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사중 명희 에게 주다[與舍仲 命喜][3]

천하한량 2007. 3. 7. 00:49
사중 명희 에게 주다[與舍仲 命喜][3]

세후에 부친 세 편[三便]의 서신은 차례로 받아보았는가? 갑금(甲金)이가 온 지 얼마 안 되어 용손(龍孫)이 또 지난달 28일에 왔는데, 그로 인해 경향(京鄕)에서 열흘 전후로 보낸 편지들을 보니, 이는 모두 한 보름 사이의 안부 편지에 불과하였네. 그런데 지체없이 이토록 신속하게 왔으니, 이는 자못 여기에 온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네. 이에 앞서 김 오위장(金五衛將) 집 인편에 의한 사계(舍季)의 편지는 비록 해를 지나서 왔으나, 걱정이 쌓인 나머지에 아울러 매우 기뻤었네. 그런데 또 세후의 서신들이 이렇게 계속 전해 오니, 더욱 기쁨이 소망 밖에 넘치네.
어느덧 이 늦은 봄을 만나 번풍(番風)이 통창하고 아름다운데, 근래에 온 집안이 한결같이 편안하고, 사중(舍仲)의 제절 또한 진취됨이 있으나, 냉비증(冷痺症)을 끝내 시원스럽게 제거하지 못한다 하니 이것이 매우 걱정스럽네. 복용하는 약은 일차로 지난번의 처방을 연해서 써본 결과 나타나는 증상이 다시 어떠한가? 목왕(木旺 봄을 이름)의 계절에는 더욱더 조심하여야 하는데, 능히 다시 손상됨이 없이 기거동작하는 것은 더욱 편리하며, 먹는 것이나 잠자는 것도 모두 편안한가? 멀리서 매우 걱정하는 마음을 일각도 놓을 수가 없네.
이달에 들어와서부터는 시절(時節)에 의하여 마음이 산란해지고 허전함에 애통하는 것은 서로 똑같을 터인데, 처음 들어가 사당을 배알하던 날이 어느덧 지나니, 멀리서 슬프고 허전함을 더욱 형용할 수가 없네.
그런데 내 며느리가 아들을 순산했다고 하니 이는 우리 종가에 처음 있는 경사로세. 조종(祖宗)이 돌보시어 가운(家運)이 장차 돌아오려고 훌륭한 아이를 먼저 내려주신 것인가? 그리고 손자를 안아보는 즐거움으로 말하자면 60이 다 된 나이에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아이는 나 혼자만 사사로이 할 바가 아니네. 듣건대 아이가 섣달 그믐날에 출생했다고 하니, 그날이 바로 천은상길일(天恩上吉日)일세. 선친(先親)의 생신과 부합된 것도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니네. 또는 우리들이 날로 축원하던 것이 천은(天恩)에 있었는데, 아이가 이 천은일에 출생했으니, 이것이 더욱 어찌 기특하고도 이상하지 않은가. 아이의 이름은 그대로 천은(天恩) 두 글자로 명명하는 것이 매우 좋겠으니, 그 자세한 내용을 자식 내외한테 또한 하나하나 포고해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또 듣건대 그 아이의 골상(骨相)이 범상치 않다고 하니, 기쁨을 말할 수가 없네. 백일(百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마 날로 소수(韶秀)를 시켜 젖은 잘 먹이겠지만, 제 어미 또한 다른 아픈 데는 없는가? 매우 염려가 되네.
경향(京鄕)의 제반 상황은 모두 한결같으나, 종씨(從氏)의 소상(小祥)이 지났는지라, 멀리서 몹시 슬프고 허전함을 더욱 억누를 수가 없네.
나는 설창(舌瘡 혀에 난 종기)과 비식(鼻瘜 코 속에 난 혹을 이름)이 아직도 이렇게 아파서 5~6개월을 끌어오고 있네. 이것이 비록 의학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질병이라 하더라도 어찌 이토록 지루하게 고통을 주는 병이 있단 말인가. 음식물은 점점 더 삼키기가 어려워지고, 삼킨 것은 또 체해서 소화가 되지 않으니, 실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네. 만일 실낱 같은 목숨이 구차하게 연장된다면 소식이나 서로 전할 뿐이니, 또한 어찌 하겠는가. 비동(臂疼)과 양증(痒症) 또한 한결같이 모두 극성을 부리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업보(業報)로 이와 같이 나에게만 치우치게 고통을 준단 말인가.
무아(懋兒)의 본 생가(本生家)의 내간(內艱 모친의 상(喪)을 이름)에 대해서는 슬픔과 놀라움을 감당치 못하겠네. 1년 동안에 양가(兩家)의 자모(慈母)들이 모두 이렇게 유명을 달리했으니, 정리가 참으로 비참하네.
다만 대상(大祥)과 담제(禫祭)는 또 변례(變禮) 중의 변례가 되었는데, 도미(陶渼) 두 선생[兩先生]의 정론(正論)은 진실로 바꿀 수 없으나, 무아가 당한 경우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또 헤아려 재단하는 일이 없을 수 없겠네. 나에게 보여준 말이 예에 적합할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수옹(遂翁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를 이름)의 예설에 의거하여 그대로 따라 거행했으니, 이 또한 면전의 미봉책이 되기에는 해롭지 않았네. 우리나라에서는 예(禮)의 의심스러운 것에 대해서 거개가 이와 같이 미봉법을 만들어 쓰고 있는데, 그것이 좋은 방도이건 아니건 간에 어찌 우리만 유독 달리할 수 있겠는가. 그 사이에서 또한 따라 거행할 듯한데, 나는 막연히 먼 곳에 있어 자세히 볼 수가 없으니, 몹시 슬프고 답답하네.
철(鐵 하인의 이름자임)이는 지난번에 때아닌 이증(痢症)으로 퍽이나 고생을 하다가 이내 또 조금 나아지기는 했으나, 남은 병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아서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스럽네. 김 오위장(金五衛將) 편 및 갑금(甲金)의 편에 부친 것과 지금 인편에 온 것들을 모두 하나하나 받아본 결과, 모두들 또한 별고없이 지내고 있으니 다행스럽네.
용손(龍孫)은 여기에서 열흘이 넘도록 머물러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내보냈으니, 그것은 선편(船便)을 기다리느라고 그렇게 되었다네. 갖추어 말하지 않네.

[주D-001]번풍(番風) : 5일마다 한 번씩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 즉 화신풍(花信風)을 이름. 초춘(初春)에서부터 초하(初夏)까지에 걸쳐 모두 24번의 바람이 부는데, 매화풍(梅花風)이 가장 먼저 불고, 연화풍(楝花風)이 가장 나중에 분다고 한다.
[주D-002]천은상길일(天恩上吉日) : 음양가(陰陽家)의 말로, 하늘이 은택을 내려 만민에게 행복을 주는 최상의 길일이라는 것인데, 즉 정월에는 축일(丑日), 2월에는 인일(寅日), 3월에는 묘일(卯日), 4월에는 진일(辰日), 5월에는 사일(巳日), 6월에는 오일(午日), 7월에는 미일(未日), 8월에는 신일(申日), 9월에는 유일(酉日), 10월에는 술일(戌日), 11월에는 해일(亥日), 12월에는 자일(子日)로 되어 있다.
[주D-003]소수(韶秀) : 아마 그 당시 유모(乳母)의 이름이었던 듯하다.
[주D-004]무아(懋兒) : 김정희(金正喜)의 양자(養子)인 김상무(金商懋)를 이름.
[주D-005]도미(陶渼) :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性理學者)로 호가 도암(陶菴)인 이재(李縡)와 호가 미호(渼湖)인 김원행(金元行)을 합칭한 말인데, 이들은 특히 예설(禮說)에도 조예가 깊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