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자료실 ▒

정이 듬뿍 담긴 동네 이름들

천하한량 2007. 1. 10. 02:34

정이 듬뿍 담긴 동네 이름들


추석이 다가오면 마을 어귀에서 동네 어른들은 자녀들이 언제 올까 목 빠지라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70년대, 이웃에 살던 형과 누나들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돌아올 때는 남부럽기까지 하였다. 우리 집에는 떠난 사람이 없으니 돌아올 사람도 없었던 때이다. 나라도 얼른 커서 명절이 되면 선물을 듬뿍 사들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냈지만 그렇게 꿈을 꾸던 서울 생활은 나에게는 꿈이었는가 보다. 그 후, 세상이 다 변하였어도 추석이라는 명절만큼은 큰 변화가 없이 벌초를 하고, 차례를 지내고 동네 어른을 찾아뵙는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동구 밖을 내다보며 자식이 돌아오길 학수고대하는 모습은 자동차 문화와 함께 사라졌지만 그래도 어르신들 마음은 이미 마을 어귀에 나가 계시다.


그 어르신들이 지켜온 마을에는 참 아름다운 동네 이름들이 남아 있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듣기만 하여도 정이 듬뿍 베어나는 동네 이름들 그 말만 들어도 고향 생각이 나고 부모님 생각이 난다.  우리는 동네 이름들이 변함 없이 잘 있길 바라지만 이제 고향에도 개발의 물결과 이촌향도 현상으로 동네와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 고장 서천에도 다른 지방과 같이 아름다운 동네 이름들이 있다. 동네 이름은 그 땅의 특징을 따라서 지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산이나 다리, 고개, 연못, 바위, 섬 등으로 나누어 정이 듬뿍 베어있는 이름을 살펴보도록 하자.


다리는 물 또는 어떤 공간의 위로 건너다닐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을 가리킨다. 이런 다리는 만든 재료나 형태에 따라 분류하는데 우리 지방에는 판교 너다리, 길산 질뫼다리, 장마루 섶다리, 서천 장교, 비인 청석교, 종천 개복다리, 문산 도마다리, 마산 동면다리, 한산 조개다리가 유명하다. 마서 까치 다리, 한산 구슬다리, 한 다리, 서면 배 다리(舟橋), 다리목 또는 달목(月里) 등이 정감이 가는 다리 이름들이다.


산 이름을 딴 마을은 종천 화산리 꽃뫼(花山), 한산 단상리 톨뫼(兎山),  화양 월산리 달뫼(月山), 한산 송산리 솔뫼(松山), 마서 옥산리 구슬뫼(玉山), 화양 옥포리 도루메(圓山), 딴뫼(禿山) 등이 있다.


고개 이름에 붙여진 이름은 기산 광암의 빛고개(光峴), 화양 기복리 치울재(箕山), 마서 남전리 먹재(墨峙), 비인 남당리 쇠재(牛嶺) 화양 월산리 달고개(月山), 그 외 구슬 고개라는 명칭도 남아 있다. 치울재는 곡식을 까불러 고르는 키를 닮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먹재는 먹처럼 검은 흙이 난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생산물을 고려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은 갓을 만들던 갓점, 유기 그릇을 만들던 놋점, 사기 그릇을 만들던 사기점, 쇠를 만들던 무시점 등이 있다 갓점은 입점(笠店)이라고도 하는데, 기산면 황사리에 있는 마을이다. 놋점은 유기점(鍮器店)이라고 하는데, 판교면 판교리에서 문산 금복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마을이다. 사기점은 사기 그릇을 만들던 마을로 종천면 종천리, 문산 금복리, 판교면 상좌리에 남아 있는 마을 이름이다. 광석을 녹여 쇠를 만들던 무시점은 마산면 시선리에 있는 마을이다. 이외에도 모시가 많이 생산되는 판교면 저산리 모시울(苧洞), 조개가 많이 있었다는 조개티(蛤田)는 마서면 남전리, 서면 합전리가 있다.


포구와 관련하여 붙여진 이름 중에는 은개, 금포, 배들리, 배다리 등이 좋은 이름이다. 은개는 마서면 신포리에 있는 은포(銀浦)이고 금포는 마서면 월포리에 있는 금포(金浦)이며, 배들리는 비인 선도리를 예전에는 선입리(船入里)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그 이외에 솔안이라는 마서면 송내(松內), 갈대의 목을 닮은 지형과 같다하여 갈목(蘆項), 갈목은 마서면 송석리 갈목마을이다. 또 돌이 누워 있는 동네라고 하여 눈돌(臥石)은 마서면 송석리 와석마을이며, 표주박을 닮은 마을이라고 조빡굴(瓢洞)은 화양면 추동리 마을이다. 또한 연못이 두 개 있다하여 붙여진 두못치는 마서면 당선리 쌍연(雙淵) 마을이다.

 

바위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범바위는 한산면 호암리이며 고이 바위는 기산면 수출리에 있다.

 

섬 이름으로는 비인 선도리 할미섬(姑島)과 서면 띠섬(矛島) 등이 있다. 냇가의 이름을 잘 딴 동네 이름으로는 달구내라 부르는 기산면 월리 월천리(月川里)가 있고, 저수지 이름으로는 마을 건너 있다하여 건너지보가 있다.

 

이외 듣기 좋은 마을 이름으로는 판교면 흥림리 새야 마을과 한산면 죽촌리 이울 마을이 있다.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기산면 두북리 두문이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을 세울 때 협조하지 않고 두문동에서 이방원의 방화로 타 죽은 72인 중 한 성씨인 교하 노씨 일문이 외가인 한산 이씨를 찾아와 자리잡은 마을이다. 두문동에서 살다온 사람들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한산으로 낙향한 사람은 낭장(郞將)을 지낸 노윤보 (盧允寶)이며 조선 건국에 불복하고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사촌남매(四寸男妹)간으로 목은(牧隱)의 선대(先代) 고향(故鄕)인 한산(韓山)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 

 
이런 마을 이름들은 순 한글로 남아 있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듣기도 좋고 정감이 가는 마을들이 대부분이다.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에서 내려와 나와 관련이 있는 어린 시절의 그 장소를 떠올려 보려고 하지만 이미 변해버린 경관은 못내 아쉬움을 더할 것이다. 아니 정들었던 동네 이름조차도 버림받아 사라졌는지 모른다. 아쉬워만 하지말고 그 좋은 이름들을 성묘가면서 동네 어른을 찾아뵈면서 슬하의 자녀들에게 말해주자 그들은 듣지 않는 것 같지만 먼 훗날 아버지가 어머니가 이야기한 말씀을 기억하고 그 이름을 전달한다.

 

달구내, 새야, 이울, 배들리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이름인가. 지금 다시 자녀에게 물어보면 모른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이름을 당장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은 기억하고 전한다. 우리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다. 올 추석에는 자녀들에게 어린 시절 추억을 많이 이야기 해주자 그것이 산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