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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 절부조씨전(節婦曹氏傳) -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0. 18:44

전(傳)
 
 
절부조씨전(節婦曹氏傳)
 

이곡(李穀)

절부(節婦) 조씨(曹氏)는 수령현(遂寧縣) 사람이다. 지원(至元) 경오 5월 26일에 충경왕이 강화에서 송도로 환도 했는데, 이때에 장군인 홍문계(洪文系) 등이 나라 일을 그르친 권신을 베어 죽이고 왕권을 돌려 드렸다. 6월 초하루에 권력을 잡았던 신하의 사병(私兵)인 신위(神衛) 등의 군대가 승화후(承化侯)를 끼고 반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마침내 관료와 군사들로서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을 강제로 몰아 넣고 바다에 떠서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배가 앞뒤로 서로 연접되었다.
조씨(曹氏)는 겨우 여섯 살이었는데, 그의 아버지인 대위(隊尉) 자비(子丕)를 따라서 몰려가는 속에 끼어 있었다. 적은 가는 도중에 가짜로 관료를 설치하였는데, 대신으로부터 장교에 이르기 까지 그들의 협박을 받아 들이도록 달랬다. 자비는 지모가 있고 힘이 세기 때문에 특별히 별장에 임명되었는데, 자비는 꾀를 써서 탈출하여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뒤에 적병이 패배하였으나 부녀와 어린 아이들은 칼날에 죽고 바닷물에 빠져서 거의 없어졌고, 나머지는 중국 군대에게 잡혀가 버렸는데, 다만 자비와 같은 배에 탔던 사람은 늙은이나 어린이까지도 모두 온전히 살아났다. 자비는 돌아와서 다시 관군에 소속되어 적을 공격하여 탐라까지 갔다가 신미년 겨울에 거기에서 죽었다. 조씨(曹氏)는 13살에 대위(隊尉)인 한보(韓甫)에게 출가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 그의 시아버지인 수령궁 녹사(壽寧宮錄事) 광수(光秀)는 동쪽으로 일본에 갔다가 신사년 여름에 군중에서 죽고, 신미년 여름에 보(甫)가 또 합단(合丹)과의 싸움에서 죽었다. 조씨는 과부가 되어 그 언니에게 의탁하다가, 그의 딸을 출가시킨 뒤에는 곧 딸에게 의지하였는데, 딸이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고 또 일찍 죽었다. 그는 곧 손녀에게 의지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조씨는 30이 못되어 아버지, 시아버지, 남편이 연하여 전쟁 중에 죽고, 과부로서 50년 동안을 살았는데, 밤낮으로 여공(女工)을 부지런히 하여 딸과 손자 손녀를 먹이고 입히어 그들로 하여금 의지할 곳을 잃지 않게 하였고, 손님 접대와 혼사ㆍ장례ㆍ제사에 쓰는 경비를 마련하였다. 나이가 벌써 77세인데도 오히려 건강하며 병이 없다. 또한 기억력이 좋아서 적들 속에 있을 때의 상황과 근세에 정치가 잘되고 못된 것이라든지, 양반들 집안의 내력을 하나도 빠짐 없이 낱낱이 얘기하여 주었다. 내가 사는 집이 곧 조씨가 옛날 살고 있던 집이며, 또 그의 손녀 사위인 감찰 규정으로 있던 이양직(李養直)은 나와 같은 해에 수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상세히 들어서 알았다.
내가 일찍 중국에 다닐 때에 보니, 정절이 있다 하여 문려(門閭)에 정표한 것이 서로 바라보일 정도로 많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많은 것을 이상스럽게 여겼다. 생각하건대 조정에서는 그만한 정절도 없는 것을 그 재산이 있으므로 정표를 세우기도 하고, 혹은 이름을 거짓으로 꾸며서 병역을 면제받기를 도모하기도 하므로, 항상 감찰관과 헌사(憲司)로 하여금 담당관에게 문책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윤리를 철저히 하며 풍속을 두텁게 하는 좋은 취지인줄 안다. 가령 조씨와 같은 행적이 조정에 보고 된다면, 장차 크게 써서 문헌에 오르며 향리에도 빛이 날 것인데 어찌 끝까지 이름이 없게 되었는가.
사씨(史氏)가 말하기를, “부인은 삼종(三從)의 의(義)를 지켜야 부인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조씨는 아버지와 가장이 모두 나라일에 죽고 아들이 없다. 어려서 과부가 되어 절개 지키고 늙기에 이르렀는데, 관가에서 구제하여 주지도 않고 사람들도 알아주지 않았으니, 슬프다. 오직 하늘의 이치가 어긋나지 않았으니, 마땅히 그는 건강하여 오래 장수하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