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친정에 올리다[上親庭]

천하한량 2007. 3. 7. 00:48
친정에 올리다[上親庭]

어제 선시(宣諡)의 예를 마치고 나니 신민(臣民)들이 크게 슬퍼하여 갈수록 더욱 망극합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멀리 떨어져 계시는 터라 우러러 반호(攀號)하지 못하시어 기가 막히고 허전함[廓然]이 다른 때보다 더욱 간절하시겠습니다. 저의 비통한 심정 또한 말씀으로 다 형용하여 올릴 수 없습니다. 12일에 영(營)에서 온 파발(擺撥)을 통하여 올린 편지는 이미 들어갔을 듯합니다.
또 비가 한번 오고 나니 서늘한 기운이 날로 더해가서 아침과 낮으로 기후가 급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삼가 살피지 못하건대, 편지를 올린 뒤 4~5일 이래로는 또 체후(體候)가 어떠하십니까? 근일의 제절(諸節)은 더욱 순조로워지시며, 김 의원(金醫員)은 거기에 계속 머물러 수시로 진찰하면서 요즘에는 어떤 약제(藥劑)를 올리고 있습니까? 안절부절 못하며 사모하는 정성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온 영내(營內)의 크고 작은 일들도 한결같이 편안하여 다른 소란이나 없으십니까? 여러가지 일들이 삼가 염려되옵니다.
자식(저자 자신을 일컫는 말)은 요즘에 잇달아 재직(齋直)의 일을 보아오다가 어제는 예방(禮房) 자격으로 일을 거행하였는데, 선시(宣諡)·선교(宣敎)·개명정(改銘旌)의 세 차례 의절(儀節)을 일시에 아울러 거행하느라,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진종일 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행히 엎드러짐[願仆]을 면하였으나 도리어 선대왕은 영영 뵐 수 없게 되었는지라, 슬피 호곡하여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신병 때문에 잠시 휴식할 계획입니다. 온 집안은 별고없이 여전하고, 두 고모(姑母)께서는 어제 이미 집으로 돌아가셨으며, 어린애들도 모두 탈 없이 지내고 있으니 천만 다행입니다.

[주D-001]허전함[廓然] :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대상을 지내고 나면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해진다.[祥而廓然]"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바로 임금의 대상(大祥) 때를 가리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