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중 명희 에게 주다[與舍仲 命喜][1] |
지난 27일, 배(旋)에 오를 때에 대략 몇 자를 써서 봉(鳳 하인의 이름임)이에게 부쳐 먼저 돌아가도록 했었는데, 과연 즉시 돌아가서 지금까지 이둔(梨芚)의 사이에 머물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 서신을 전한 뒤로 벌써 7~8일이나 지나서 어느덧 가을이 다하고 초겨울이 되었는데도 남쪽 끝의 기후가 마치 육지의 8월 기후와 같아서 추워질 기미가 전혀 없으니, 금년 절서(節序)의 몹시 늦은 상황이 또한 이러한 것인가?
요즈음에 온 집안이 별고 없고, 종씨(從氏)의 기도(氣度) 또한 만안하시며, 경향(京鄕)의 제반 상황이 한결같이 평온하고, 여러 자매(姊妹)와 서모(庶母)까지도 모두 편안한가? 사중(舍仲 가운데 동생을 이름)과 사계(舍季 막내 동생을 이름)는 얼굴이 검고 바짝 야위어서 반드시 병이 날 염려가 있으니, 간혹 조금 나은 때가 있더라도 노력하여 밥도 더 먹고 약도 늘 써서, 이 바다 밖에서 오직 일념으로 걱정하는 나로 하여금 마음이 조금 놓이게 해주기를 천만번 축수하는 바이로세.
사계(舍季)는 요즘에 추사(楸舍)로 와서 모이고자 한다고 했었는데, 과연 휴가를 내서 단합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나는 눈이 아득하고 애가 끊어질 듯한데, 해천(海天)은 아득하기만 하여 아마 서로 연접할 수가 없을 듯하네.
나의 행차는 그날 행장을 점검하여 배에 오르고 나니 해가 벌써 떠올랐었네. 그리고 배의 행로에 대해서는 북풍(北風)으로 들어갔다가 남풍(南風)으로 나오곤 하다가 동풍(東風) 또한 나고 들고 하는 데에 모두 유리하므로 이에 동풍으로 들어갔는데, 풍세(風勢)가 잇달아 순조로워서 정오(正午) 사이에 바다를 거의 삼분의 일이나 건너버렸었네.
그런데 오후에는 풍세가 꽤나 사납고 날카로워서 파도가 거세게 일어 배가 파도를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므로 금오랑(金吾郞)으로부터 이하로 우리 일행에 이르기까지 그 배에 탄 여러 초행인(初行人)들이 모두가 여기에서 현기증이 일어나 엎드러지고 낯빛이 변하였네. 그러나 나는 다행히 현기증이 나지 않아서 진종일 뱃머리에 있으면서 혼자 밥을 먹고, 타공(舵工) ·수사(水師) 등과 고락(苦樂)을 같이하면서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가려는 뜻이 있었다네. 그러나 생각하건대, 이 억압된 죄인이 어찌 감히 스스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실상은 오직 선왕(先王)의 영령이 미친 곳에 저 푸른 하늘 또한 나를 불쌍히 여겨 도와 주신 듯하였네.
석양 무렵에 곧바로 제주성(濟州城)의 화북진(禾北鎭) 아래 당도하였는데, 여기가 바로 하선(下船)하는 곳이었네. 그런데 그곳에 구경나온 제주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북쪽의 배가 날아서 건너왔도다. 해뜰 무렵에 출발하여 석양에 당도한 것은 61일 동안에 보기 드문 일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오늘의 풍세가 배를 이토록 빨리 몰아칠 줄은 또 생각지도 못했다."
고 하였네. 그래서 내 또한 스스로 이상하게 여기었는데, 이것은 나도 모르는 가운데 또 하나의 험난함과 평탄함을 경험한 것이 아니겠는가.배가 정박한 곳으로부터 주성(州城)까지의 거리는 10리였는데, 그대로 화북진 밑의 민가(民家)에서 유숙하였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성(城)을 들어가 아전[吏]인 고한익(高漢益)의 집에 주인 삼아 있었는데, 이 아전은 바로 전등(前等)의 이방(吏房)이었는 바, 배 안에서부터 고생을 함께 하며 왔었네. 그는 매우 좋은 사람인데다 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뜻이 있으니, 이 또한 곤궁한 처지로서 감동할 만한 일일세.
대정(大靜)은 주성의 서쪽으로 80리쯤의 거리에 있는데, 그 다음날에는 큰 바람이 불어서 전진할 수가 없었고, 또 그 다음날은 바로 그 달 초하루였었네. 그런데 이날은 바람이 불지 않으므로 마침내 금오랑과 함께 길을 나섰는데, 그 길의 절반은 순전히 돌길이어서 인마(人馬)가 발을 붙이기가 어려웠으나, 그 길의 절반을 지난 이후로는 길이 약간 평탄하였네. 그리고 또 밀림(密林)의 그늘 속으로 가게 되어 하늘 빛이 겨우 실낱만큼이나 통하였는데, 모두가 아름다운 수목(樹木)들로서 겨울에도 새파랗게 시들지 않는 것들이었고, 간혹 모란꽃처럼 빨간 단풍숲도 있었는데, 이것은 또 내지(內地)의 단풍잎과는 달리 매우 사랑스러웠으나, 정해진 일정으로 황급한 처지였으니 무슨 운취가 있었겠는가.
대체로 고을마다 성(城)의 크기는 고작 말[斗] 만한 정도였네. 정군(鄭君)이 먼저 가서 군교(軍校)인 송계순(宋啓純)의 집을 얻어 여기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 집은 과연 읍(邑) 밑에서 약간 나은 집인데다 또한 꽤나 정밀하게 닦아놓았었네. 온돌방은 한 칸인데 남쪽으로 향하여 가느다란 툇마루가 있고, 동쪽으로는 작은 정주(鼎廚)가 있으며, 작은 정주의 북쪽에는 또 두 칸의 정주가 있고, 또 고사(庫舍) 한 칸이 있네. 이것은 외사(外舍)이고 또 내사(內舍)가 이와 같은 것이 있는데, 내사는 주인에게 예전대로 들어가 거처하도록 하였네. 다만 이미 외사는 절반으로 갈라서 한계를 나누어놓아 손을 용접(容接)하기에 충분하고, 작은 정주를 장차 온돌방으로 개조한다면 손이나 하인 무리들이 또 거기에 들어가 거처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일은 변통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였네.
그리고 가시울타리를 둘러치는 일은 이 가옥(家屋) 터의 모양에 따라서 하였는데, 마당과 뜨락 사이에 또한 걸어다니고 밥 먹고 할 수가 있으니, 거처하는 곳은 내 분수에 지나치다 하겠네. 주인 또한 매우 순박하고 근신하여 참 좋으네. 조금도 괴로워하는 기색이 없는지라 매우 감탄하는 바이로세. 이 밖의 잗단 일들이야 설령 불편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그것을 감내할 방도가 없겠는가.
금오랑이 방금 회정(回程)에 올랐는데, 또 며칠이나 순풍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네. 집안 하인을 금오랑 편에 같이 내보내면서 대략 이렇게 서신을 부치는데 어느 때나 과연 이 서신을 열어보게 될지 모르겠고, 집의 소식은 막연히 들어볼 방도가 없으므로 바라보며 애만 끊어질 뿐이로세. 아직 다 말하지 못하네.
[주D-001]바람을……뜻 : 장부의 원대한 뜻을 비유한 말. 남조 송(南朝宋) 때에 소년인 종각(宗慤)에게 그의 숙부인 종병(宗炳)이 그의 의지를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긴 바람을 타고서 만리의 파도를 헤쳐가고 싶습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전등(前等) : 전등내(前等內)의 준말로, 즉 '지나간 분기 안'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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