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자료실 ▒

성 담론 질메다리 이야기

천하한량 2007. 1. 10. 02:25

성 담론


우리 서천에는 성과 얽힌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서천도 사람 사는 곳이라 성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기층민의 생활을 반영하고 있는 성 담론은 잘못하면 음탕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알게 모르게 성교육을 자연스럽게 행하던 동네 사랑방 문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랑방에서의 성에 대한 이야기는 요즈음 몰래 보는 음란물과는 다르게 공개적이며 상상력을 동원한 만족감으로 자연스런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하였다. 끝에는 형들의 장난기 어린 몸싸움으로 끝나고 말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성 담론은 어린 시절 어른이 빨리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심어주었지만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서천의 성에 대한 담론중 제일 성으로 나는 당연 질메다리 이야기를 꼽는다. 이 이야기는 1970년대까지 서천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머니로부터 듣고 자란 이야기이다. 일곱 살을 전후한 시절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고 얼마나 뺀돌거렸던가? 세상물정 조금 안다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자기 방식대로 살아보겠다는 고집을 피우던 그 녀석들에게는 어머니의 부지깽이도 효험이 없던 시절이 아니던가? 그때 화가 치민 어머니는 너 이놈 질메다리 밑에서 주워 온 놈이라며 자기 자식으로부터 분리를 시키는 순간이다. 아마도 그 아픔은 어머니 자신이 자식을 분리시키던 산모의 진통을 느끼던 순간과 같은 아픈 말인 것이다.


너 이 녀석 질메다리에서 주워 왔다는 말의 질메다리는 어디인가. 서천사람들이 죽으면 옥황상제가 너 질메다리를 가봤냐고 꼭 물었다고 하듯이 언제가 그 다리는 서천과 한산 지방에서는 유명한 다리였다.

 

문헌적으로는 1530년대에 스님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사람들이 시주를 하여 건축한 다리이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비석이 옛 길산초등학교의 교정에 있다.

 

1530년 이후 특히 일제강점기에 이 곳은 메가리간을 중심으로 해서 서천 동양척식주식회사지부가 있었으며 일본인 횡산 농장이 있어 조선 사람들의 고혈을 뽑아내던 지역이다. 또한 길산장이 서천 장만큼이나 커서 사람들이 늘 모여들던 곳이다.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은 경제활동이 풍족한 지역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거지들은 서천과 한산을 잇는 질메다리 밑을 거처로 삼았다. 이 모습을 오고가며 바라보았던 사람들은 아이들을 골려주거나 혼을 내줄 때 너 이 녀석 질메다리에서 주웠다는 이야기로 대신하였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철이 없던 일곱 살 먹은 녀석들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의심을 갖게 되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나를 정말 주워온 것인가 어쩐지 나는 늘 형의 헌옷만 입히더라 먹는 것도 꼭 동생에게만 더 주더라며 자신의 처지가 갑자기 불쌍해지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질메다리를 잘 생각보면 세상 사람치고 어머니의 질 밑 다리 밑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이야기를 알았더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한바탕 웃고 말았겠지만 서천 사람들이 꼭꼭 숨겨놓은 이 오묘한 성 담론을 누가 알리오 바로 이 이야기가 서천 사람의 성에 대한 의식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골적이지도 않고 살짝 포장한 서천의 질메다리 이야기는 우리가 두고두고 간직할 우리 지역의 향수인 것이다. 그렇게 부르는 다리는 우리 어머니들의 곁에도 있지만 서천읍 삼산리 길산 옛 길산초등학교 정문 옆에 있다.


두 번째 이야기로는 다른 지방에는 백도라지 같은 민요도 있는데 우리 지방은 그런 은근히  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노래가 없다. 사랑방에서 훔쳐들은 이야기인데 도라지 타령을 곱씹어 보면 여인이 도라지를 캐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사실 남성을 그리워하는 노래라고 한다. 도라지 타령을 다시 한번 불러 보면 그 모습이 연상될 것이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 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 철철철 다 넘는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  에야라 난다 지화자 좋다 지화자 좋다 얼씨구  좋구나 내 사랑아. 라고 읊조리면 그 맛이 새로운 것이다. 이런 타령이 서천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몇 번 조사를 해보려고 시도는 했지만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채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시와 관련된 민요로는 모시야 적삼 아래/ 연적 같은 저 젖 보소/ 많이 보면 병납니더/ 담배 씨만큼 보고 가소.”모시옷 아래로 은은하게 비치는 여자의 젖가슴을 훔쳐보기는 보되 조금만 보라는 은근한 충동질이다. 그 얼마나 모시옷의 특징을 극명하게 나타낸 민요이며 남자들의 성적인 욕구를 잘 파악한 노래인가. 이 노래는 경상도 동래 지방에 전해 오는 민요이다.


모시 하던 할머니들 말씀에 의하면 저녁에 술 한잔 마시고 얼굴이 불그레해서 남편이 방안에 들어오면 허연 허벅지 드러내고 모시 삼는 것을 보고 어이 광주리 좀 밀어봐라는 말에 얼라 이것 허야지 얼라 이것 허야지하면서 못이기는 척하지만 끝내는 그럼 모시 광주리 치야지 라는 말로 남편의 요구에 부응했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광주리는 우리 고장에서는 부부의 사랑 표현 방법 중 하나였다고 한다. 모시와 더불어 살기에 원앙 대신 광주리가 은밀한 사랑의 가교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이처럼 성 담론은 그 지역 기층민들의 체험에서 우러난 창조물로서 기층민 나름대로의 일상생활을 담고있으며 정신적 카타르시스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누군가가 구태여 기록으로 남겨 놓지 않더라도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성 담론은 공개적으로 말하기 꺼려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언제든지 기층민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농촌의 유유자적한 삶까지 아파트에 가둬버린 요즈음 동네 사랑방에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성 담론을 풀어주던 아저씨가 그립다. 그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이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구성애씨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