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향토 자료관을 세우자
최근 우리 고장 선사 유적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먼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장암리 조개무지의 발굴이다. 이 유적은 장항 군장공업단지 산업도로 공사 중 발견되어 1995년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발굴하였다. 조사 결과, 빗살무늬토기, 간돌칼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이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을 본 사람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장암리 신석기 유적은 우리 고장 서천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중요한 곳이다.
또 1995년 서해안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부근인 서천 오석리 유적의 발굴이다. 오석리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석관묘, 토광묘 옹관묘 주거지, 원삼국시대 토광묘, 옹관묘 더불어 성격이 불분명한 소토층을 비롯한 구덩이 등이 발굴되었다. 출토 유물은 마제 석검 무문토기, 석촉, 석부 등 다수의 석기와 닭모양 토기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오석리 유적 유물 역시 공주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 서천 사람들은 거의 볼 수 없는 실정이다.
1998년에는 종천 당정리 유적이 발굴되었다. 당정리 유적은 서해안 고속도로 매립토를 파내던 중 유적이 발견되어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유적이다. 이 유적 역시 마한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주구묘가 30여기 발견된 유적이다. 또한 돌도끼, 화살촉, 가락바퀴, 토기 등 다수의 유물이 발견된바 있다. 그러나 이 유적 유물 역시 서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곳에 보관되어 있다.
그 외에도 마서 한성리 마한시대 유적을 들 수 있다. 한성리 산성을 중심으로 넓게 분포한 이 유적은 1992년 서천군 향토문화연구회에서 발견하여 부여박물관에 신고함으로 알려졌다. 한성리 선사 유적은 1996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발굴을 하였다. 역시 무문토기와 석기류가 주로 출토되었다. 또한 비인면 선도리 선사 유적 역시 1996년 발굴된 유적인데 아직 그 성격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 유적 역시 꾀 많은 토기편이 출토되어 비인 지역의 선사 유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1998년에는 마서 송내리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장항 서천간 산업도로 공사중에 발견되어 발굴을 실시한 유적으로 당시 농경 문화의 성격을 밝혀 낼 수 있는 자료를 획득하였다. 또한 많은 토기와 석기류의 출토는 당시 생활상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백제 고분 발굴은 1988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술자료를 얻기 위해서 발굴한 비인 칠지리 고분이 있다. 발굴고분은 16기로 백제 시대인 6세기 고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백제 시대 토기, 은제 비녀 등 백제 지방세력의 실태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2003년 현재 지금까지 소개한 유적의 발굴보다 훨씬 큰 규모의 발굴이 시초면 봉선리, 풍정리 일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 서천 공주간 고속도로 통과 지역으로 예상되는 지점으로 봉선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는 동사면이다. 유적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시초면사무소에서 봉선지를 향해 가다 풍정리 방향으로 꺾어지는 지점부터 풍정리 산성까지이다.
아직 표토만 제거한 상태이어서 유적의 성격을 말할 수는 없지만 청동기시대부터 마한 백제 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주변에 풍정리 산성이 있어 쉽게 그 유적의 성격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서천에서 발굴한 유적 중 최대 면적이다. 이 유적이 대부분 산의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훼손이 덜되어 많은 학술적인 자료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회에 군민들이 관심을 갖고 이 봉선리 유적 발굴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서천군은 우리 지역에서 발굴이 이루어지면서도 이에 대한 향후 활용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비록 발굴하는 사람들이 우리 지역 사람들이 아니지만 군수, 군의원들이 방문하여 이들의 발굴을 격려해야 한다. 그리고 발굴상황에 따라서 차후 우리 군차원에서 지금까지 발굴한 선사 유적을 중심으로 서천 향토자료관 건립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매번 발굴 만하고 우리 지역에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면 우리는 늘 문화가 없는 고장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봉선리 유적 발굴을 기점으로 관계 법령 검토와 함께 다각적으로 우리 고장에 선사 유적 및 백제 자료관 건립을 노력해야할 것이다. 말로만 백제개발 영역권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보다 하나하나 자료가 모아 져야한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국립선사박물관이 없다. 차제에 우리 지역에 선사 박물관이나 향토 자료관을 준비할 때 다른 지역에 앞서 갈 수 있다. 관광서천에 지역의 문화마인드가 빠져 있다고 한다. 그것은 서천에 오는 관광객들이 축제만 보고 갈 뿐 서천의 문화를 보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당장 보다 멀리 보면서 문화 서천을 설계하였으면 한다.
최근 우리 고장 선사 유적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먼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장암리 조개무지의 발굴이다. 이 유적은 장항 군장공업단지 산업도로 공사 중 발견되어 1995년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발굴하였다. 조사 결과, 빗살무늬토기, 간돌칼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이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을 본 사람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장암리 신석기 유적은 우리 고장 서천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중요한 곳이다.
또 1995년 서해안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부근인 서천 오석리 유적의 발굴이다. 오석리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석관묘, 토광묘 옹관묘 주거지, 원삼국시대 토광묘, 옹관묘 더불어 성격이 불분명한 소토층을 비롯한 구덩이 등이 발굴되었다. 출토 유물은 마제 석검 무문토기, 석촉, 석부 등 다수의 석기와 닭모양 토기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오석리 유적 유물 역시 공주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 서천 사람들은 거의 볼 수 없는 실정이다.
1998년에는 종천 당정리 유적이 발굴되었다. 당정리 유적은 서해안 고속도로 매립토를 파내던 중 유적이 발견되어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유적이다. 이 유적 역시 마한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주구묘가 30여기 발견된 유적이다. 또한 돌도끼, 화살촉, 가락바퀴, 토기 등 다수의 유물이 발견된바 있다. 그러나 이 유적 유물 역시 서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곳에 보관되어 있다.
그 외에도 마서 한성리 마한시대 유적을 들 수 있다. 한성리 산성을 중심으로 넓게 분포한 이 유적은 1992년 서천군 향토문화연구회에서 발견하여 부여박물관에 신고함으로 알려졌다. 한성리 선사 유적은 1996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발굴을 하였다. 역시 무문토기와 석기류가 주로 출토되었다. 또한 비인면 선도리 선사 유적 역시 1996년 발굴된 유적인데 아직 그 성격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 유적 역시 꾀 많은 토기편이 출토되어 비인 지역의 선사 유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1998년에는 마서 송내리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장항 서천간 산업도로 공사중에 발견되어 발굴을 실시한 유적으로 당시 농경 문화의 성격을 밝혀 낼 수 있는 자료를 획득하였다. 또한 많은 토기와 석기류의 출토는 당시 생활상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백제 고분 발굴은 1988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술자료를 얻기 위해서 발굴한 비인 칠지리 고분이 있다. 발굴고분은 16기로 백제 시대인 6세기 고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백제 시대 토기, 은제 비녀 등 백제 지방세력의 실태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2003년 현재 지금까지 소개한 유적의 발굴보다 훨씬 큰 규모의 발굴이 시초면 봉선리, 풍정리 일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 서천 공주간 고속도로 통과 지역으로 예상되는 지점으로 봉선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는 동사면이다. 유적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시초면사무소에서 봉선지를 향해 가다 풍정리 방향으로 꺾어지는 지점부터 풍정리 산성까지이다.
아직 표토만 제거한 상태이어서 유적의 성격을 말할 수는 없지만 청동기시대부터 마한 백제 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주변에 풍정리 산성이 있어 쉽게 그 유적의 성격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서천에서 발굴한 유적 중 최대 면적이다. 이 유적이 대부분 산의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훼손이 덜되어 많은 학술적인 자료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회에 군민들이 관심을 갖고 이 봉선리 유적 발굴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서천군은 우리 지역에서 발굴이 이루어지면서도 이에 대한 향후 활용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비록 발굴하는 사람들이 우리 지역 사람들이 아니지만 군수, 군의원들이 방문하여 이들의 발굴을 격려해야 한다. 그리고 발굴상황에 따라서 차후 우리 군차원에서 지금까지 발굴한 선사 유적을 중심으로 서천 향토자료관 건립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매번 발굴 만하고 우리 지역에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면 우리는 늘 문화가 없는 고장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봉선리 유적 발굴을 기점으로 관계 법령 검토와 함께 다각적으로 우리 고장에 선사 유적 및 백제 자료관 건립을 노력해야할 것이다. 말로만 백제개발 영역권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보다 하나하나 자료가 모아 져야한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국립선사박물관이 없다. 차제에 우리 지역에 선사 박물관이나 향토 자료관을 준비할 때 다른 지역에 앞서 갈 수 있다. 관광서천에 지역의 문화마인드가 빠져 있다고 한다. 그것은 서천에 오는 관광객들이 축제만 보고 갈 뿐 서천의 문화를 보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당장 보다 멀리 보면서 문화 서천을 설계하였으면 한다.
'▒ 한산자료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천면에는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 (0) | 2007.01.10 |
---|---|
공주 역사의 寶庫 충청감영 터 (0) | 2007.01.10 |
중고제의 명창 도만리의 이동백, 빗그뫼의 김창룡 (0) | 2007.01.10 |
장항 발전 포럼 (0) | 2007.01.10 |
장항정신을 보여 주자! (0) | 2007.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