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사계 상희 에 주다[與舍季相喜][8]

천하한량 2007. 3. 7. 00:54
사계 상희 에 주다[與舍季相喜][8]

양가 하인[梁隸] 편에 싸서 보낸 서본(書本)은 어느 날에나 도달할는지 알 수 없어 삼가 염려됨을 감당치 못하겠네. 들어간 뒤의 소식에 대해서는 어느 인편을 막론하고 즉시 편리할 대로 소식을 알려주어야 하네.
그리고 고동(古董)과 약간종의 서화를 다시 들여보내 달라는 말이 있는데, 왜 별도로 목록을 자세하게 기록해 주지 않았는가? 매우 답답하구려. 고동은 별로 간직한 것이 없고, 지금 그곳으로 들여가는 것은 바로 송인(宋人)이 옛것을 모방하여 만든 것인데, 비록 상(商)·주(周) 시대의 고물(古物)은 아닐지라도 근대 사람들이 만든 안동(贋銅)과는 비할 바가 아니네. 상·주 시대의 고물은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건너온 것이 없으므로 내가 본 것도 겨우 서너 가지에 불과하고, 애당초 안동위금(贋銅僞金)은 간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안에 이런 것이 없는 것이네.
그런데 들여갈 만한 물건이 없는데도 마치 거북의 털[龜毛]이나 토끼의 뿔[兎角] 같은 것을 강요한다면 내 또한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니, 특별히 이 뜻으로 오군(吳君) 등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겠네.
시역(寺役)은 근간에 과연 어떻게 끝마친단 말인가. 그를 위하여 매우 염려가 되네. 편액 새기는 일은 의당 도모해야 하는데, 이곳에 새김질을 잘하는 사람이 전번에 이미 죽었으니, 이것이 대단히 걱정이네. 다른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모두가 그 사람 솜씨에는 미치지 못하네.
상량문(上梁文)은 비록 반(潘)·육(陸)·임(任)·유(庾)의 솜씨에다 부합되지는 못하나, 긴 투식의 성어(成語)는 없으니 그것이 오히려 좋을 뿐이네.
불랑(佛朗)의 패서(悖書)에 대해서는 다만 천만 번 통분할 뿐이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올 것을 두려워하고 겁내는 것은 바로 가소로운 일이네. 다시 오는 것은 기필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설령 다시 오는 일이 있더라도 그 배 한 척으로써야 어떻게 몇 만리를 넘어 타국의 지경에 와서 소란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들으니, 그 지나간 배의 규모는 곧 중간층 선박인데, 그들은 매양 이 중간층 선박으로 천하 만국을 두루 돌아다니고 큰 배는 항상 쓰지 못하며, 중간 배에 탑승한 사람의 숫자는 모두 8백 명 안팎에 불과하다고 하였네. 그러니 이 8백 명의 병력으로 또 어떻게 타국의 지경에서 소란을 일으키겠는가.
그리고 또 명(明) 나라 가정(嘉靖 명 세종의 연호 1522~1566) 연간으로부터 서번(西番)의 선박들이 차차로 광동성(廣東省) 등처에서 무역을 하였고, 만력(萬曆 명 신종의 연호 1573~1620) 이후에는 마침내 그들이 호경(濠鏡)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고 상선(商船)을 20척으로 한정하여 해마다 내왕하게 하였는데, 그후로는 20척의 상선이 숫자대로 다 오지 못하고 차차로 줄어들었네. 그런데 듣건대, 근년 이래로는 선박이 10척 안팎에 불과하다고 하니, 이것이 모두 중간층 선박이네. 그러니 비록 선박이 10척이라 하더라도 병력은 8천에 불과할 것인데, 이 8천의 병력으로 또 어떻게 멀리 타국의 지경을 건너오며, 더구나 또 10척의 선박은 논할 것도 아님에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런데 사교도(邪敎徒)들이 서로 화응하여 이 패서(悖書)를 지어서 위협을 하는 것은 그 간계(奸計)가 명약관화한
것이니, 더욱 분통할 일이네.
불랑(佛朗)이란 칭호는 곧 명(明) 나라 때에 불랑으로 칭했던 것인데 대포(大砲)의 호칭을 불랑기(佛朗機)라고 한 것도 바로 그 칭호를 따른 것이네. 중국에서는 매양 서번(西番)을 불랑이라 칭하고, 혹은 홍모(紅毛), 혹은 하란(荷蘭), 또 혹은 아난(阿難)이라고도 칭하는데, 지금 이 불랑이란 칭호는 바로 중국에서 칭하는 것에 따라 운운한 것이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불랑 사람인지는 또 기필할 수가 없네.
《곤여도지(坤與圖志)》에도 불랑이란 칭호가 또 한둘이 아닌데, 불랑찰(佛朗察)이니 부랑제(富朗濟)니 하는 등의 잡호(雜號)가 일정하지 않네. 대체로 영길리(英吉利)와는 또 서로 같지 않으니, 혼동하여 하나로 보아서는 안 되네.
심의(深衣)는 비록 시의(時宜)에 맞지 않더라도 오히려 의거하여 모방한 곳이 있으니, 백운(白雲) 주씨(朱氏) 등 제인의 분분한 이론보다는 월등히 나을 것이네. 연사(緣紗) 또한 무슨 해로움이 있겠는가.

[주D-001]반(潘)……유(庾) : 모두 문학(文學)으로 당세에 명성을 천하에 떨쳤던 진(晉) 나라 때의 반악(潘岳)·육기(陸機)와 양(梁) 나라 때의 임방(任昉)·유신(庾信)을 합칭한 말이다.
[주D-002]불랑(佛朗)의 패서(悖書) : 불랑은 지금의 프랑스를 이름. 패서란 바로 헌종(憲宗) 12년인 1846년에 프랑스의 동양함대사령관 세실 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충청도 해역에 나타나, 지난 헌종 5년인 1839년 기해사옥(己亥邪獄) 때에 프랑스의 선교사(宣敎師)들을 학살한 책임을 물음과 동시에 국가간의 통교(通交)를 강력히 요구하는 서한(書翰)을 우리나라에 전달한 사건에서 온 말이다.
[주D-003]백운(白雲) 주씨(朱氏) : 명(明) 나라 때의 사학자(史學者)로서 특히 《백운고(白雲稿)》·《심의고오(深衣考誤)》 등의 저서를 남긴 주우(朱右)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