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사계 상희 에 주다[與舍季相喜][7]

천하한량 2007. 3. 7. 00:54
사계 상희 에 주다[與舍季相喜][7]

별도로 보여준 내용은 일일이 다 살피었네. 죄는 유정(有頂)에 통하고 과실은 산처럼 높이 쌓인 이 무상한 죄인이 어떻게 오늘날 이런 일을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감격의 눈물이 얼굴을 덮어 흐를 뿐이요, 언어(言語)나 문자(文字)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더구나 또 나의 졸렬한 글씨를 특별히 생각하시어 종이를 내려보내시기까지 하였으니, 용광(龍光)을 입은 곳에 대해신산(大海神山)이 모두 진동을 하네.
근래에는 안질이 더욱 심해짐으로 인하여 도저히 붓대를 잡고 글씨를 쓸 수가 없었으나, 왕령(王靈)이 이른 곳에 15~16일간의 공력을 들이어 겨우 편액(扁額) 셋과 권축(眷軸) 셋을 써놓았을 뿐이네. 그리고 나머지 두 권축에 대해서는 이렇듯 흐린 눈으로는 도저히 계속해서 써낼 방도가 없어 부득이 다시 정납(呈納)하게 되었는지라, 그 사실대로 오군(吳君)에게 보낸 편지에 다 진술하였는데, 천만 번 송구스러움은 잘 알지만, 억지로 할 수 없는 것들 역시 억지로 할 수가 없었네. 또한 이 상황도 오규일(吳圭一)에게 별도로 언급해 주는 것이 좋겠네.
네 글자 편액에 대해서는 달리 검색할 만한 문자가 없어 고심하다가, 일찍이 무씨(武氏)의 상서도(祥瑞圖) 가운데 있는 말을 본 것이 기억나서 '목련리각(木連理閣)' 네 글자를 써서 올렸네. 그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오규일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 있으므로 여기에는 거듭 언급하지 않으니, 그 편지를 가져다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 진부(陳腐)한 상담(常談)이 되지 않고 전아(典雅)한 뜻이 있는 것은 극히 뽑아내기가 어렵거니와, 이것도 그리 거리낄 것은 없을 듯하네.
홍두(紅豆)의 뜻은 끝내 화려함에 관계되지만, 붓을 들고 잊지 못하는[峯筆不意] 뜻에 따라 홍두시첩(紅豆詩帖) 아래에 몇 자를 써서 올린 것은 감히 잠풍(簪諷)의 뜻을 붙인 것이네. 이미 글씨를 써서 올리고 보니 또 말씀을 올릴 것이 있었는데, 알고도 말하지 않는 것은 또한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참람하고 망녕됨을 헤아리지 않고 이와 같이 진술하였으니, 나를 죄주거나 알아주거나 간에 다시 어찌 해야겠는가?
두 편액은 서경(西京)의 옛 법칙대로 써서 제법 웅장하고 기걸한 힘이 있어 병중(病中)에 쓴 것 같지 않았네. 이는 곧 왕령이 이른 곳에 신명의 도움이 있었던 듯하고 나의 졸렬한 필력으로 능히 할 바가 아닌 것이니, 이 뜻도 오규일에게 별도로 언급하여 주게. 그리고 종이가 여유있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마음대로 필력을 구사할 수가 없으니 이 뒤에 만일 이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별도로 여벌의 종이를 갖추는 것이 아주 좋겠네. 이 뜻도 오규일이 알도록 하게. 공첩(空帖)의 경우도 여벌이 있으면 좋겠네.
보내온 대필(大筆)들은 모두 용도에 맞지 않아서 다 돌려보내네. 붓만 생각하고 먹은 생각하지 않았으니 또한 일소(一笑)를 금치 못하겠네. 내가 가져온 약간의 당묵(唐墨)을 모두 써도 도리어 부족할 염려가 있어 약간의 해묵(海墨)과 섞어서 썼네. 자옥광(紫玉光) 등속의 당묵 서너 자루를 편리할 대로 보내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박혜백(朴蕙百)은 제법 붓을 고르는 데에 능하여 청서필(靑鼠筆)을 낭호필(狼毫筆)보다 더 치면서 스스로 그 묘리를 얻었다고 여기어, 남이 혹 자신의 견해를 그르게 여기더라도 전혀 돌아보지 않았네. 그런데 그가 초미필(貂尾筆)을 보고 나서는 대단히 이를 칭상(稱賞)하여 낭호필·청서필보다 품질이 우수하다고 하였으니, 그의 말이 진실로 잘못된 것이 아니네. 그러나 이 밖에 또 초미필·낭호필보다 더 나은 것들을 등수로 다 헤아릴 수도 없으니 호남에서 생산되는 여러 품종의 붓을 두루 보아 그의 안목을 넓히게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네.
옛 선백(禪伯 승려를 이름)이 이른바 '집의 밖은 푸른 하늘이다.[屋外靑天]'라는 것을 문득 여기에서 다시 보겠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호)의 필(筆)에만 얽매여 왕허주(王虛舟)·진향천(陳香泉) 등 여러 대가들이 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망녕되이 필을 말하니, 나도 모르게 아연히 한번 비웃을 뿐이네.
수(壽) 자는 주자(朱子)의 필이네. 들으니, 이번 을사년(헌종 11, 1845)에 형악(衡嶽)의 연화봉(連花峯)에서 얻은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건너온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진적(眞跡)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네. 원 탁본에는 '회옹(晦翁)'이란 두 글자가 있었는데, 전모(傳摹)하면서 이것을 빼놓은 것이 한탄스럽네. 이곳의 학도들로 하여금 모각(慕刻)을 하게 하였는 바 원모(原摹)의 체식을 잃지 않았으므로, 세 본(本)을 보내오니, 두 본은 경향(京鄕)에서 나누어 갖고 한 본은 이합(彝閤 권돈인을 이름)에 전하여 바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해지(海志)》는 요즘의 소일거리가 좋이 되지만, 눈이 이렇게 어른어른하여 전일처럼 간독(看讀)하지 못하여 한탄스럽네. 초록(抄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니, 큰 인찰지(印札紙)로 된 공책(空冊) 두 권을 보내줄 수 있겠는가?
두 편액은 이처럼 어른거리는 눈으로는 쓰기도 어렵거니와, 보내준 종이는 명반수(明礬水)가 너무 지나치게 들여져서 붓을 구사하기에 합당치 않으니, 도리어 이곳 종이만 못하겠네. 아무리 각본(刻本)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좋은 종이라야 쓸 수 있는 것이니, 각본이라고 해서 종이를 따지지 않는 것은 글씨의 어려운 곳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네. 당(堂)의 편액이 또 재(齋)의 편액보다 나은 듯하니, 오군(吳君)으로 하여금 좋고 궂은 뜻을 알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바다 풍속이 2월 보름 이전에는 배를 출항시키지 않으나, 보름 이후에는 구애될 것이 없네. 지금 이것은 별도로 한 인편을 정하여 보내는데 과연 즉시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아무튼 바다만 건너고 나면 그리 지체되지 않을 듯하네.
성책(成冊)의 일에 대해서는 들으니, 장차 특별히 사람을 정해서 올려보낼 것이라고 하였네. 다만 사문(赦文)이 아직 이르지 않아 날마다 두 손 모아 기다릴 뿐이네. 거년에도 2월 초에야 이르렀으니, 바다 밖의 일은 매양 이러한지라 애가 타고 답답함을 감당치 못하겠네.
죽통연(竹筒硯)에 대해서는 헤아려 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네. 나의 책장에는 아예 이런 벼루가 없었으니, 반드시 그 기록이 잘못되었을 것이네. 오규일에게 보여주어 별도로 한 통(通)을 기록해 가서 꼭 가져와 돌려 보여주도록 하게. 그리고 효경당연(孝經堂硯)은 무(懋)가 돌아갈 때에 부친 것이기 때문에 무로 하여금 즉시 찾아내서 그곳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였으니, 이것으로 대신 올리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리고 안현(安峴)에서 말씀하신 약간종(若干種)에 대해서는 황대치(黃大癡)의 화축(畫軸) 및 이묵경(伊墨卿)의 예련(隸聯 예서로 쓴 연구를 이름) 등 두 가지를 보내서 다행히 안현에 전송(轉送)하여 이변(李弁)에게 교부(交付)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네. 대치(大癡)의 화축 또한 무(懋)가 갈 때에 올려 보낸 것이므로 아울러 찾아내서 올려 보내도록 하였으니, 또 별도로 편지 한 장을 작성하여 또한 이변에 양찰하여 수령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주D-001]유정(有頂) : 불교(佛敎)의 용어로 색계(色界)의 제사천(第四天)인 색구경천(色究竟天)의 별칭인데, 즉 세계(世界) 최상(最上)의 지위에 위치했다 하여 이른 말이다. 여기서는 곧 죄악이 하늘에 사무침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2]왕허주(王虛舟)·진향천(陳香泉) : 왕허주는 청 나라의 학자로 특히 글씨에 뛰어났던 왕주(王澍)를 이름. 허주는 그의 호이다. 진향천은 역시 청 나라의 문인으로 특히 시(詩)·서(書)에 뛰어났던 진혁회(陳奕禧)를 이름. 향천은 그의 호이다.
[주D-003]황대치(黃大癡) : 원(元) 나라 때의 화가인 황공망(黃公望)을 이름. 대치는 그의 호인데, 그는 특히 산수화(山水畫)에 뛰어났다 한다.
[주D-004]이묵경(伊墨卿) : 청 나라 때의 문인으로 특히 시(詩)·서(書)에 뛰어났던 이병수(伊秉綬)를 이름. 묵경은 그의 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