맛이 없을 듯하네. 이 때문에 작자(作者)의 마음이 그 경중과 천심의 사이에서 가장 고심하여 저울질을 했던 것이네.
대체로 문자(文字)를 짓는 데는 산삭하여 간결하게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만, 또한 보태서 길게 만드는 것을 귀히 여기는 곳도 있는 것이니, 의당 한결같이 산삭하는 법칙만을 정격(定格)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네. 그리고 문자란 음향(音響)과 절주(節奏)에 관계가 있는데, 이것이 유독 시율(詩律)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다시 더 십분 헤아려보게나.
그리고 전면(前面)의 예자(隸字)에 대해서는 만일 방군 북조(方君北棗)에게 시키면 아마 각법(刻法)을 많이 그르치지는 않을 듯한데, 만일 그가 될 수 없다면 또 누가 북조만큼 해낼 사람이 있단 말인가. 동삼(董三)의 종인(宗人)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반드시 잘 새기는 사람을 얻어서 새기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자법(字法)의 득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얼마나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신중히 해야 할 일이던가. 그런데 어떻게 경홀히 할 수가 있겠는가.
《본초》 등 세 가지 서책에 대해서는 이곳 사람이 그 사실을 듣고는 또 돈을 내서 사람을 고용하여 특별히 이 사람을 올려보내서 그 책들을 가져오게 할 뒷받침으로 삼으려고 하는데, 그 뜻을 막을 수 없어 이에 서신을 작성하여 부쳐 보내니, 가는 즉시 단단히 잘 싸서 보내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내가 전번에 말했던 다른 서책들도 함께 부쳐준다면 좋겠으나, 한갓 포장만 클 뿐이 아니라 더위를 무릅쓰고 지고 오기도 어려우니, 우선 눈앞의 사정을 살펴서 재정(裁定)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석암(石菴)의 서첩(書帖)은 몹시 한번 보고 싶으니, 혹 함께 보내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호)의 기정시첩(岐亭詩帖) ―또 성저(成邸)·요희전(姚姬傳)·양동서(梁同書) 제인의 것이 있는데, 양동서의 것은 초장(草裝)만 되어 있고 미처 완장(完裝)을 못한 것이다.― 책장 안에 들어 있는 듯한데, 만일 이 첩본(帖本)을 찾아 부쳐준다면 매우 다행스럽겠네마는, 다만 이 시속 풍조로 보아서 찾아내기가 또한 어려울 듯하네. 농상(農祥) 편액(扁額)은 조생(曺生)이 새긴 것이 과연 세속의 기술자보다 나을 것이네. 그런데 이합(彝閤)이 한 본(本)을 취해간 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일 좋아함을 알겠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부끄럽게 하는구려. 조생은 석각(石刻)도 잘하니, 개심표문(開心表文) 석각의 일에 참여시켜 볼 만하지 않겠는가. 시험삼아 헤아려 보게.
정동(貞洞)의 종씨(從氏)는 다시 중서성(中書省)을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것이 비록 수규(首揆 영의정의 별칭)와는 다르지만, 정중(亭中)으로 돌아와 한가히 지내면서 요양이나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네. 듣건대, 이미 출각(出脚 다시 벼슬길을 나감)을 했다 하니, 요즘의 제절은 과연 편안하며 행보(行步)의 범절도 벽돌 그림자와 누수 소리의 사이에 거리낌이 없는가? 종씨를 위하여 늘 염려가 되네.
청애당첩(淸愛堂帖)은 근래에 과연 추심해 왔는가? 이것 또한 편리할 대로 가까운 인편에 부쳐 보내준다면 다행스럽겠네. 죽기 전에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것들을 점차로 가져다가 한 번씩 볼 계획으로, 비록 별도의 경비를 들여서 특별히 사람을 부리는 일이라도 따지지 않고 도모하려고 하니, 그렇게 헤아려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주D-001]옥주(屋籌)도……더하였으니 : 사람의 장수(長壽)를 축하하는 말. 해상(海上)의 선인(仙人)이 머무를 곳에 선학(仙鶴)이 해마다 산가지[籌] 하나씩을 물어온다는 전설(傳說)에서 온 말이다.
[주D-002]체단(體段) : 한 편(篇)의 문장(文章)을 구성하는 데 있어 그 문장 대체(大體)의 포치 조직(布置組織)을 말한다.
[주D-003]먹을……법칙 : 특히 그림을 그릴 때에 종이 위에다 먹물을 아주 경미(輕微)하게 떨어뜨리는 법칙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전하여 문장을 간결하게 쓰는 것에 비유하였다.
[주D-004]석암(石菴) : 청(淸) 나라 때의 문인(文人)인 유용(劉墉)의 호. 유용은 벼슬이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이르렀고, 특히 글씨에 뛰어났다.
[주D-005]이합(彝閤) : 이재합하(彝齋閤下)의 준말로, 당시 재상으로서 호가 이재인 권돈인(權敦仁)을 가리킨 말이다.
[주D-006]벽돌……소리 : 여기서는 즉 조정(朝廷)에 출사(出仕)하는 데 있어 정해진 시간을 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