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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전(表箋) 태위에 임명함을 사례하는 글[太尉謝表]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2. 14. 18:45

표전(表箋)
 
 
태위에 임명함을 사례하는 글[太尉謝表]


 이색(李穡)
선대의 업을 이어 닦아서 바야흐로 천리의 봉함을 받았고, 황제의 마음에서 선택하시와 또 삼공(三公)의 벼슬을 주시니 은혜가 뜻 밖이라 느낌과 부끄러움이 함께 합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보잘것없는 작은 재질이요, 번보(藩輔)의 후손으로 어릴 때부터 중국에 들어가 황제의 돌보심을 받아서 현달함을 이루었으니, 비록 작은 마음에 항상 어리석은 정성을 가렸으나 보답함을 이루지 못하였더니, 우연히 돼지와 뱀 같은 종류들의 난을 만나 견마(犬馬)의 충성을 조금 바쳤습니다. 그러나 파리가 울타리에 앉으므로[蠅止樊] 마침내 중간에 무함하는 화를 만났더니, 물고기가 그물에서 벗어난 것과 같게 됨은 실로 보전해 주시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겨우 다시 살아나게 되었으니 결코 다른 바램은 없었는데 갑자기 사신이 이르러 조서를 전함에 놀랬습니다. 사양하고자 한즉 명예를 구하는 것 같기 때문에 억지로 취임하게 되니, 멀리 옛 성인의 지족(止足)의 훈계에 부끄럽고, 깊이 가득 차면 기울어진다는 것을 경계하옵니다. 운운.
운수는 중흥을 이룩하였고, 어진 덕은 천하를 한결같이 보셔서 드디어 성한 은택을 펴 먼 지방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신이 어찌 삼가서 가문의 이름을 보존하여 황제의 덕화를 더욱 드러내지 않겠습니까. 구궁궁궐이 비록 멀지만 보불(?? 임금의 옷)의 빛남을 보는 것 같고, 사방이 대강 편안하니 오직 태산 같은 수를 축원할 뿐입니다.


[주D-001]번보(藩輔) : 제후(諸侯)가 왕실(王室)의 울타리가 되어 보좌한다는 말이다.
[주D-002]돼지와 뱀 : “오(吳) 나라가 긴 뱀과 큰 돼지가 되어 상국(上國)을 먹는다.” 하였다. 《左傳》
[주D-003]파리가 …… [蠅止樊] : 《시경》에, “푸른 파리가 울타리에 앉는다.” 한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파리가 흰 것에 똥을 싸서 찍어 검게 만들므로, 소인(小人)이 군자를 참소[?]하는 데 비유하였다.
[주D-004]지족(止足) : 노자(老子)는,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고 만족한 줄 알면 욕되지 않는다[知止不殆 知足不辱].”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