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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 열녀 모음

천하한량 2007. 1. 9. 20:01

인물이름     강릉유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강릉유씨(江陵劉氏) 유재도(劉載燾)의 딸이고 달성서씨(達珹徐氏) 서재환(徐在煥)의 처다.
15세에 시집와서 시부모를 효심으로 봉양하고 남편을 공경으로 섬겼으나 남편이 고질병에 걸림으로 그녀는 천신께 빌기를 자신에게 대신 병을 얻게 하여 달라고 빌었으며 남편의 임종이 가까워오자 단지하여 피를 먹여 잠시 동안은 회생하였으나 죽고 말았다. 위로는 시부모 두 분과 아래로는 두 자녀가 있어서 죽지를 못하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가산을 이루고 가문을 보전하니 동리에서 천거하여 사림(士林)에서 칭찬하고 표창하였다.


 
인물이름     경주김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경주김씨 김동환(金東煥)의 딸로서 남원양씨(南園梁氏) 양재혁(梁在赫)의 처다. 남편이 병석에 눕게 되어 오래동안 병과 싸우다가 끝내는 죽음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손가락을 찢어 피를 내서는 남편의 입에 넣어 위기를 면하였으며 다시 위기에 이르자 다리 살을 베어 피를 먹이는 등 하였으나 끝내 남편은 죽고 말았다. 남편이 죽음으로써 바로 뒤를 따르려 하였으나 시부모와 조카들을 생각하여 살아 남아서는 일생동안 시부모를 위해 희생하였으며 조카를 양자로 들여세워 가문을 잇게 한 열녀다.


 
 인물이름     경주최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한산이씨(韓山李氏) 이창직(李昌稙)의처다. 남편이 기이한 병에 걸리어 3년을 병석에 누우니 약을 쓰고 신에 빌어 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남편이 위독한 상태에 이르자 그녀는 손가락을 세 번이나 찢는 등 살을 베인 것이 두 차례로 3일의 생명의 연장을 보았고 마침내 남편이 사망함으로 그녀도 따라서 죽으려 하였다. 그러나 시부가 이르기를 네가 죽으면 세 살난 젖먹이의 울음소리는 누가 차마 보겠는가 함으로 죽지를 못하고 그 아이를 키워 그 가문을 잇게한 열녀다.


  인물이름     경주최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장성서씨(將星徐氏) 서태환(徐泰煥)의 처다. 남편이 병에 걸려 날이갈수록 악화되므로 그녀는 하늘에 생명을 대신하기를 빌었고 병세가 위독함으로 숫돌로 손가락을 찢어 피내어 입에 넣으니 2일간 생명이 연장되었다. 남편이 죽으니 뒤따라 죽고자 하였으나 시모가 어린아이를 가리키며 네가 죽으면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하는가 하고 말함으로 죽지를 못하고 시부모를 봉양하고 젖먹이 아들을 크게 양육한 열녀다. 유장(儒狀)이 있다.


 인물이름     고령박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효자(孝子) 박형조(朴亨祚)의 딸이고 한산이씨(韓山李氏) 이규의 처다. 결혼 후 남편이 기이한 병으로 죽으니 그때 박씨도 바로 죽으려 하였으나 아이를 출산한지 3개월이 되므로 죽지를 않고 태연하여 시부모를 안심하였다. 그러나 3일이 지난 후 박씨는 방에 들어가 유서를 써서 단상(丹上)위에 놓고 장롱의 노를 풀어 스스로 횃대에 목매어 죽었다. 유서에는 한자 한자가 모두 시부모를 위로하는 말로 그치는 문장이었다. 유림(유림)들이 그녀의 탁월한 절개에 놀랐고 유장(儒狀)이 있다.


 인물이름     권씨(權氏)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김춘손(金春孫)의 처다. 일찍 그 남편의 상을 당하고 그 후부터는 흰 의복을 입었으며 술과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으며 조석으로 남편의 묘에 올라가 묘를 살피고 슬피 우는 것은 초상때와 같았으며 춘하추동 의복을 꿰매어 그 기일에는 묘소 앞에서 불사르기를 종신토록 하여 마치 남편이 곁에 있는 것처럼 일생을 바친 열녀다. 그의 열행에 감동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며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인물이름     김해김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한산이씨(韓山李氏) 이창의(李彰儀)의 처다. 16세에 이씨가문에 시집와서 겨우 수년지나 남편의 상을 당하니 뒤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당시 80이 된 늙은 시조모가 말하기를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다고 함으로 안색을 가다듬어 눈물을 거두고 부지런히 효도와 봉양을 하고 시조모가 병에 위독할 때는 얻기 어려운 약재를 구해서 효력이 나타나게 하는 등 효행을 베풀다가 시조모가 죽고 그 장사가 끝나는 날 가만히 자기방에 들어가 목매어 죽었다. 고종(高宗) 24년(1887)에 읍에서 천거하여 표창하였다.


 
인물이름     나주정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나주정씨 정세언(鄭世彦)의 딸이고 전주최씨(全州崔氏) 최순열(崔舜烈)의 처다. 남편이 기이한 병에 걸려 10여년 동안을 병석에 있었으나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백방으로 뛰었으며 끝내는 남편이 죽음의 경지에 이르자 다리 살을 베어 약재로 사용하니 10여일 동안 연명하다가 숨졌다. 그녀는 장사를 예제(禮制)에 따라 하고는 위로 아래로 모범이 되는 행동으로 일생을 마친 열녀다. 그후 고향의 유생들이 명예로 알고 천거하여 군에서 칭찬하는 글을 받았다.


 

  인물이름     박씨(朴氏)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여산송씨(勵山宋氏) 송복순(宋福純)의 처다. 부친이 병에 걸린지 5년에 손가락을 찢어 피내어 입에 넣어주고 위기를 면하였으며 부친의 임종에 이르러서도 똑같은 효행으로 피를 넣으니 수일동안 생명이 연장되었다. 그 후 남편이 죽은 후에도 거상을 예제에 의하여 하니 고통이 심하여 살은 마르고 뼈만 앙상하여 스스로 지탱을 못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성심껏 슬픔을 멀리하고 스스로 죄인임을 자처하면서 열행을 거듭함으로 읍에서 열녀로 천거하여 감영(監營)에서 표창하였다.


 
인물이름     용궁전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용궁전씨(龍宮全氏) 전익환(全益煥)의 딸로서 고령박씨(高靈朴氏) 박병희(朴炳熙)의 처다. 나이 겨우 20세에 그 남편이 병이 있어서 여러 해를 약시중하는가 하면 자정의 샘물이 병 치료에 좋다하여 여러날을 자정에 물을 떠서 병 치료에 임하는 등 하였으나 남편의 병세는 위독해짐으로 임종이 가까웠을 때는 손가락을 찢어 피를 입에 넣으므로 수일을 연명하였으나 남편은 운명하고 말았다.
그후 그녀는 시부모에게 말하기를 죄가 많아 남편은 죽고 가문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니 뒤를 이을 사람을 정하여야 한다고 건의하였더니 네가 정하라 함으로 종질 은배(殷培)로 정하고 3년간을 슬픔속에 지내다가 담제의 날 저녁에 양자 은배(殷培)와 며느리를 앞에 하고 이별하여 말하기를 고인이 된 너희들 아버지가 죽던 날 목숨을 끊어야 했으나 가문의 대가 걱정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는 너희들이 가문을 잇게 될 것이고 담제도 끝났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 하고는 식음을 전폐하다가 죽었다.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의 선문이 있다.


 
 인물이름     윤씨(尹氏)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나계문(羅繼門)의 아내이고 사성(司成) 윤기(尹耆)의 누이동생이다.
남편 나계문이 홍윤성(洪允成)의 집종에게 죽음을 당하자 이를 목격한 그녀는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탄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마침 세조(世祖)가 온양에 행차할적에 윤씨는 스스로 탄원서를 써서 억울한 죽음에서 면해 줄 것을 호소하니 말을 순하고 이치는 곧으니 세조는 딱하게 여기고 홍윤성에게 종을 죽일 것을 명하고 쌀을 내려주고 호세(戶稅)를 면하게 하였다.


 인물이름     평산신씨-추송엽의 처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추계추씨(秋溪秋氏) 추송엽(秋松燁)의 처다.

젊은 나이에 남편의 병이 위독하여 손가락을 찢고 다리를 베어 아내의 도리를 다 하였으나 남편은 성의도 모르고 죽었다.

과부가 된 후로는 시부모 섬기기를 더욱 심도있게 하였으며 조카를 양자하여 예의의 기범으로 가르쳐 어미 된 도리를 다하니 그 정렬(貞烈)과 탁월한 행실은 늙어가면서 더욱 심오하여 여러 사람의 말로 비가 세워졌고, 이웃 여러 사람들로부터 조정에 알려져 조정에서 그녀의 모범된 행동을 칭찬하고 표창하는 글이 있었다.


  인물이름     평해구씨-나규재의 처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나주나씨(羅州羅氏) 나규재(羅圭在)의 처다.

그녀는 시집온 첫날밤 저녁에 촛불도 끄기 전에 남편이 숙환으로 코피를 쏟거늘 원삼(元衫)과 새버선으로 그 피를 수용하고 그날 저녁 남편은 졸도하여 죽으니, 시집으로 가서 남편의 통포 그림자만 본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조카 나석윤(羅錫胤)을 양자로 삼으면서 정절을 굳게 지켜 85세까지 장수하고 죽으면서 유언하기를 피묻은 원삼과 버선을 내관 속에 넣으라 하고 눈을 감았다.

그후 석윤의 처 청주한씨가 태하(台河)를 출생하고 아버지 석윤은 25세에 사망하였고 태하는 김해김씨와 결혼하여 20세에 자식도 없이 죽으니 젊은 과부 셋이 개가하지 않고 삼대에 정렬을 지켜 명문의 가풍을 세웠다고 세평이 나 있었다.
 
 
인물이름     평해구씨-노경호의 처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교하노씨(交河盧氏) 노경호(盧經鎬)의 처다.
시집 온지 해를 넘겨 갑자기 남편이 기이한 병으로 병석에 눕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남편의 시체를 놓고도 슬퍼하는 안색도 없이 그녀는 손수 염습에 사용할 물품을 만들며 사부모에게 말하기를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보이지 않으므로 부엌으로 가서 찾으니 이미 간장을 두어 사발 마시고 쓰러져 있어 방에 안아다 놓았으나 목숨은 끊어져 있었다.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이 그녀를 위해 열녀기를 썼다.


 인물이름     풍양조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안동권씨(安東權氏) 권대식(權大植)의 처다. 결혼한지 1년이 지나 남편이 죽으니 조씨는 자녀가 없었으므로 죽은 남편을 뒤따라 죽으려 하였다.

그러나 집에는 홀몸인 시모가 있고 집안의 대를 이를 사람이 없음을 통탄한 나머지 밤을 새워 길쌈을 하며 시모봉양을 지성으로 하고 친척의 아들 병수(炳秀)를 양자 삼아 집안의 대를 이으면서 행복속에 말하기를 시모의 나이 100살이 되는날 나의 명이 곧 그치는 날이라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시모보다 먼저 죽으니 이웃에서 탄식하며 찾기 어려운 열녀라 하였다.


 인물이름     한산이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안동권씨(安東權氏) 권관수(權觀洙)의 처다.
권씨집에 시집오니 본래가 빈한한 집이라 끼니가 간데 없었다. 그녀는 시집올 때 지참해 온 의상, 패물을 팔아 끼니를 이어 나가다가 또한 불행히도 남편이 타계함으로 불행이 겹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을 따라 죽으려 생각하였으나 젖먹이 대식이를 출생한 지 8개월이라 돌이켜 생각하고 아들의 양육과 시모의 봉양에 최선을 바친 열녀다.


 인물이름     한산이씨     지역     서천군 
 
    구분     열녀 
 
    시대     조선(충청도) 
 
 
   내용
  
문화유씨(文化柳氏) 유진영(柳鎭英)의 처다. 유씨집에 시집와서 3년간 효도로써 시부모를 받들고 예로서 남편을 공경하니 여러사람이 우러러 보는 아내였었다.

그러나 남편이 병석에 눕게되고 어려운 고비가 닥쳐오자 그녀는 하늘에 비는 정성과 약을 구하는 정성으로 병간호를 하였으나 끝내 하늘은 착한자를 돕지않고 마침내 죽게되니 그녀는 하늘의 무심함을 탄하고 슬퍼한 끝에 내가 살아있는 것은 여자가 행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부엌에 들어가 독약을 먹고 죽음으로써 그 절개를 온전히 하였다. 고향사람들이 표창하고 넋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