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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역사의 寶庫 충청감영 터

천하한량 2007. 1. 10. 01:41
공주 역사의 寶庫 충청감영 터
1894년 전봉준이 그렇게도 오고 싶었던 곳을 꼽으라면 충청감영일 것이다. 우리는 동학혁명을 말하면서 우금치는 자주 언급하지만 충청감영은 말하지 않는다. 우금치는 전투의 현장이고 충청감영은 전봉준이 점령하고 싶었던 구체적인 목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금치는 여러 사람들이 동학혁명의 답사코스로 다녀가지만 충청감영터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공주를 스쳐지나간다. 공주를 찾는 답사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공주 사람들도 충청감영에 관심이 적다. 아니 충청감영에 대한 역사적인 상흔을 교육이라 명분이 잠식하였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교육 장소로만 생각할 뿐이지 역사적인 현장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 그 역사적인 현장이 바로 지금의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이다.
충청감영이 1602년에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온 이래 사대부고에 자리한은 것은 1706년이다. 그후 1932년까지 충청남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할 때까지 무수히 많은 역사적인 사실을 남겨 놓았다. 먼저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다.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우는 이존창을 감영에 가두고 공초를 담당하였다. 이때 관찰사는 박종악이었다. 또한 1868년 남연군묘 도굴사건이 발생할 당시 충청도 관찰사는 민치상이다. 민치상 역시 천주교 박해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민치상은 공산성 금서루 밑에 송덕비라는 명칭으로 영세 불망비를 남겨 놓았다. 천주교인들은 배교를 강요하다 끝내는 황새바위에서 처형 당하였다. 그때 제민천 변이 핏물로 물들었다하니 그 수를 짐작할 만 하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한다면 충청도 감영터는 충청도 천주교 박해의 진원지이다. 또한 충청도 감영터는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 관군의 총지휘소이다. 1894년 당시 관군의 총지휘자는 충청도 관찰사 박제순이었다. 박제순은 충청도 감영에서 관군, 민보군 등의 배치 상황을 점검하였고 전투를 총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동학혁명을 진압한  후 승승장구하여 을사조약을 맺을 때는 외무대신이 되었다. 그 결과 그는 을사오적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그의 선정비가 아쉽게도 이인면사무소 앞에 가장 색다른 모양으로 버젓이 버티고 있다.
 그럼 충청도 감영터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충청도 감영터는 네시기의 유적유물이 분포하고 있다. 첫째는 백제 시대 용도 미상의 연꽃무늬 대좌와 초석이 남아 있다. 대좌의 일분으로 그 속에 연꽃무늬 5엽 정도가 남아 있다. 이 연꽃무늬의 조각 수법은 대통사 석조, 무령왕릉 벽돌무늬와 일치하고 있어 6세기 초엽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초석은 방형으로 치석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눈여겨보지 않으면 백제 시대 유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유물들은 모두 대통사지와 관련이 있는 유구로 여겨진다.
두 번째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초석 2점이 남아 있다. 하나는 이미 드러나 있던 것이고 하나는 2002년 부고 다목적 교실 터 파기 중에 발견된 것이다. 이와 똑같은 초석이 담배인삼공사 공주지점 내에도 2점이 남아 있다. 이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도 건축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다음은 조선시대 충청도 감영 시대의 초석들이 100여개 남아 있다. 방형, 원형, 원주형 막돌형 등 다양한 초석들이 사대부고 교정에 흩어져 있다. 감영의 선화당, 호적고, 내아, 연무청 등 500여 칸의 건물들의 초석들이다. 이를 보고 있어도 감영 시대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1837년 제작되어 충청도 감영에서 사용하던 금영 측우기가 기상청에 보관되어 있다. 그 다음은 일제강점기의 유적으로 충청남도 도청 정문과 신사 터가 남아 있다. 정문은 지금의 사대부고 정문이며 신사 터는 현재 사대부고 기숙사 뒤에 그 흔적남아 있다. 또한 신사를 관리하던 가옥도 남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잔영들이다.
공주 역사의 보고인 충청감영의 옛 터를 보존 관리하기 위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본인은 2000년 공주 시청에 이미 충청감영 옛터 정비계획을 의뢰한 적이 있지만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때 가장 먼저 충청감영의 표석을 세우자고 제안하였다. 이제라도 하루 빨리 충청감영의 표석을 세워야 한다. 많은 시민들 그리고 사대부고를 찾는 학부모들이 충청감영의 유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 둘째, 충청감영 테마 학습 또는 답사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공주 시민은 물론이고, 공주에 유학 온 학생들이 충청감영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또한 충청도 감영에 있던 금영 측우기를 복사하여 각 기관에 전시하였으면 한다. 그 측우기가 공주의 감영의 상징물로 알려 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루 속히 충청감영의 옛 터에 흩어진 초석들을 정리하여 작은 감영 공원을 조성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현장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