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선생글 ▒

서(序) 하 최시승 등제시서(賀崔寺丞登第詩序) -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0. 18:34

서(序)
 
 
하 최시승 등제시서(賀崔寺丞登第詩序)
 

선비를 선출하는 법은 오래되었다. 그 과목이 늘어나고 줄어든 것은 세대마다 비록 동일하지 않으나 빈흥(賓興) 하고 작록(爵祿)하는 데 문ㆍ무를 쓰는 것은 일찍이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육예(六藝)가 삼물(三物)의 하나를 차지하고 사어(射御)는 그 가운데 있었는데, 후세에 와서는 무예(武藝)의 과(科)가 있었다. 또 일찍이 문ㆍ무를 거치지 않고 벼슬길에 나선 자가 있으면, 그런 자는 이(吏)라 이르나니, 대개 옛날 도필(刀筆 죽간〈竹簡〉에 사용하는 붓)의 소임이다. 이로써 벼슬의 길이 세 가닥으로 나뉘어 시속의 숭상하는 바를 따라 중하고 경한 것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당(唐)의 벼슬아치는 비록 지위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신하라 하더라도 진사(進士)를 거치지 않은 자는 아름답게 여기지 않았으며, 송(宋)의 전성기에 이르러서도 더욱 더 중하게 여기었다.
본국이 당(唐)ㆍ송(宋)을 본받아 대대로 문사를 존중하여 무릇 시종(侍從)ㆍ헌체(獻替)의 관이나 선거(選擧)ㆍ전주(銓注)의 직에 있어서는 실로 그네들이 전담하고 무반이나 이속(吏屬)은 감히 바랄 수도 없었다. 하물며 지금 원 나라가 문치를 숭상하여 두 번째 과거 보라는 조서를 내리니, 문(文)에 종사하는 선비들이 모두 자신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다투어서 과장에서 기예를 겨루고자 하였다. 지원(至元) 6년 겨울에, 삼사사(三司使) 김공과 전법 판서(典法判書) 안공이 춘관(春官 예조)에서 선비를 뽑는데 춘헌(春軒) 최공의 아들 예경(禮卿)이 그 시험에 합격하게 되니, 최공은 빈객(賓客)을 좋아하기로는 동방에서 첫째인지라 축하하는 자들의 어깨가 서로 갈릴 지경이었다.
나는 이미 나아가 춘헌공에게 축하하고 물러와서 예경더러 말하기를, “무릇 과거에 오르고자 하는 것은 벼슬길을 밟아 올라가자는 것이다. 본국의 옛 제도에 관이 6품(品)에 이르면 다시는 유사에게 나아가 시험을 보지 않게 되었는데, 군은 일찍이 낭장(郞將)을 경유하였고, 감찰 규정(監察糾正)을 겸임하고 전객시 승(典客寺丞)에 전임되었다. 더구나 나이가 한창 건장하여 끊임없이 나날이 진전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근래의 예를 들어 말하건대, 극위(棘圍 과장〈科場〉)의 사이에서 붓대를 놀리는 백의(白衣)의 유생(儒生)들과 더불어 장차 녹명(鹿鳴)의 시를 노래하며, 계부(計簿)와 더불어 함께 가서 천자의 조정에서 과거[射策]를 보려는가. 장차 헌체가 되어 우리 임금의 과실을 바로잡아서 그 아름다움을 순성하려는가. 장차 전선(銓選)에 참여하여 선비들을 제품(題品)하여 혹은 꾸짖고도 벼슬을 주며, 웃고도 주지 않는 일을 하려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 무인(武人)의 호화 방탕한 것을 괴롭게 여기고, 그 이원(吏員)의 분주하게 다투는 것을 싫어하여 오활한 우리 선비에 의탁하여 스스로 사림(詞林)과 취향(醉鄕)에서 숨어 지내려는가.” 하였다.
예경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임금을 섬기는 것과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스스로 가훈(家訓)이 있거니와, 그 부귀와 영달같은 것은, 구하는 것도 도가 있고, 얻는 것도 운명이 있거늘, 내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우리 집이 예부공(禮部公) 균(均) 이하로부터 서로 계승하여 5대가 과거에 올랐으며, 예부공의 아들 문정공(文定公) 보순(甫淳)이 충헌왕(忠憲王)의 명상(名相)이 되어 네 번이나 예위(禮?)를 관장하였고, 조부 문간공(文簡公)에 이르러 또 덕릉(德陵)의 정승이 되어 문형을 맡았으며, 아버지께서는 어렸을 적에 국자제(國子弟)를 따라서 중국에 숙위(宿衛)하였기에 과거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일찍이 조모 김씨가 내 이마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네가 급제를 해서 능히 가업(家業)을 회복하는 것을 보면, 한이 없겠다.’ 하였다. 자애로운 그분의 얼굴을 지금은 비록 볼 수 없지만 말소리는 아직도 귓전에 남아 있다. 내가 구구하게 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의(義)롭게 여기며 술잔을 들어 권하면서 말하기를, 군자의 교(敎)는 옛날로 돌아가게 하고, 처음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니, 대개 그 유래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하물며 부지런히 학문을 하여 반드시 가세(家世)를 계승하고자 함에 있어서랴. 후일에 입신양명할 것은 미루어 가히 알 수 있겠다. 사람들의 말이, ‘과거 보는 자가 금년에는 좋은 주시(主試)를 만났다.’ 한다는데, 나는 주시가 금년에는 좋은 인재를 얻었다고 여기며 그것은 예경에게 해당된다고 하겠다.” 하였다. 손들도 듣고 모두 “그렇다.” 하며, 이어 각각 시를 지어 내 말을 책 머리에 쓰게 하였다.


[주D-001]빈흥(賓興) : 《주례(周禮)》 지관대사도편(地官大司徒篇)에 보인다. 향대부(鄕大夫)가 그 고을의 소학(小學)에서 어질고 유능한 인재를 천거하여 빈객으로 예우하여 국학(國學)에 들어가게 하는 일.
[주D-002]과거[射策] : 옛날 선비를 뽑는 한 가지 방법이다. 대개 사책(射策)과 대책(對策)이 있는데, 사책은 의의(疑義)를 책(策)에 써서 함봉해 두고 응시하는 자로 하여금 하나씩 가져다 연역해서 바치게 하는 것이요, 대책은 정사(政事) 경의(經義)를 미리 내걸고 응대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