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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原) 원수한(原水旱) -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4. 17:48

원(原)
 
 
원수한(原水旱)
 

이곡(李穀)

홍수와 가뭄이 과연 하늘이 정한 운수[天數]인가, 과연 사람의 일[人事]인가. 요(堯)와 탕(湯)도 면하지 못하였으니 하늘이 정한 운수라 하겠고, 길흉의 징험이 있으니 사람의 일이라고도 할 것이다. 옛 사람은 인사를 닦아 천수에 응하기 때문에, 7, 9년의 재앙이 있어도 백성이 병들지 않고, 후세 사람은 천수에 맡기고 인사를 폐하기 때문에, 1, 2년의 재앙만 있어도 백성은 이미 구렁에 빠진다. 국가 풍흉을 살필 뿐만 아니라, 달마다 날마다 비축을 하니, 인사를 닦는다고 할 수 있으나, 지난해의 홍수로부터 백성이 심히 병들어 여러 방법으로 구료(救療)하여도 그 요령을 얻지 못하니 어찌할 것인가.
내가 일찍이 노인들에게 들은즉, 백성을 옮기고 곡식을 옮겨, 주린 자를 먹이고 목마른 자에게 마시게 하는 것은 겨우 눈앞의 급한 것을 구제할 뿐이다. 만약 이미 그렇게 된 자취에 따라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으려면, 그 원인을 강구할 것이다. 대개, 백성이 생명을 의탁하는 것은 유사(有司)이다. 무릇 이해(利害)가 있으면, 반드시 자식이 부모에게와 같이 유사에게 가서 호소한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에게 해되는 일을 버려두고 어찌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꾀하리오. 지금 유사는 그렇지 않다.
가령 두 사람이 다투어 소송하는데, 갑이 만약 돈이 있으면, 을은 문득 이유가 없게 된다. 그런 백성이 어찌 원한을 품고 죽지 않으며, 그 원기가 어찌 화기(和氣)를 상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홍수와 가뭄을 부르게 된 까닭이었다. 유사를 감독하는 것은 감사(監司)이다. 무릇 유사가 탐욕스럽거나 청렴하면, 곧 안찰하여 탐욕스런 자는 죽이고 청렴한 자는 상준다. 감사를 감독함은 감찰(監察)이라 한다. 무릇 감사가 어질거나 어질지 않음에 따라 곧 살피어 파면하거나 진급시키는 것인데, 지금은 다 그렇지 않고 간혹 옛 일에 뜻하는 자가 있으면, 도리어 그 시속에 용납되지 못한다. 대개, 오늘날의 감사는 곧 옛날의 감찰이요, 오늘날의 감찰은 곧 앞날의 유사이다. 서로 도와주고 덮어주기 때문에 이와 같이 되었다.
만약, 지금 백성으로 하여금 한번 옛날과 같은 유사를 보게 되면, 지금 유사가 한번 옛날과 같은 감사를 보게 되며, 지금 감사가 한 번 옛날과 같은 감찰을 보게 된다면, 우리 백성은 거의 구렁에 빠지는 것을 면할 것이다. 그러면 천수이거나 인사이거나 그 요령은 탐관을 버릴 뿐이요, 탐관을 버리고자 하면, 국가에 이미 만들어 둔 헌법이 갖추어져 있다. 이 헌법을 들어 행하는 것은 나라를 주재(主宰)하는 자에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원수한이란 글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