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사계 상희 에 주다[與舍季相喜][3]

천하한량 2007. 3. 7. 00:52
사계 상희 에 주다[與舍季相喜][3]

주량(舟梁)의 큰 경사를 온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여 축하하였네. 여기서는 최후에야 경례(慶禮)의 날짜를 들었고, 또 경례를 치른 뒤의 소식은 지금의 인편에게 비로소 듣게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한 하늘 밑에 함께 사는 사람의 일이겠는가. 바라보며 사모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더욱 어떻게 말할 수 없네.
보여준 말은 하나하나 다 살폈는데, 천만 번 생각을 해보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실낱 같은 한 목숨을 구차하게 지금까지 연명해온 사람이 끝내 또 무슨 좋은 일을 기다리자고 마치 아무런 연고 없는 사람처럼 먹고 자고 한단 말인가. 또 여기에 처박혀 있다가는 더 이상 지탱하여 보존할 방도가 만무하니, 오직 빨리 죽기만을 바랄 뿐이네.
그리고 철(鐵)이는 초봄에 장차 행장을 꾸려 보내려고 하네. 이제 또 무슨 말로 다시 그를 만류한단 말인가. 다만 이 장강(瘴江) 가에서 죽는 나의 해골을 수습해줄 사람이 없으니 또한 다시 여기에서 무엇을 계교하겠는가. 만약 무금(戊金)에게 반함(飯含)을 시키고 갑금(甲金)에게 명정(銘旌)을 들게 한다면 이 또한 어찌 차마 못할 일이 아니겠는가.
무금의 많은 노고에 대해서는 충성을 다한다고 이를 만하나, 이 한 가지 장점이 있는 반면에 또 한 가지 단점이 있어, 모든 일을 다 처리하는 데는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네. 그래도 매우 다행스러운 것은 철(鐵)이가 곁에서 검칙(檢勅)하고 재제(裁制)해준 것이었는데, 만일 앞으로 그 사람이 없으면 장차 어느 지경에 이를지 모르겠네.
한 입으로 다 말하기도 어렵고, 한 붓으로 다 기록하기도 어려우니,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죽든지, 살든지 간에 반드시 철이를 대신할 사람이 있는 다음에야 곳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니, 또한 서울에서 재량(裁量)해 주기를 기다릴 뿐이네. 여기에서는 정신이 두루 미쳐갈 수 없으니, 다시 나를 위하여 깊이 생각해줄 수 있겠는가?
세선(歲船) 편에 부친 김치 항아리 등속은 과연 아무 탈 없이 도착하였네. 그래서 몇 년 동안에 처음으로 김치의 맛을 보게 되니, 매우 상쾌함을 느끼어 내 입에는 너무 과람한 듯하였네. 나주 목사(羅州牧使)가 또 이번 인편에 약간의 김치 항아리를 보내 왔는데, 이 또한 지난번처럼 패손되지 않아서 위장을 틔워줄 수 있을 듯하네.

[주D-001]주량(舟梁)의……경사 : 왕비(王妃)를 맞아들이는 경사를 비유한 말. 주량은 배들을 모아서 죽 연결하여 다리를 만드는 것을 이르는데, 주 문왕(周文王)이 태사(太姒)를 맞이한 광경을 노래한《시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큰 나라에 따님 계시어, 천녀(天女) 와 같으신데, 예로 길일을 정하시고, 친히 위수에서 맞이하실제, 배이어 다리를 놓으시니, 그 광채가 드러나지 않는가.[大邦有子 俔天之妹 大定厥祥 親迎于渭 造舟爲梁 不顯其光]"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