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이상해졌다.」
「아니야 나라가 망한 것이 틀림없나봐.」
「어제도 원님은 행차하던데」
「참 이상하단 말이야. 어른들은 입을 딱 다물고 말이야.」
「하여튼 싸움놀이나 끝내자.」
「그래 하던 놀이는 끝내고......야......」
건지산 중턱에 모였던 아이들 열 대여섯 명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산으로 올라간다. 산 위에서는 아이들이 숨어 있다가 나무사이로 내려오며 아래에서 올라간 아이들과 부딪히며 몽둥이를 들고 한참동안 싸우다가 다음엔 맨손으로 허리를 붙잡고 넘어지며 뒹군다. 그들이 매일 한번씩 하는 싸움놀이였다. 치고 받고 하다가 상대방이 모두 기진맥진하여 쓰러질 때까지 싸움놀이는 계속되었다.
싸움놀이를 끝내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서로가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나라안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야...우리는 언제나 군사로 뽑아준대.」
한동안 (童顔)의 아이가 소리쳤다.
「우리들만 나가도 산성 하나는 지킬텐데 말이야.」
「글세 말이야. 희양땅 그 나무장사도 군사가 되었대.」
「하...하...그 군사보다는 내가 훨씬 싸움을 잘 하겠다.」
「우리 이왕이면 원님 앞에 가서 싸움터에 보내달라고 사정을 해볼까?」
「언제는 뭐 안해 보았나, 또 그 소리일껄.」
「무예를 갈고 글을 읽고...」
「원님 목소리하고 똑 같은데 하...하」
그들이 산에서 내려와서는 내일 만나기로 하고 뿔뿔이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간 아이들은 한결같이 근심에 쌓여 있는 부모님들을 보고 그들도 수심에 잠기게 되었다. 오늘 아침에 사비성은 나당군에게 점령되었으며 의자왕은 도망가다가 돌아와서 항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오늘에 와서야 처음 입을 열었다.
「백제는 이제 나라가 없어졌다. 오늘 아침에 임금님이 항복하셨단다.」
이 말을 전해들은 아이들은 믿어지지 않는 듯 처음엔 머리를 갸우뚱거리다가 성안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시름에 잠기게 되었다. 그들은 예전처럼 싸움놀이하는 시간에 꼭꼭 산에 모였다. 아침에 모이면 한 패는 산으로 올라가고 한 패는 아래에서 올라가면서 부딪히는 곳에서 한바탕 싸움을 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며칠 산에 올라서서는 멍하니 하늘과 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다가 성안에서는 우리가 싸워서 백제를 일으켜야 한다고 사람들이 궐기하였을 때 그들은 따라서 다시 싸움놀이를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머리를 칡순으로 질끈 동여매고 북을 두 개 구해와서는 아래 위에서 북을 치면서 격돌하는 싸움놀이를 했었다.
「저기 당나라 놈들이다.」
그들은 산과 산아래에서 외치면서 북을 치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싸움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사비성은 떨어졌으나 그들이 사는 이곳엔 도승과 왕자 그리고 좌평 한 분이 있어서 성안 사람들은 곧잘 뭉쳐서 싸움터로 나갔고 싸움터로 나갔다가는 환호성을 지르며 개선도 하곤 했었다.
그럴때면 그들은 더욱 신나서 싸움놀이를 했었다. 그들의 싸움놀이는 드디어 이 곳에 머무르고 있는 왕자에게도 알려졌다. 그리하여 왕자가 직접 그들을 찾아오게 되고 그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그들에게 많은 음식도 차려 주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날이 지나면서 이곳에서 일어난 군사들의 사기가 시들시들해져 갔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무예만 열심히 닦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서 흙에 범벅이 되어 싸우고 있을 때 왕자가 찾아왔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왕자는 무척 초라하게 보였었다. 그래서 한 아이가
「왕자님 기운을 차리십시오.」
하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왕자는
「나는 그대들을 믿노라. 그대들만을 믿노라.」
하고 손짓을 함으로 아이들은 왕자가 손짓하는 대로 몽둥이를 들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그 날부터 왕자를 지키는 군사가 되었다. 왕자의 군대는 잘 싸웠으나 서로 의견이 달라서 끝내는 싸우다가 왕자만 외롭게 남았을 때였다. 군사와 성안의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자꾸 줄어들고 있었다. 싸움터에 나간 사람들은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성안이 텅텅 비어 갔었다. 왕자는 군사를 독려하였으나 떠나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즈음 성안 사람들은 성을 비우면서 몰래 피난을 가게 되고 마을엔 나당군이 쳐들어왔다.
왕자는 갯가로 가면서 군사를 부르고 있었다. 왕자를 지키던 아이들은 성을 지키라는 왕자의 분부대로 성벽에 올라서 싸우기 시작했다. 나당군은 무수하게 쳐들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성안이 적에게 포위되었음을 눈치채고는 뭉쳐서 쏜살같이 성을 빠져 나왔다. 빠져 나오면서도 적과 싸웠다.
어느덧 그날 해가 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랫녘에서 밥을 먹고는 야습을 하기 시작했다. 지형을 잘 아는 그들은 마치 성난 호랑이와 같이 적진지로 들어가서 싸웠다. 어린 몸이었으나 잘 싸웠다. 얼마동안 싸우다가 그들은 후퇴하여 건지산을 거쳐 동자북 뒷산으로 올랐다. 그들이 산에 올랐을 때는 대부분이 죽고 부상당한 아이들까지 합쳐 열 아홉 명이었다. 그들은 그곳이 자신들의 죽을 자리라고 생각하고 흙을 파고 돌을 놓아서 벽을 쌓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라 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서서히 움직이며 다가오는 적의 불빛만이 보일 뿐이었다.
동이 트자 그들은 옷을 가볍게 동여매고 앞을 바라보았다. 적이 새벽부터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적이 가까이 오자
「북을 쳐라. 적이다.」
하고 한 소년이 소리를 쳤다. 부상당한 소년들도 창칼을 들고 싸웠다. 북소리는 요란하게 울리고 아우성소리 신음소리가 들렸으나 해가 뜨면서 북소리도 멈췄으며 아우성 소리도 꺼졌다.
마지막 남은 열 아홉 명의 동자들이 북소리와 함께 모두 전사한 것이다.
싸움이 끝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번쩍 했다. 모진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 바람과 빗소리와 천둥소리 가운데서 산의 모양도 변해갔다. 열 아홉 명의 아이들 시체는 자연스럽게 땅 속에 묻히게 되었으며 그들의 시체가 모두 묻혔을 때 북소리와 빗소리도 멈췄다. 이렇게 해서 주류성의 어린 동자들 열 아홉 명은 땅에 묻혀갔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동산리에 가면 동자북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고 뒷산이 있다. 동자가 북을 치는 형세라 하여 동자북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옛날에는 마을 뒷산이 상당히 높은 산이었으나 열아홉명의 동자가 묻힌 뒤부터는 차츰 낮아져 간다 한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에는 땅속에서 북소리가 들려온다는 마을이다
「아니야 나라가 망한 것이 틀림없나봐.」
「어제도 원님은 행차하던데」
「참 이상하단 말이야. 어른들은 입을 딱 다물고 말이야.」
「하여튼 싸움놀이나 끝내자.」
「그래 하던 놀이는 끝내고......야......」
건지산 중턱에 모였던 아이들 열 대여섯 명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산으로 올라간다. 산 위에서는 아이들이 숨어 있다가 나무사이로 내려오며 아래에서 올라간 아이들과 부딪히며 몽둥이를 들고 한참동안 싸우다가 다음엔 맨손으로 허리를 붙잡고 넘어지며 뒹군다. 그들이 매일 한번씩 하는 싸움놀이였다. 치고 받고 하다가 상대방이 모두 기진맥진하여 쓰러질 때까지 싸움놀이는 계속되었다.
싸움놀이를 끝내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서로가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나라안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야...우리는 언제나 군사로 뽑아준대.」
한동안 (童顔)의 아이가 소리쳤다.
「우리들만 나가도 산성 하나는 지킬텐데 말이야.」
「글세 말이야. 희양땅 그 나무장사도 군사가 되었대.」
「하...하...그 군사보다는 내가 훨씬 싸움을 잘 하겠다.」
「우리 이왕이면 원님 앞에 가서 싸움터에 보내달라고 사정을 해볼까?」
「언제는 뭐 안해 보았나, 또 그 소리일껄.」
「무예를 갈고 글을 읽고...」
「원님 목소리하고 똑 같은데 하...하」
그들이 산에서 내려와서는 내일 만나기로 하고 뿔뿔이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간 아이들은 한결같이 근심에 쌓여 있는 부모님들을 보고 그들도 수심에 잠기게 되었다. 오늘 아침에 사비성은 나당군에게 점령되었으며 의자왕은 도망가다가 돌아와서 항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오늘에 와서야 처음 입을 열었다.
「백제는 이제 나라가 없어졌다. 오늘 아침에 임금님이 항복하셨단다.」
이 말을 전해들은 아이들은 믿어지지 않는 듯 처음엔 머리를 갸우뚱거리다가 성안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시름에 잠기게 되었다. 그들은 예전처럼 싸움놀이하는 시간에 꼭꼭 산에 모였다. 아침에 모이면 한 패는 산으로 올라가고 한 패는 아래에서 올라가면서 부딪히는 곳에서 한바탕 싸움을 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며칠 산에 올라서서는 멍하니 하늘과 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다가 성안에서는 우리가 싸워서 백제를 일으켜야 한다고 사람들이 궐기하였을 때 그들은 따라서 다시 싸움놀이를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머리를 칡순으로 질끈 동여매고 북을 두 개 구해와서는 아래 위에서 북을 치면서 격돌하는 싸움놀이를 했었다.
「저기 당나라 놈들이다.」
그들은 산과 산아래에서 외치면서 북을 치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싸움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사비성은 떨어졌으나 그들이 사는 이곳엔 도승과 왕자 그리고 좌평 한 분이 있어서 성안 사람들은 곧잘 뭉쳐서 싸움터로 나갔고 싸움터로 나갔다가는 환호성을 지르며 개선도 하곤 했었다.
그럴때면 그들은 더욱 신나서 싸움놀이를 했었다. 그들의 싸움놀이는 드디어 이 곳에 머무르고 있는 왕자에게도 알려졌다. 그리하여 왕자가 직접 그들을 찾아오게 되고 그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그들에게 많은 음식도 차려 주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날이 지나면서 이곳에서 일어난 군사들의 사기가 시들시들해져 갔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무예만 열심히 닦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서 흙에 범벅이 되어 싸우고 있을 때 왕자가 찾아왔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왕자는 무척 초라하게 보였었다. 그래서 한 아이가
「왕자님 기운을 차리십시오.」
하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왕자는
「나는 그대들을 믿노라. 그대들만을 믿노라.」
하고 손짓을 함으로 아이들은 왕자가 손짓하는 대로 몽둥이를 들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그 날부터 왕자를 지키는 군사가 되었다. 왕자의 군대는 잘 싸웠으나 서로 의견이 달라서 끝내는 싸우다가 왕자만 외롭게 남았을 때였다. 군사와 성안의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자꾸 줄어들고 있었다. 싸움터에 나간 사람들은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성안이 텅텅 비어 갔었다. 왕자는 군사를 독려하였으나 떠나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즈음 성안 사람들은 성을 비우면서 몰래 피난을 가게 되고 마을엔 나당군이 쳐들어왔다.
왕자는 갯가로 가면서 군사를 부르고 있었다. 왕자를 지키던 아이들은 성을 지키라는 왕자의 분부대로 성벽에 올라서 싸우기 시작했다. 나당군은 무수하게 쳐들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성안이 적에게 포위되었음을 눈치채고는 뭉쳐서 쏜살같이 성을 빠져 나왔다. 빠져 나오면서도 적과 싸웠다.
어느덧 그날 해가 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랫녘에서 밥을 먹고는 야습을 하기 시작했다. 지형을 잘 아는 그들은 마치 성난 호랑이와 같이 적진지로 들어가서 싸웠다. 어린 몸이었으나 잘 싸웠다. 얼마동안 싸우다가 그들은 후퇴하여 건지산을 거쳐 동자북 뒷산으로 올랐다. 그들이 산에 올랐을 때는 대부분이 죽고 부상당한 아이들까지 합쳐 열 아홉 명이었다. 그들은 그곳이 자신들의 죽을 자리라고 생각하고 흙을 파고 돌을 놓아서 벽을 쌓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라 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서서히 움직이며 다가오는 적의 불빛만이 보일 뿐이었다.
동이 트자 그들은 옷을 가볍게 동여매고 앞을 바라보았다. 적이 새벽부터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적이 가까이 오자
「북을 쳐라. 적이다.」
하고 한 소년이 소리를 쳤다. 부상당한 소년들도 창칼을 들고 싸웠다. 북소리는 요란하게 울리고 아우성소리 신음소리가 들렸으나 해가 뜨면서 북소리도 멈췄으며 아우성 소리도 꺼졌다.
마지막 남은 열 아홉 명의 동자들이 북소리와 함께 모두 전사한 것이다.
싸움이 끝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번쩍 했다. 모진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 바람과 빗소리와 천둥소리 가운데서 산의 모양도 변해갔다. 열 아홉 명의 아이들 시체는 자연스럽게 땅 속에 묻히게 되었으며 그들의 시체가 모두 묻혔을 때 북소리와 빗소리도 멈췄다. 이렇게 해서 주류성의 어린 동자들 열 아홉 명은 땅에 묻혀갔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동산리에 가면 동자북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고 뒷산이 있다. 동자가 북을 치는 형세라 하여 동자북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옛날에는 마을 뒷산이 상당히 높은 산이었으나 열아홉명의 동자가 묻힌 뒤부터는 차츰 낮아져 간다 한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에는 땅속에서 북소리가 들려온다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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