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전(表箋)
홍건적을 평정한 후 진정하는 글[平紅巾賊後陳情表]
이색(李穡)
신은 들으니, 아랫사람을 어거하는 도는 제 할말을 숨김없이 다 하게 하는데 있고, 윗어른을 섬기는 의(義)는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아뢰어야 하는 것이니, 정의가 이로써 서로 진실하고 덕택에 따라서 널리 입혀진다 합니다. 예로부터 이러하거늘, 하물며 밝은 시대에 무엇을 의심하오리까. 감히 그칠 줄 모르는 요구로써 천청(天聽)을 번거롭게 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타고난 자질이 천박하고 천성이 우매하나, 천년의 풍운(風雲)은 일찍 창성한 세대에 은혜를 받았고, 한 구석의 산해(山海)에서 달갑게 여생을 은총 속에 보냅니다. 아무 것도 보답할 길이 없고, 오직 조공하는 직책에나 힘쓸 따름이더니, 도적의 난리를 만나서 이윽고 조정과 막힐 줄을 어찌 뜻이나 하였겠습니까. 전번에는 평양(平壤)에서 만연(蔓延)되고, 후에는 개성(開城)에까지 불난리가 미치매, 교전(交戰)할 적마다 약함을 보게 되니, 진실로 꾀가 많아서 그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발꿈치를 돌이키지 않고 에워 쳐서, 마침내 한 척의 수레도 돌려보내지 않았으니, 남쪽으로 옮기는 곤난을 피하지 아니한 것은 대개 동쪽을 돌아보시는 근심을 덜어드리려는 뜻이었습니다. 과연 천총(天聰)에 들리어, 보내주신 사신을 만나보게 되니, 은혜를 입음이 지극하여 분수를 생각하면 어찌 감당하오리까. 하물며 이 척촌(尺寸)의 미미한 수고가 어찌 정종(鼎鍾)의 현각(顯刻)에 참여하오리까마는, 먼 곳 백성들의 적개심도 취할 만한 것이 간혹 있으니, 밝은 세대로써 공을 보답함에 있어서는 비록 지극히 미미한 것이라도 반드시 기록하므로, 제 몸을 돌아보아 주저하고, 명령을 기다리며 황송할 뿐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황제폐하께서 멀리 내다보시는 밝음을 미루어주시고, 온 누리를 감싸는 도량을 여시며, 구중(九重)의 독단(獨斷)을 내리시고, 만리의 고충(孤忠)을 살피시어, 덕음(德音)을 내려서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게 하고, 공적을 보여서 사관의 기록에 전하게 하여 주시면 오늘만 빛날 뿐 아니라, 후세에 보이게 될 것이며, 신은 삼가 칠덕(七德)의 노래를 권장하여 기봉(箕封)의 안도(按堵)한 기풍을 넓히고, 만년의 수를 빌며 순전(舜殿)의 수의(垂衣)하는 덕화를 받들겠습니다.
[주D-001]칠덕(七德) : 《좌전(左傳)》 선공(宣公) 11년에, “무릇 무(武)란 것은 금포(禁暴)ㆍ집병(?兵)ㆍ보대(保大)ㆍ정공(定功)ㆍ안민(安民)ㆍ화중(和衆)ㆍ풍재(?財)를 하기 위한 것이다.” 하였고, 그 주에, “이것을 무(武)의 칠덕(七德)이라 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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