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꿈과 서천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다. 자랑스런 대통령을 우리는 뽑고 싶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나에게는 자랑스런 대통령이 없다. 아마도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면 사람들은 대통령을 잘도 만나고 손도 잘 잡는데 나는 한번도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원인일 것이다.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면 더욱 친근감을 갖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잊지 못할 사건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럴 기회를 나는 서천에서 갖고 싶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하여 당선된 후보가 서천 군민의 손을 많이 잡아주는 기회가 오길 원한다. 당선된 대통령이 서천 군민의 손을 잡아줄 기회를 마련하려면 서천에 대통령이 올만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서천은 한양과 400리 길이다. 조선 임금 27명중 과연 누가 서천을 방문하였을까 아니 백제, 고려 왕 중 서천을 방문한 왕은 있을까 있다면 아마 몇백년만에 한번 있을동 말 동한 사건이다. 사건중에 사건일 것이다.
아직도 덜 고증되었지만 백제 동성왕이 마포촌에서 유숙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포촌이 한산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어 신빙성을 더해주지만 그 이후 조선시대까지 왕이 서천을 찾았다는 말은 못 들었다.
조선시대 왕족의 원찰로 천방사가 있었다. 왕족 개인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사찰이지만 그 권력을 배경으로 횡포를 휘두르다 동춘당의 상소로 완전 전소되어 어느 곳에 있던 사찰인지 그 흔적도 없다.
서천에 왕이 올 이유가 없다. 한양과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도피처로 좋은 장소도 아니다. 또 지리적으로 보면 왕이 경유할 만한 요지들이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조선시대 왕의 지방나들이는 거의 없었다. 정조는 화성을 자주 찾아 효성이 지극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백성들의 억울함을 그때그때 들어주었다. 소위 격쟁이라고 하여 왕이 지나갈 때 꽹과리를 치면 임금도 그 이유를 묻고 해결해주는 제도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이를 이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방나들이는 임금이 민정을 살피는 기회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서천은 지리적으로 치우쳐 있어 그런 기회도 적었던 것이다.
그럼 어떤 대통령이 우리 서천을 찾았을까?
먼저 이승만 대통령은 장항 제련소를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방문하여 당시 제련소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의 상황을 듣지 못해 참 아쉽다.
그후 박정희 의장도 제련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드디어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면 마량리를 방문한다. 지금의 해양박물관이 있는 곳에 마련된 브리핑현장이었다. 비인임해공업단지 조성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자 방문한 것이다. 현장에서 비인만을 바라보며 비인 임해공업단지 조성에 대한 현황 보고를 듣고 의견을 나눈 것이다. 이때 대통령을 가장 측근에서 수행한 사람은 김종갑 국회의원이었다.
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현장을 설명하는 귀한 사진 한 장이 남아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천사람들에게 꿈을 부풀게 했던 증거이다.
196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이다. 단지 박정희 대통령이 제2차 경제 개발계획 중 비인 임해공업단지 조성을 발표하던 해이다. 지금의 입장에서 바라 본다면 그 해 1965년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꿈만 있었다. 서면 월호리를 중심으로 반경 7.5㎞에 비료공장, 석유화학 기지를 개발하기 위해서 항구, 철도, 도로 등 기간시설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 후 정부에서는 비인임해공업단지로 설정하여 총22억2천6백만원 규모로 공업용수, 매수, 철도 및 용수시설 등을 목표하는 공업지원 시설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1965년 6월 1천1백50만원의 예산을 들여 도로, 공업용수, 항만시설 등 기초 조사를 끝낼 예정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그때의 신문보도에 의하면 비인 지구에는 제2의 정유 및 제5 비료 공장이 건설될 전망이라고 하였다.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비인면 선도리와 장포리를 잇는 터널이 방치 되어 있다. 장항에서 서면까지 철도를 연결하기 위한 사업의 시작이었다. 비인에서는 그 작업으로 곧 철도가 만들어져 기차가 다닐 것으로 기대에 찼다.
그 후 1976년 10월 정부는 석유화학공업기지로 개발키로 한 군산-비인 지역중 비인지구에 대한 개발 계획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의 방문으로 서천 사람들이 가진 꿈은 무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니 1965년이후 한발자국도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 상태이다.
장항국가공단 발표이후 서천은 다시한번 희망에 부풀어 참고 견뎌왔지만 더 이상 참고 견딜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꿈은 꿈으로 끝나버렸다. 그 이후 어느 대통령도 주목하지 않는 오지의 땅으로 전락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보고회를 마치고 서천군청에서 1시간정도 담소를 하다 서천역전에서 기차를 타고 상경하였다. 이때 서천 주민들이 역전에 운집하여 박수 갈채를 보내자 대통령이 군민 속에 들어가 손을 잡아 주었다. 그 모습은 서천의 희망을 전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의 꿈이 날아가 버렸다. 서천, 장항 경제를 보라 밤 9시이전에 불꺼진 거리를 보라. 그 약속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단 말인가 이제 서천 군민과 약속을 지키는 자랑스런 대통령을 뽑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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