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중 명희 에게 주다[與舍仲 命喜][5] |
지난달에 안 주부(安主簿) 편과 제주(濟州)의 경저리(京邸吏)가 돌아가는 편에 연달아 부친 서신이 있었는데, 듣건대 아직껏 포구로 내려가는 곳에 머물러 있어 즉시 출발하지 못했다 하니 아마 이 서신과 함께 나란히 들어갈 듯하네.
지난 26일 경득(景得)과 나주(羅州) 김학렬(金學烈)이 함께 들어온 편에 연해서 두 차례 부친 서신을 보았는데, 망자씨(亡姊氏)의 부음(訃音)을 끝내 여기에서 들었으니, 통곡하고 통곡할 뿐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비록 환후(患候)가 대단히 위중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큰 바다 밖에서 또 이 자씨의 부음까지 받을 줄이야 어찌 헤아렸겠는가. 몹시도 슬프구려. 별세하기까지 근 70년 동안에 온갖 험난한 일들을 갖추 겪으면서도 마치 생사의 고락을 초월한 듯하더니 이제는 다시 호연히 떠나가서 이 세상에 조금도 근심을 남겨두지 않게 되었네.
그런데 이 기구하고 궁박한 나는 백발의 나이로 영락하여 멀리 떨어져 마치 길 가는 나그네 같아서 동기간의 사생존망에 대해서도 전혀 관섭하는 것이 없으니, 대체 내가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생각하건대, 자씨께서는 그 어두운 가운데서도 오히려 바다 밖에 있는 불초하고 무상한 이 몸을 잊지 못하여 가슴이 찢어질 듯이 슬퍼하실 것이니, 살아있는 나는 더욱 슬플 뿐이로세. 초종(初終)의 온갖 절차는 다행히 때에 맞춰 모양새를 갖추었으며, 장사 지낸 날짜는 과연 어느 때였는가? 합부(合祔)한 것도 이롭다고 하던가? 나는 그런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으니, 이것이 어찌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의 일이겠는가. 북쪽을 바라보고 깊이 탄식하면서 따르는 것은 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구려.
소식이 있은 이후로 또한 늦여름이 되어 삼복(三伏) 더위가 더욱 심해지니, 이 지역의 장기(瘴氣)로 인한 괴로움을 또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다시 생각하건대, 온 집안이 한결같이 편안하고, 사중(舍仲)은 더욱 신수가 좋아져서 기거 동작과 잠자고 먹고 하는 것들이 모두 손상됨이 없으며, 사계(舍季) 또한 편히 지내고, 크고 작은 제반 상황이 모두 걱정되는 것이나 없는가?
중수(仲嫂)께서는 남은 병기(病氣)가 다시 발작하지나 않으며, 우(佑)의 아내의 병세는 얼마나 퇴치했다는 기별이나 있었는가? 이것은 아마 초학(初瘧)의 증세이므로, 의당 가을이 되어 한계가 차면 절로 나을 듯하니, 쓸데없는 처방을 섞어 써서 한갓 원기만 손상시키지 말아야 하네. 두 자씨(姊氏)와 늙은 서모(庶母)도 한결같이 편안하신지 여러 가지로 간절히 염려가 되네.
나의 상황은 지난번 편지 내용과 비교하여 별로 덧붙일 것은 없으나, 코의 병세는 전과 같은데 입 속의 열기는 갑절이나 더 치성하여 모든 치아가 다 흔들려서 점차로 더욱 음식물을 씹을 수 없어 한 달 이전까지 먹었던 식물도 지금은 씹어 삼키지 못하는 형편이네. 이 때문에 먹는 것이 줄어들었는데, 위(胃)에서는 비록 받아들이려고 하나 또한 어쩔 수가 없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안(安 하인의 이름자임)의 학질은 가끔 다시 발작하곤 하니, 이것이 걱정스럽네.
지난 20일 이후에 영길리(英吉利 지금의 영국을 이름)의 배가 정의(旌義)의 중도(中島)에 와서 정박하였던 바, 그곳의 거리는 여기서 거의 2백 리나 되고 저들의 배는 별로 다른 일이 없이 다만 한번 지나가는 배였을 뿐인데, 이 때문에 제주도 전역에 소요가 일어 지금까지 무려 20여 일 동안이나 진정되지 못하여 주성(州城)은 마치 한 차례의 난리를 겪은 듯하네. 그런데 이곳에는 가까스로 백성들을 타일러서 다행히 주성과 같은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네.
경득(景得)을 그 즉시 내보내려고 하였으나, 이 소요 때문에 뱃길이 막혀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배를 출항시킨다고 하므로 방금에야 급급히 포구로 내려갔는데 때에 미쳐 당도할는지 알 수가 없어 매우 마음이 쓰이네. 이 인편은 기왕 집안 하인이기에 몇몇 사람에게는 편지를 각기 따로 써보내려고 하였으나, 팔이 아프고 겸하여 눈도 어른거려서 도저히 맘대로 글자를 쓸 수가 없어 겨우 이렇게 가서(家書)만 썼을 뿐이니, 바라건대 이 뜻을 두루 알려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아직 다 말하지 못하네.
[주D-001]초종(初終) : 초상(初喪)이 난 뒤로부터 졸곡(卒哭) 때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주D-002]따르는……뿐이구려 : 죽은 이를 슬퍼한 만큼 그 상사(喪事)를 도와주지 못함을 비유한 말. 공자가 위(衛) 나라에서 옛 주인의 상을 만나 슬피 곡(哭)을 하고 나와서는 자공(子貢)에게 참마(驂馬)를 부조하도록 하자, 자공이 말하기를 "옛 주인의 상에 참마로 부조하는 것은 너무 중하지 않습니까?"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내가 들어가 곡할 적에 슬퍼서 눈물을 흘렸노니, 나는 슬피 눈물을 흘릴 만큼 따르는 것이 없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노라." 한 데서 온 말이다.《禮記 檀弓上》
[주D-003]우(佑) : 김정희의 자질(子姪)에 해당하는 사람의 이름자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2]따르는……뿐이구려 : 죽은 이를 슬퍼한 만큼 그 상사(喪事)를 도와주지 못함을 비유한 말. 공자가 위(衛) 나라에서 옛 주인의 상을 만나 슬피 곡(哭)을 하고 나와서는 자공(子貢)에게 참마(驂馬)를 부조하도록 하자, 자공이 말하기를 "옛 주인의 상에 참마로 부조하는 것은 너무 중하지 않습니까?"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내가 들어가 곡할 적에 슬퍼서 눈물을 흘렸노니, 나는 슬피 눈물을 흘릴 만큼 따르는 것이 없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노라." 한 데서 온 말이다.《禮記 檀弓上》
[주D-003]우(佑) : 김정희의 자질(子姪)에 해당하는 사람의 이름자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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