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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論) 조포 충효론(趙苞忠孝論) -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0. 18:43

논(論)
 
 
조포 충효론(趙苞忠孝論)
 

이곡(李穀)

임금과 어버지에 대해 과연 선후를 따질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하여 성인이 벌써 말한 바가 있다. 충성과 효도는 과연 근본과 끝이 없는가. 이에 대하여는 내가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주역》을 서술하면서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있는 뒤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뒤에 남자와 여자가 있고, 남자와 여자가 있은 뒤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 아버지와 아들이 있은 뒤에 임금과 신하가 있고, 임금과 신하가 있은 뒤에 위와 아래가 있으며, 위와 아래가 있은 뒤에 예절을 실시할 곳이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임금과 어버이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 선후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밖에 나가서는 임금을 섬기며, 들어와서는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성품에 타고난 것을 몸으로 실천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게 되는 것이고, 충성과 효도이다. 이것을 모른다면 곧 짐승이다. 공자는 또 이르기를, “어버이에게 효도하기 때문에 충성을 임금에게 옮길 수 있다.” 하였고, 맹자는 이르기를, “어질면서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없으며, 의(義)로우면서 그 임금을 뒤로 돌리는 자가 없다.” 하였으니, 충성과 효도는 어진 것과 의를 실천하는 일이다. 일은 두 가지지만 이치는 마찬가지다. 비록 그 입장이 같지 않아 느리게 하고 급하게 하는 차이는 있지만, 그 근본과 끝은 대개 분별이 있어 문란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미 행한 일들을 대략 지적하여 이를 설명하려 한다. 오기(吳起)는 전국(戰國) 시대의 유능한 사람이다. 어머니를 버리고 벼슬을 구하였으며, 아내를 죽여가며 장군이 되기를 구하였으니, 오기의 잔인스럽고 천박한 행동이야 충성과 효도에 대하여 따질 것도 없다. 왕능(王陵)은 서한(西漢)의 명신이다. 항왕(項王)이 그의 어머니를 데려다 놓고 능(陵)을 불렀으나 왕능은 가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먼저 의(義)로써 단안을 내려 그에게 한왕을 따를 것을 권면하였으니, 이것은 곧 왕능의 책임이 가벼웠던 것이다. 사대부(士大夫)만 그럴 뿐만이 아니다. 고제(高帝)가 항우(項羽)와 천하를 다툴 적에 항우는 태공(太公)을 도마위에 올려 놓고 삶아 죽이겠다하며 항복을 재촉하였다. 고제는 곧 말하기를, “부디 나에게도 국 한 그릇을 나누어 달라.” 하였으니, 이것은 고제가 비록 실언(失言)한 것이지만, 천하를 도모하는 사람은 가정을 돌보지 않는 법이니, 이 경우는 그래도 해명할 말이 있다. 그러나 조포(趙苞)가 어머니와 아내를 죽이고, 하나의 성(城)을 완전히 지킨 데 대하여 군자는 그를 인정하고 그의 독특한 행위를 칭찬하였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이를 의심하는 바이다. 당초에 조포가 요서(遼西)를 지키고 있을 때에 사람을 시켜서 그의 어머니를 맞아들였고, 선비(鮮卑)족이 침략해 들어올 때를 당하서는 그의 어머니와 처자(妻子)를 인질로 데려다 싣고 나가서 그를 공격하였다. 조포는 슬피 울면서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옛날은 어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마는 지금은 임금의 신하가 되었으므로, 의리상 사사로운 은혜를 돌보아 충성과 의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멀리서 말하기를, “사람이 각기 운명이 있는 것인데, 어찌 서로 돌보다가 충성과 의리를 무너뜨릴 수 있느냐. 너는 부디 힘써 싸우라.” 하였다. 조포는 곧 나아가서 싸워 적을 쳐부수고, 어머니와 아내는 모두 적에게 살해되었다. 조포는 돌아와서 장사를 지내고 지방 인사에게 말하기를, “나라의 녹을 먹으며 어려운 시기를 피하는 것은 충신이 아니요, 어머니를 죽여가며 의(義)를 온전히 하였으니 효자가 아니다.” 하며, 드디어 피를 토하고 죽었다. 군자가 조포를 인정하여 주는 것은 이 때문이며, 이것은 조포가 충성과 효도에 있어서 두 가지를 모두 획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개 그 취지를 본다면 만일 어버이를 위하여 적에게 무릎을 꿇으며 그가 지키고 있는 영토와 백성을 잃어버린다면, 곧 한(漢)을 크게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어머니와 처자를 저버리면서도 이렇게 하였고, 이미 일을 끝내고 나서는 “한(漢)은 저버리지 않았으나 나의 어머니가 적에게 죽었고, 나의 처자가 적에게 죽었는데 내 몸만이 홀로 온전하여 공로를 누리며 영광을 본다면 이는 어버이를 팔아서 먹고 사는 것이니, 그것은 오기(吳起)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하고, 곧 피를 토하고 죽었으니, 그 위험한 시기에 임하여 그의 취할 태도를 결정할 것이 매우 자상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후와 본말에 대해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왕릉(王陵)의 어머니가 칼을 물고 자살한 것처럼 대의로써 먼저 결단을 내리지 못했는데, 조포는 마침내 말하기를, “의리상 은정(恩情)을 돌아볼 수 없다.” 하였으니, 곧 이것은 조포가 먼저 그를 끊은 것이요, 그의 어머니가 그를 권면한 말은 마지못해 나온 말이 아니었겠는가. 더구나 승리와 실패는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니, 그 자신이 함께 적의 손에 피해를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었겠는가. 다행히 그의 몸을 온전히 하였고, 그의 영토를 확보하고, 그 백성을 온전히 구하였으나, 어머니와 처자를 온전히 할 수 없어서 마침내 또한 스스로 자기의 목슴을 끊었으니, 그것은 왕릉(王陵)이 한(漢)의 기초적인 사업을 도와서 마침내 유씨(劉氏)를 안정시켜 공로가 크고 명예가 훌륭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난다. 또 유씨와 항씨의 때에는 이기고 지는 것이 한 번 숨쉬는 사이에 결정나는 것이라서 천하의 향배(向背)와 백성의 치란(治乳)이 거기에 달려 있었다. 그러므로 고제(高帝)는 차라리 아버지와 처자를 저버리면서도 자기의 목적을 용감히 수행하였고, 이미 수행하고 보니 곧 지위는 높은 천자가 되었고 재산은 천하를 차지하였다. 천하로 어버이를 봉양하였으니, 그의 효도가 어떻다 하겠는가. 그러나 선후(先後)와 본말(本末)에 있어서는 오히려 부족한 점이 있었으니, 그가 용감히 목적을 수행하여 능히 성공하게 된 것은 다만 요행으로 된 것뿐이었다. 어떤 이가 맹자에게 묻기를, “순(舜)이 천자가 되고 고요(皐陶)가 법관이 되었을 때에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하니, 맹자는 “그를 체포한다.” 하였다. “그래도 순이 이를 금지시키지 않겠습니까.” 하니, “순이 어떻게 이를 금할 수 있는가. 법이란 위에서부터 전수한 것이다.” 하였다. “그러면 순은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했겠습니까.” 하니, “순은 천하를 보기를 헌 신짝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몰래 고수(??)를 업고 달아나서 바닷가에 가서 숨어 살면서 몸이 마칠 때까지 만족스럽게 여기며 즐겁게 살면서 천하를 잊어버릴 것이다.” 하였다. 이것은 비록 가정하여 한 말이긴 하지만, 사리에 의거하여 일을 처리 한다면 곧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학자는 말하기를, “국 한 그릇을 나누어 달라는 말은 하늘과 땅 사이에 용납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조포는 곧 일개의 군수에 불과하다. 자기가 맡은 지역은 백리가 되는 영토와 한 군의 백성에 불과하였다. 이것을 온전히 보전하거나 실패하여 이것을 잃는다 할지라도 이 때문에 한(漢)의 안전과 위험에는 큰 영향은 없다. 더구나 이 때를 당하여 임금은 어리석고 신하는 아첨하여 충신과 선량한 사람이 모두 화를 당하며, 모든 백성이 도탄에 빠졌으며, 교화가 크게 무너지고 홍수가 넘쳐서 붕괴되는 제방을 막아낼 수 없으며, 병이 골수에 스며들어 의약의 치료로 고칠 수 없는 것과 같은 상태였으니, 어찌 군자가 임금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임금이 주는 의복을 입고 몸을 희생하며 공적을 세우는 시기였겠는가. 조포는 조그마한 절의를 가지고 다만 나라의 녹을 먹으면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 옳다는 것만 알고, 걸(桀)을 도와주며 걸을 부하게 만드는 것이 잘못인 줄은 알지 못하였으며, 어머니를 죽이면서라도 공적을 세우는 것이 충성이라는 것만 알았지, 자신을 보전하여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효도라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부질없이 왕릉(王陵)의 휼륭함을 사모하였으나 실제로는 오기(吳起)의 잔임함을 얻어, 해서는 안 될 시기를 당하여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수행하였다. 그러므로, “조포는 충성과 효도에 있어 부족함이 있다.” 한 것이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에 조포로서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되겠는가.” 하니, 이르기를, “맹자가 말한 대로 몰래 업고 달아나서 즐겁게 지내며 천하를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일을 처리했다면, 천리(千里)와 인욕(人欲)의 공정함과 사사로움이 뚜렷이 구별되었을 것이며, 공자가 말한대로 천하에 도가 있을 때는 나타나고 도가 없을 때는 숨는다는 방법으로 자신을 처리하였다면, 곧 하루 아침에 갑자기 닥치는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하였다. 조포(趙苞)의 일은 유학(儒學)의 교훈에 관계가 있으므로 따지지 않을 수 없어서 이 논설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