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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면 단상리 전설 (단정이 절개나무)

천하한량 2007. 1. 9. 20:03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단상리를 찾아가서 대나무가 우거져 있었다는 대섭안 마을에 들려 북쪽을 바라보면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당골 또는 당곡이라고 부르는데 골짜기에 오르면 서낭당이 있었고 옛날에는 대나무 숲에 가려졌으나 우뚝 솟은 느티나무가 서 있었는데 이 나무를 통칭 절개나무라고 불렀다. 한 여인이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자주 들렸으나 이 나무 아래에서 죽은 남편의 혼령과 더러는 상면도 하였다는 이 느티나무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려 있다.

조선시대 세조 때 이야기라 전한다. 어려서부터 곧은 선비의 집안에서 자란 윤씨는 나씨 집안에 출가하여 부지런히 살림을 꾸려 나갔다. 어른들의 덕택으로 한문도 배우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쳤던 그녀는 역시 선비 집안에서 자란 낭군인 나씨와 글공부도 같이 하며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나라에 이변에 생기듯 어린 조카를 내쫓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이 왕이 되어 나라가 어수선할 때 나씨는 그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 생각하여 여러 선비들과 함께 의논하여 어린 임금을 구하려다가 그만 새로 왕을 들어 앉힌 힘 가진 자의 비족들에게 끌려가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단란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던 윤씨는 낭군의 죽음을 당하여 눈앞이 캄캄해지는 절망감을 느꼈으나 시신을 묻을 때에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굳게 다짐했다.

「선비는 신의에 살아야지.」

그녀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그릇된 행동을 일삼는 당시의 조정 관리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낭군이 죽은 후 상복을 한시도 벗지 않았다.

하루는 깊은 밤에 가물거리는 등잔불 아래에서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그녀가 앉아서 눈을 붙이다가 꿈을 꾸는데 꿈속에 낭군이 산신령과 어느 호젓한 대나무 밭을 헤치고 와서는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서 바둑을 두는 것이었다. 틀림없는 그녀의 낭군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여보」

하고 불렀었다. 꿈속에서 낭군이 자기를 바라보는 동시에 낭군의 품으로 달려가는데 잠이 깨었다. 그녀는 괴이한 꿈이라 생각하고 이튿날 아침 대밭을 찾으면 낭군과 만날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품고 한산 땅의 대밭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곳에 이르러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대밭과 느티나무를 발견하였다.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고 다음날부터 서낭당에 올라 산신께 정성을 바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깊은 밤에도 찾아와서 촛불을 켜 놓고 저승에서 사는 낭군의 편안함과 낭군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했었다. 대나무 밭에서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들었으나 꼼짝하지 않고 보통 때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주룩주룩 눈물까지 흘리며 몇 날 며칠동안 서낭당에서 정성을 계속 드렸다.

바람이 찬 겨울이 밀려오고 들에는 눈이 쌓였으나 흰 소복차림의 그녀는 예전처럼 지극하게 정성을 드리고 있었다. 몹시도 추운 그날 대나무 숲이 흔들리면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니 그녀 앞으로 낭군이 웃으면서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녀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하며

「여보」

부르면서 달려가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듯 산신령이 나무 위에서 내려와 길을 가로막고

「대체 무슨 일을 가르쳐 줘야만 하는가. 선비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자는 건가! 낭군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으면 혼령을 달래줘야 할게 아닌가?」

하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윤씨는

「이렇게 산신령님께 축원을 드리는 것은 다 제 낭군을 위한 일입니다.」

「허허 무슨 소리인고. 칼에는 칼, 창에는 창이 있어야 하는 법. 이렇게도 모를까! 원한을 달래는 길은 그 방법 뿐이야. 혼령을 좀 쉬게 해줘야지.」

산신령은 이 말을 남기고는 낭군의 팔을 끌고 사라졌다. 사라지는 산신령과 낭군을 바라보고 그녀는 눈을 똑바로 뜨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복수를 해야지. 산신령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녀는 그 길로 집에 내려와서는 여장을 준비하고 그 이튿날 집을 떠나 한양에 올라갔다.

한양에 올라가서 낭군을 죽인 비족의 우두머리가 수레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며 지나가는 것을 보며 울분을 겨우 참기도 했다. 그녀는 한양에서 임금님이 충청도에 있는 온천으로 행차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성환역정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온천으로 행차할 때에 미리 써둔 상소문을 나졸들의 뿌리침을 물리치고 임금님께 올렸다. 임금님께 호소하여 낭군을 죽인 비족들을 잡아다가 낭군에게 그들이 한 것처럼 그들 모두 저자에서 능지처참의 형벌을 받게 하였다. 낭군의 죽음에 대해서 복수를 한 윤씨는 그 길로 돌아와서 서낭당 느티나무를 찾았다. 한밤 중 촛불을 켜고 앉아 있는 그녀의 두 눈엔 두 줄기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밤은 점점 깊어만 갔다. 깜박 잠이 들었을 때

「여보.」

낭군이 부르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눈을 떴다. 그녀 앞에는 무릎 꿇은 남편이 환히 웃고 있었다. 그녀는 복받치는 울음을 참을 길 없어서

「여보, 여보」

하고 무릎 속에 파고들었다.

「이제야 제대로 상봉을 하는군. 하...하...」

하는 산신령의 소리도 들렸으나 그것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한참만에 정신을 차려보니 조금 전까지 같이 있던 낭군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후 그녀는 산신령이 정해주는 날에는 서낭당 나무아래에서 저승의 낭군과 정겨운 상봉을 나누다가 그녀도 여생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한 여인이 이 나무에 지성을 바치고 절개를 지켰다 하여 이 나무를 절개나무라 불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