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전(表箋)
진정하는 글[陳情表]
이색(李穡)
신은 아룁니다. 7월 13일에 배신(陪臣) 강인유(姜仁裕) 등이 돌아와서 선유(宣諭)하신 성지(聖旨) 한 통을 전하였는데, “너희 나라가 이미 상국(上國)을 정탐할 의향을 가지고 있으니, 관원 수재(秀才) 2ㆍ3백 명과 화자(火者 환관〈宦官〉) 5ㆍ6백 명을 이곳에 들여보내라.” 하셨사기로, 신은 놀랍고 황송함을 이기지 못하여, 문득 소회를 아뢰는 것입니다. 성인의 훈계가 크게 선포되매 깊이를 측량할 수 없고, 하늘같은 위엄을 지척에 뵈옵는 듯이 너무도 노하셨기로, 이에 미미한 정성을 피력하여 우러러 총청(聰聽)을 번거롭게 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신은 우매하여 배우지 못하고, 고루하여 아는 것도 없으나, 다행히 민이(民?)와 물칙(物則)이 아주 사라지지 아니하여, 천명(天命)과 인심의 소재를 알고 있기로, 인의(仁義)를 사모하여 이미 폐백을 바치고 신하가 되었거늘, 무슨 마음으로 간사함을 품어 임금을 속이겠습니까. 오직 소국이 동떨어져 궁벽한 구석에 있기로 옛날부터 풍기(風氣)가 국한되어, 문장은 겨우 자기의 의사를 표시할 정도요, 언어는 반드시 역관이 있어야 통하게 되므로, 책을 끼고 당에 오를 6ㆍ7명의 아이쯤은 항상 보내고 싶었지만, 경(經)을 밝히고 율(律)을 익힐 2ㆍ3백 명의 유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며, 하물며, “정탐[窺?]의 본이 된다.”고 하시는데, 어찌 감히 모집해 보내라는 명령에 응하겠습니까. 아울러, 부르신 환자(宦者)와 이미 윤허하신 생원(生員)에 있어서도, 한편으로는 혐의도 피해야 되고, 또 한편으로는 마땅히 조명(詔命)을 준수해야 하므로,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처지에 놓여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뇌정(雷霆)의 위엄을 거두시고, 천지와 같은 도량을 열으시어, 신의 예도를 다하려 하나 어떻게 하는 것이 예도인지 알지 못함을 어여삐 여기시고, 신의 충성을 다하려 하오나 어떻게 하는 것이 충성인지 알지 못함을 살피시와, 어려운 것을 책망하지 마시고, 그 소원을 좇아 주시면 신은 삼가 번방(藩邦)의 임무를 더욱 신중히 하고, 길이 성교(聲敎)의 동점(東漸)을 생각하여, 아름답게 만년을 두고 성인의 수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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