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자료실 ▒

지금 서천 남산성에 올라가자

천하한량 2007. 1. 11. 18:57
지금 서천 남산성에 올라가자



지금 서천 남산에 올라가자!
우리 고장은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여 먹을거리가 풍부한 지역이다. 금강 변에 발달한
충적 평야에서는 기름진 서천 쌀이 생산되고, 금강에서는 우여가 우리의 입맛을 감칠 나게 한다.
가까운 바다에서는 마량 김이 서천의 얼굴이었다. 이와 같은 먹을거리는 서천을 천연의 생활터전
으로 만들어 왔다. 이 생활 터전들이 1990년대 이후 그 모습을 속속 드러내고 있다.
1996년 서천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오석리 유적은 서천의 선사 유적을 대표하고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 발견된 이 유적은 부여 송국리 유적과 비슷한 시기에 서천 사람들의 생
활터전이었다. 말하자면 기원전 5∼6세기에 서천의 중심지와 같은 곳이다.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알 수 있는 움집과  무덤, 토기, 돌칼 등이 대량 발견되었던 곳이다.
1998년 우여곡절을 겪으며 발굴된 당정리 선사 유적은 많은 수의 주구묘가 발견되어 고고학자들
이 서천을 새롭게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다음으로 장항 장암리, 마서 송내리,  한성리, 비인 선도
리 등에서 선사 유적이 발굴되어 우리 고장이 선사 유적의 보고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 어떤 유적도 서천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유적은 없다. 아니 실제로도 남아 있지
않다. 오석리 유적은 서해안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되었고, 당정리 유적은 논으로 변해버렸고 송
내리 유적은 서천 장항 산업도로가 통과하여 길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서 모두 보고
서를 남겨 놓고 없애 버린 유적들이다.  서천 사람들은 그 유적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
고 보고서는 보았을까? 우리 지역의 산 역사로 간직되어야 할 것들이 문명과 개발이라는 미명하
에 모두 사라지고 있다. 정말 아쉬운 일들이다. 몇 년이 지나도 보고서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장
암리 선사 유적도 있다. 장암리는 현재까지 조사된 것으로 본다면 우리 지역에서 가장 먼저 인류
가 정착하여 살아온 신석기 시대 유적이다. 서천 사람에게 중요한 보고서이다. 아니 나왔다 하더
라도 본적이 없다. 이렇게 우리는 생활터전이었던 선사 유적을 잊어버리고 있다.
선사 유적과 더불어 우리 고장은 백제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웅진 사비시대의 군사적 경
제적 요충지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 겨울 추위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충청매장문화연구원에
서는 수리너머재 고분을 발굴하였다. 그 고분만으로도 종천지역의 백제 시대를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다. 수리너머재 고분을 비롯한 장구리 산성, 당정리 고분, 산천리 고분 등이 백제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고분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화산리와 종천리를 넘나드는 수리너머
재에 고분 공원을 조성하여 오고가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뿐만 아니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여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우리 고장의 상징이며 역사의 근원이었던 건지 산성이 1999년 발굴되었다. 건지 산성은 교
과서에는 아직까지 주류성으로 알려져 있다. 주류성은 백제가 망하고 부흥운동을 했던 곳이다. 아
니 서천, 한산, 비인 사람들이 망한 백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열내고 성내며 모여들었던 곳이다. 서
천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지금까지 살아 왔다. 그래서 한산 소곡주도 백제 부흥군들이 망국의 한
을 달래며 빚어 마신 술이라고 하여 역사적 연원을 찾았고, 한산 모시도 건지산에서 얻은 것으로
백제시대부터 모시가 유래된 것으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렇게 알고 있다. 사실 신라 시대라
고 소개한 책들이 많이 있다. 우리 고장의 정신적 지주인 건지 산성을 발굴하고 보니 고려후기에
서 조선초기에 쌓은 성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실망스런 일인가? 모든 것이 허탈한 느낌이다. 한
산 건지 산성 발굴을 잘했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발굴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고 해야할까? 부분적
인 발굴이니 전체적으로 다시 발굴해보자고 할까. 이제 건지 산성은 역사학계의 관심에서 제외되
었다. 따라서 발굴을 의뢰했던 서천군청의 관심도 사라졌다. 더 이상 언론이나 학계에서 주목을
받는 산성이 아니다. 백제 산성으로 한 방 터뜨렸어야 후련했을 텐데..... 그 애향심(?)이 건지 산성
을 죽여버렸다. 아니 서천 군민의 역사적 정체성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들
이 없다. 김유신 묘, 김수로왕 능을 왜 발굴하지 않고 그렇게 믿고 있나 그것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그 성씨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구명하는 것보다 더욱 큰 가치를 보존
할 수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그래서 사실 구명도 사려 깊은 판단이 있어야 한다. 건지 산성 문제
를 일단락 지었다고 안주하지 말자. 건지 산성 문제를 덮어놓지 말자. 이미 드러난 사실이지만 서
천의 정체성 구명을 위해 건지 산성에 관심을 갖자.
2001년 여름 뜨거운 열기가 세상을 짓누르고 있을 때 서천 남산성에서는 백제 찾기에 열심이다.
한산 건지 산성에서의 잃은 백제를 서천 남산성에서는 기필코 찾겠다는 신념이 불타고 있다. 서천
남산에 올라가 보자. 서천의 역사를 새롭게 구명하는 자리이다. 높은 성벽이 드러나 남산의 위용
을 과시하고 있다. 서천 남산은 이제 서천사람들의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서는 우리 모두가 서천 남산을 지켜야한다. 남산을 어떻게 보존 개발해야하는지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우리 지역과 가까운 임천의 성흥 산성, 논산 노성 산성을 참고하여 발굴과 보존이 이루어
져야한다. 발굴로 드러난 성벽을 볼 때 그냥 방치할 수 없는 산성이 되어 버렸다. 이번 발굴은 1
억여 원의 예산이 투자되었다는 보도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발굴비와 보존을 위한 비용이 투자
되어야 할지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 남산은 서천의 상징 적인 산성으로 개발될 것으로 믿어 의심
하지 않는다. 이를 위하여 서천 남산을 어떻게 개발되어야 쾌적한 서천을 될 것인지 군민들이 머
리를 맞대어야 할 때이다. 차후 2200년을 바라보면서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산으로 발굴과 보
존이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꼭 서천 남산에 올라가 보자. 넓은 들판과 서해를 바라
보며 그 동안 살라온 서천 사람들의 발자취도 찾아보고, 미래의 멋있는 서천을 설계해 보자. 살
맛나는 서천을 구상하자. 서천 남산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