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전(表箋)
우(又)
이색(李穡)
신 아무는 아룁니다. 신은 생겨나서 열살 때에 신의 아비 신 아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매 조모 홍씨(洪氏)가 곧 신을 명하여, “상차(喪次)에 거처하며 상주 노릇을 하라.”하므로, 신은 다만 애통할 줄만 알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여러 신하가 조모의 명령을 받들어, 신에게 임시 국사를 처결할 것을 청하므로 신은 비록 회피하고자 하였으나, 그럴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하였으며, 여러 신하가 표문(表文)을 갖추어 신에게 서명(署名)하기를 청하여, 천자께 들어가 아뢰고 선신(先臣)의 시호와 아울러 신의 작명(爵命)을 내려 주시기를 간청하였던 것인데, 세월이 오래 흘렀으나 지금까지 밝은 은강(恩降)을 입지 못하였으니, 신이 비록 우매하나 어찌 송구하지 아니하리까. 제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죽은 아비는 능히 천명(天命)의 돌아가는 바를 짐작하고 나라를 가지고 내부(內附)하였으나, 타고난 수명이 길지 못하여 문득 세상을 떠났으며, 적신(賊臣) 김의(金義)가 사신(使臣)을 죽이고 북방으로 달아나고, 조모는 이미 늙고 신마저 나이 어리니, 곤난이 많다 해도 이와 같이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신성하신 천자께서 보전해 주시는 혜택을 힘입지 않으면, 장차 어떻게 부지하겠습니까. 이렇기 때문에 표를 올리고 멀리 바라보며, 날마다 덕음(德音)이 내리시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배신 심덕부(沈德符)가 경사(京師)로부터 돌아오매, 공경히 성지(聖旨)를 받들고 엎드려 읽으매 땀이 흐르며, 넓은 천지에 용납한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조모 홍씨가 여러 신하에게 말하기를, “내 손자가 나이 어리니 능히 사리를 분별하여 아뢸 수 없고, 여러 신하도 자기들이 직접 주달하기 어려우니, 내가 마땅히 표를 올려 낱낱이 아뢰야겠다.” 하고, 바로 곧 배신 중대광 문하찬성사(重大匡門下贊成事) 이무방(李茂芳)과, 광정대부 문하평리(匡靖大夫門下評理) 배언(裵彦) 등을 특별히 선정하여, 조모의 표(表)를 싸들고 아울러 금(金) 31근 4냥, 은(銀) 1천 냥, 백세포(白細布) 5백 필, 흑세포(黑細布) 5백 필, 잡색마(雜色馬) 2백 필을 가지고 서울로 가게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선신(先臣)의 내부(內附)한 공을 생각하시고 조모의 궁박한 정상을 살피시어, 선신의 시호를 내리시고, 신에게 습작(襲爵)할 것을 명령하시며, 해마다 조공바치는 물품에 있어서도, 또한 소국이 일정한 수효에 구애하지 않고 힘대로 마련하여 바치도록 용허하여 주시면, 선신은 지하(地下)에서 웃음을 머금을 것이며, 우리 자손에게 계시하여, 대대로 성조(聖朝)의 번신이 되게 하리니, 신의 지극한 소원이요 지극한 경행(慶幸)입니다. 하감하시어 받아들여 주소서. 신 모(某)는 송구함을 이기지 못하며 삼가 표문을 받들어 진술하여 드리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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