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저(雜著)
석문(石問)
이곡(李穀)
객이 묻기를, “어떤 물건이 견고ㆍ불변해서, 천지와 함께 종식(終息)되는 것이 있는데 그대는 아는가.” 하기에, 나는, “천지의 정기가 쌓여 있고 만물이 아직 개화(開化)되지 않았으나, 오직 사람이 그 영장이며, 오랑캐와 새짐승은 이에 다음간다. 그리고 저 높은 산, 깊은 바다가 또한 만물 중에 큰 것이요, 곤충ㆍ초목과 그 밖에 또 크고 작은 동식물이 다 그 가운데 있어서, 이것들은 어지럽게 영축 대사(盈縮代謝)하고, 착잡하게 영고 계칩(榮枯啓蟄)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그 본말(本末)과 가늘고 굵은 것을 요량할 수 없으며, 한서(寒暑)에도 그 본질을 바꾸지 않고, 고금에도 그 사용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오직 하나 있으니 그것은 돌이다. 그대가 말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하였다.
객이 말하기를, “그렇다. 그러면 이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 소이연(所以然)을 말할 수 없겠는가.” 하기에 내가, “태극(太極)의 기능이 분화(分化)되어 양의(兩儀)가 성립되고, 성인이 태어나자 삼재(三才)가 갖추어져, 사람은 사람의 도리를 하니 이것을 반고(盤古)라고 한다. 이때를 당하여 오히려 아직 미개하여 품류가 분간이 없었는데, 반고가 죽을 시기에 와서 비로소 눈[目]은 일월(日月)이 되고, 피는 강하(江河)로, 뼈는 산이 되니, 산이 생길 때에 돌이 그 바탕이 되었다. 그러므로 돌을 산골(山骨)이라고 한다. 돌이 생긴 지는 이미 오래다. 공공(共工)이 황제(皇帝)와 싸움을 하다가 성이 나서, 부주(不周 산 이름)를 부딪쳐 하늘이 기울어졌는데, 여와(女?)씨가 돌을 다듬어서 보완하였다. 그런 뒤에 일월성신이 그 궤도를 얻었으니 돌의 공이 크도다. 또 두꺼운 땅에 우뚝하게 박히고 위엄 있게 솟아, 큰 바다를 진압하고 높이 만길이 되게 서 있어서, 흔들어 움직일 수가 없고, 구지(九地 깊은 땅)에 깊숙이 박혀서 물(物)이 침압(侵壓)할 수 없으며, 천지와 더불어 시종을 같이 하니 돌의 덕은 두텁다. 순(舜)임금이 풍악을 제작할 때, 사(絲)와 죽(竹), 포(匏)ㆍ토(土)ㆍ혁(革)ㆍ목(木)의 앞에다 이 돌[石]을 두는데 봉황이 와서 춤을 추었고, 주 선왕(周宣王)이 돌북[石鼓]을 만들자 이것이 진(秦)ㆍ한(漢)ㆍ위(魏)ㆍ진(晉)ㆍ수(隋)ㆍ당(唐)을 내려오도록 귀신이 잘 호위하여 지켰으니, 그 물건됨과 그 이용됨이 기이하고도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바는 이것뿐이로다.” 하니,
객이 말하기를, “옛날 돌에 대해 말한 이가 많았으되, 그 설명이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돌을 칭찬한 이가 많았으되, 사부(詞賦)에서 그쳤으니, 이제 돌에 대한 송(頌)을 지어, 그 공덕을 형용할 생각이 없느냐.” 하였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사양하니, 객이 이에 붓을 잡아 글귀를 지어,
“크고도 지극하도다. 천지의 정기로 이 단단한 물체를 낳았으니, 공용(功用)이 한이 없네. 문채도 기이하고 기이할사, 그 경위(經緯)가 빛나누나. 모나게도 다듬고 둥글게도 다듬어서, 귀한 이, 천한 이에 두루 베푸니, 삼재(三才)에 하나 더해 사재(四才)가 될 수 있고, 온갖 물건 만들기에 족하기도 하구나. 우(禹)임금은 용문의 바위를 뚫고 임금이 되었고, 진(秦) 나라는 돌을 몰아 쓰다가 사슴을 잃었도다. 죽었어도 비석을 세워 공덕을 기록하고, 돈대[?]를 쌓아 이정표(里程標)를 세웠도다. 파서 절구도 만들고, 다듬어서 숫돌[砥]도 만들었도다. 석경(石鏡)은 가인(佳人)을 따라다니고, 석정(石鼎)은 도사(道士)를 따라다닌다. 회지(懷智)는 돌로 구유를 만들었고, 숙신(肅愼)은 돌로 화살을 만들었도다. 석연(石燕)은 비를 내리게 했고 석서(石犀 물가의 큰 돌)는 물을 물리쳤도다. 돌침을 만들어 살에 가시를 빼고, 얼굴에 문질러서 골격이 살아나게 하였도다. 초(楚) 나라의 석호(石虎) 는 화살을 삼켰고, 진(秦) 나라 석우(石牛)는 발굽을 들었도다. 새는 돌을 물고 어디로 가느냐. 석양(石羊)은 엎드렸다 일어난다. 망부석(望夫石)이 되어 남편 돌아오기를 바라기도 하고, 혹은 형(兄)으로 섬기기도 하였다. 영척(?戚)의 돌 노래는 그 뜻을 말함이요, 남산의 돌 시(詩)는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었노라. 쇠붙이는 잘 변하는 것이 부끄럽고, 옥은 잘 팔리는 것이 부끄럽다. 환퇴(桓?)의 석곽(石槨)은 이루지 못하였고, 요(堯)임금의 뜰에는 돌이 버림을 받았도다. 오직 이 신기한 물건이 쓰이는 것이 때를 따라 다르구나. 버렸던 박옥(璞玉)도 다듬으면 보배그릇이라, 송(宋) 나라 사람은 깊이 간직하였고, 초 나라 임금은 뒤늦게야 쪼갰도다. 지금은 묘당(廟堂)의 주추가 되고, 옛날에는 왕가의 저울이 되었도다. 체질이 변함이 있겠는가. 쓰임이 적지 않도다. 네 공덕을 칭송하니 내 폐부(肺腑)가 격동되노라. 어진 사관(史官)으로 하여금 만고에 길이 빛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며, 송(頌)을 하고는 가버렸다.
내가 물러나와 그 말을 살펴보니, 이것은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로서 이치가 구비된 줄을 알겠다. 아, 자방(子房 장량)이 공경한 돌은 괴궤(怪詭)한 일에 가깝고, 승유(僧孺)의 돌에 대한 평은 희학(戱謔)에 가까우며, 기타 제가(諸家)의 말은 다 들어 말할 수 없으니, 다만 객이 송(頌)한 이것만을 가지고 이 편(篇)을 짓는다.
[주D-001]우(禹)임금은 …… 되었고 : 우(禹)가 중국의 대홍수를 다스릴 제, 용문산(龍門山)의 돌을 깨어뚫고서, 홍수가 흘러 빠지게 하였다 한다.
[주D-002]진(秦)나라는 …… 잃었도다 : 진(秦) 나라 시황(始皇)이 만리장성을 쌓는데, 돌을 채찍으로 쳐서 성 위에 올라가게 하였다 한다. 그러다 백성의 봉기(蜂起)로 말미암아 나라를 망하게 하였는데, 사슴이라는 말은 나라를 비유한 말이다.
[주D-003]석연(石燕) : 중국 북방에는 작은 돌이 바람에 날려서, 공중에 높이 나는 것이, 마치 제비와 같으므로 석연이라 한다.
[주D-004]석호(石虎) : 초(楚) 나라 웅거자(熊渠子)가 밤에 가다가 침석(寢石)을 보니 복호(伏虎)로 화했다는 고사(故事).
[주D-005]석양(石羊)은 …… 일어난다 : 황초평(黃初平)이란 사람이 양을 치는데, 그 양이 밤에는 모두 돌로 화한다고 한다.
[주D-006]요(堯)임금의 …… 받았다 : 요임금은 제왕으로서, 그 사는 곳이 흙으로 된 뜰이 세 층[土階三等] 뿐이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7]자방(子房)이 …… 돌 : 자방의 선생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으로 이별할 때에 “후일에 곡성산(穀城山) 아래에서 누른 돌을 보거든 나인 줄로 알라.” 하고, 헤어졌으므로, 그후에 장자방이 과연 곡성산 아래에서 누른 돌을 보고, 선생 뵙는 예로 절하고,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갔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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