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자료실 ▒

한산 세모시 예찬

천하한량 2007. 1. 11. 19:02

한산 모시옷을 입자


경상남도 동래 지방에 전해오는 민요 속에는 모시옷의 운치가 잘 묘사되어 있다.

 

“모시야 적삼 아래

 연적 같은 저 젖 보소

 많이 보면 병납니더

 담배 씨만큼 보고 가소.”  

 

모시옷 아래로 은은하게 비치는 여자의 젖가슴을 훔쳐보기는 보되 조금만 보라는 은근한 충동질이다. 그 얼마나 모시옷의 특징을 극명하게 나타낸 민요인가? 요즈음도 거리에서 모시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선비의 고상함이 드러나고 여인의 정숙함 그대로이다. 모시옷의 기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한산 모시옷이 그리운 때이다.  


한산 모시는 서천 사람들에게 모시근성을 심어 주었다. 태모시가 한 필의 옷감이 되어 멋을 내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하는데, 이 과정을 통하여 서천 사람들은 참을성을 배우게 하였다. 모시를 째면서, 날면서, 짜면서 서천 사람들이 갖게 된 것은 참을성이었다. 세모시 옥색치마라고 부르기는 쉽지만 한 벌의 모시옷에는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 메스꺼운 왕겨 불, 베틀에 걸터앉아 배고픔과 요통과의 싸움이 있다. 그러므로 모시는 인간 승리요, 삶 그 자체이다.


 모시는 부드러운 맛을 주면서도 질기고 질겨 끊기지도 찢기지도 않는다. 바로 서천 사람들을 닮은 것이다. 서천 사람들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얌전한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강한 외유내강형의 사람들이다. 또한 한산 모시는 화려하거나 사치스런 모습을 담고 있지 않다. 담백한 촌색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요, 장신구를 많이 가진 멋쟁이는 더욱 아니다.

 

한산 모시는 청빈낙도(淸貧樂道)의 기품을 갖추고 있다. 또한 청렴하고 결백한 삶을 보여준다. 부자가 되려고 모시를 짜지 않는다. 먹을 것이 없어서 모시를 짜는 것이 아니다. 모시 짜는 것이 생활이이고, 삶이다. 어머니, 할머니가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모시 짜는 여인의 모습은 할 일 없이 마실 다니는 여인과 퍽 다른 모습이다. 한산 모시는 여인들의 삶이요, 인생이었다. 베틀에 앉아서 사랑도 삭히고, 증오도 삭혀야 한다. 지나온 한을 잉아에 걸고 날줄 사이로 씨줄을 던지고 바디를 내려치면 다시금 일어나는 그리움을 밀어내야 한다. 어느 세월에 이 한 필이 완성될까 하지만 그리운 님 생각에 새벽닭 울어 날이 새어 버린다.


여인의 한을 듬뿍 담고 세모시는 새벽 장에서 팔려 간다. 한산 여인의 근면성을 엿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한산 여인들은 부지런해야한다. 생활은 생활대로 해야하고 모시는 모시대로 짜야하기에 새벽에 팔고 아침 일을 해야한다. 물론 모시는 새벽에 질감을 알 수 있다. 남의 말 할 시간도 들을 시간도 없다. 빨래터에 앉아야 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렇듯 한산 여인은 바지런한 삶을 살아야 한다.
모시옷은 부정을 거부한다. 순백한 모시옷에 불순물이 묻는다면 오점(汚點)이다. 모시옷을 입은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더러운 것에 가까이 하길 꺼려한다. 사방이 깨끗하게 정리된 장소에 있을 때 모시옷을 입은 사람의 마음도 편하고 품위도 있다.  이상재 선생의 모습을 보라, 대쪽같은 외마디 비명 속에 일본 놈의 간담을 써늘하게 할 수 있었던 품위는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자란 모시 근성을 가진 전형적인 서천 사람이다.


한산 모시를 통하여 서천 사람들이 가져야할 모시근성을 생각해 보자.


첫째 외유내강의 서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부드러운 미소와 친절로 사람들을 대하고 내면은 강해야 한다. 그 사람은 와야오는 사람이다. 그 사람 돈을 줘야주는 사람이다. 라고 흐리멍덩한 계산과 신용은 이 시대에 개선해야 할 우리의 모습이다. 겉만 화려하고 속은 비어 있는 농산물을 유통시킨다든지, 유명상품을 도용하여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모두 겉치레에 찌든 모습이다.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속이 꽉 찬 지현리 석탑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야할 것이다.


둘째, 모시는 청빈낙도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여유가 있는 서천 사람들의 모습이 필요하다. 서천은 오지이다. 낙후되었다라는 말은 근대화에 밀려난 이후에 들려온 말들이다. 근대화 이전의 서천은 넉넉하였다. 다른 지역에 비하여 대지주는 없었지만 중소지주층이 형성되어 먹고 살만한 지역이었다. 지금도 서천의 들판은 풍요롭지 않은가, 오늘날 서천은 해방이후 정체된 상태로 머물러 있기에 재정자립도가 떨어지고 낙후되어 있다. 이런 서천지역에서 모시는 여유와 담백함을 지닌 사람들을 만들어 놓았다. 모시 옷 자체가 화려하지 않으며 추하지 않은 모습처럼 우리도 담백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셋째, 모시옷은 부지런해야 입을 수 있듯 우리도 더 부지런 해야한다. 모시를 짜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모시옷은 관리를 잘해야한다. 모시옷은 풀을 먹여야 제 멋이 난다. 모시옷을 관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전통사회의 모시옷 관리는 당연한 일었지만 오늘날 모시옷에 풀을 먹이려 하면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렇듯 모시옷은 근면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모시옷이 근면과 인내를 필요로 하듯 우리 서천도 문화적으로 근면하고, 사람과 사람을 대할 때 참을성을 갖고 대했으면 한다.


실제적으로, 잠자리 날개옷 같은 한산 모시는 올이 가늘고 짜여진 직조상태가 좋아 합성섬유에 비해서 통풍성과 땀 흡수력이 좋고 습기의 발산도 빠르다. 또한 색깔이 희고 고결한 기품을 나타내고, 옷감의 질감에서 깔끔함과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모시옷을 입으면 까칠까칠한 촉감을 느껴 시원하다. 그리고 입을수록 윤이 나며 색깔이 희어져서 언제나 새 옷 같은 느낌을 준다. 모시는 섬유질이 매우 질겨 옷을 한번 해 입으면 10년 이상 입어도 헤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빨아 입을수록 빛이 바라지 않고 백옥같이 희어져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