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봉 전설과 인물 죽이기
모깃불을 지펴 놓고 멍석에 누워 할머니께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여름철이다. 지금 세상과는 달리 저녁밥을 먹으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멍석 깔아 놓고 샘물에 담가 놓았던 수박을 먹으며 어른들과 아이들이 대화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아버지보다는 할머니, 어머니의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파씨나 마늘을 다듬으시며 6·25 전쟁, 도깨비, 귀신이야기를 해주셔 더위를 식혔던 때가 있었다. 그 무섭던 이야기에 대하여 어머니께서 맞장구를 치면 더욱 무서워 변소도 못 가고 쩔쩔 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보이지 않게 공동체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자랐다. 그런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전설이 된 것이다. 그런 전설 중에 때를 만나지 못해 죽어 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때를 잘못 만났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를 알아줄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역사 속에서 그를 죽이고 만 것이다. 이 시대에도 우리는 인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를 죽이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죽어간 판교면 심동리 장태봉에 얽힌 전설을 살펴보자. 판교면 심동리 장태봉 정상에 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장태봉에서 장군의 태를 안고 세상에 태어났으나 때를 잘못 만나서 자기의 힘을 소모할 곳이 없어서 세상을 화풀이로만 세월을 살다가 매 맞아 죽어간 한 장수의 무덤이라 한다. 고려 말엽 조정이 어지러워 백성이 불행에 접해 있어도 다스릴 힘이 없었다. 이때 섬나라 왜구들이 기회를 틈탄 듯 서해 바다로 밀려 와 백성들을 마구 죽이고 재물을 강탈해 갔다. 바닷가에서 살던 백성들은 고을 원님에게 적을 무찔러 줄 것을 탄원했으나 오히려 원님은 왜구가 나타났다고 하면 군사를 이끌고 도망쳤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백성들이 재물을 버리고 정든 마을을 떠나서 뿔뿔이 흩어졌다.
이렇게 백성들의 괴로움을 눈 익혀 본 하늘에서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 장수를 이 세상에 보내주었다. 그 장수가 바로 장태봉에서 태어난 장수였다. 그는 산골짜기에서 태어나서 아침저녁으로 과일과 칡뿌리를 먹으며 살아서, 기운이 장사였다. 또한 그는 생식을 좋아해서 산 짐승을 잡아서 먹었으며 배가 고프면 냇물에 나와서 물오리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도 하였다.
그는 하늘의 가르침이었는지 하루는 성주산 너머로 가서 한참 있다가 이곳에 돌아왔는데 온순했던 그가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연유에서 난폭해졌는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성주산 너머에서 왜구라도 만났으면 싸움으로 화풀이를 했을텐 데 그때는 이미 김장군이 왜구를 모두 소탕한 뒤였으므로 실망하여 난폭해졌다고 한다. 그는 장태봉으로 와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더욱 거칠어졌고 이제는 마을에 내려오면 자기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모두 소유해야 조용해졌다. 술맛을 알게 되고 여인을 품에 안아 본 그는 매일 같이 마을을 휩쓸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회의 끝에 그를 이대로 살려 둘 수 없다하여 먼저 마을 청년들이 그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한 다음 밧줄로 꼭꼭 묶었으나 술이 깨나 한 번 힘을 주니 밧줄이 모두 끊어지는 바람에 계획이 허사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홍산까지 가서 군졸을 불러 들여 그를 잡아가도록 사정을 하자 현감이 군졸 30여명을 보내어 그를 잡으려고 창을 휘둘렀으나 화가난 그가 군졸들을 하나 하나 잡아서 강변에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또 허사로 돌아갔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가 이곳에 사는 이상 살 수 없다 해서 마을을 비우고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 옥산 땅에서 큰 환갑 잔치가 베풀어진다는 소식을 듣에 꼭 가야겠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은 몰래 옥산 땅에 가서 그 곳 사람들과 그를 죽일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는 보통 장사가 아니니 쉽게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밤새도록 회의 끝에 꾀가 많은 젊은이의 말을 듣고 그의 생각대로 그를 마음껏 술을 마시게 한 다음 쳐 놓았던 차일로 덮은 다음 몽둥이로 때려죽이기로 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그 이튿날 아침 햇빛이 제법 중천에 떠올랐을 때 그는 무슨 초대나 받은 사람처럼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꾀가 많은 마을 청년이 그를 차일 한 복판에 자리를 정하게 하고 술상을 차려서 그 앞에 놓고 술을 마시게 하였다. 그가 술을 마실 때 마을 청년 40여명이 몽둥이를 들고 네 군데로 숨어 있었다. 그가 술이 취해서 자기 안방처럼 누워서 코를 드르릉 골기 시작할 때 꾀가 많은 청년의 신호로 차일 네 군데 줄을 한꺼번에 끊고 차일이 내려 덮치자 청년 40여명이 우르르 몰려 와서 난자질을 하여 힘이 센 장사였지만 숨돌릴 사이도 없이 죽고 말았다. 그가 죽자 처음은 괘씸하다고 생각하였지만 한편 불쌍한 생각도 들어서 장태봉 꼭대기에 묘를 써줬다 한다. 때를 잘못 만났기에 행패를 부리다가 죽은 장사가 묻힌 이 산을 장군이 태어난 봉우리라고 하여 장태봉, 또는 장수봉이라고도 부른다.
장태봉의 장군은 처음부터 포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라를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주었더라면 그는 영웅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아니 이 전설에는 이미 지배층의 논리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능력 있고 힘있는 자는 나라를 뒤엎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제거되어야 한다는 지배층의 논리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숨죽이고 조용히 오래오래 살라는 것이다. 요즈음 그렇게 살아 왔던 우리 지역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생각이 다르다고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다양한 현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서천은 인심이 포악하고 송사가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그 오명을 우리는 씻겨내야 한다. 오늘은 바람이 솔솔 부는 언덕에 멍석을 깔고 참외 냄새가 물씬 나는 개똥참외를 먹으며 외할머니 말씀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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