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자료실 ▒

독서, 생각하며 독서하라

천하한량 2017. 7. 20. 13:42
독서, 생각하며 독서하라
어떤 사람은 다섯 수레의 책을 입으로는 줄줄 외면서도,
그 책의 뜻과 의미를 물으면 전혀 알지 못한다.
이는 독서를 하면서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今有人。口誦五車書。
금유인    구송오거서

問其義則冥然莫知者。
문기의즉명연막지자

無他。不思故耳。
무타    불사고이

 


-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서애집(西厓集)』 「배움은 생각하는 것을 주(主)로 함[學以思爲主]」

해설

   류성룡은 『징비록(懲毖錄)』으로 잘 알려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윗글은 「배움은 생각하는 것을 주로 함」의 일부분을 가져온 것이다. 류성룡은 이 글에서 독서를 제대로 하려면 생각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를 거듭하라고 가르친다. 입으로만 줄줄 읊는 수준에 만족하지 말고, 책의 뜻과 의미를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독서를 제대로 하려면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야 한다. 그 책의 뜻과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생각하지 않는 독서로는 책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입으로만 책을 줄줄 읊으면 잠깐은 똑똑해 보이겠지만, 머리에도 남지 않고 마음에도 남지 않는다. 류성룡은 「배움은 생각하는 것을 주로 함」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구이지학(口耳之學)’ 즉, 들은 것을 조금도 곱씹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옮기기만 하는 한심한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고 말했다.

 

   암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건 멋진 일이다. 내 삶의 원칙이 되어줄 문장을 만나는 것만큼 뿌듯한 독서도 없다. 옛 사람들도 책을 반복해서 읽고 열심히 외우면서 독서했다. 하지만 옛 사람들이 책을 반복해서 읽고 열심히 외웠던 건 ‘뜻과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뜻과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암기로 독서를 시작했지만, 뜻과 의미를 이해하며 독서를 마무리했다. 책은 항상 ‘생각’하면서 읽었다.

 

   슬프게도 오늘날 학생들은 책의 뜻과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학교는 암기에만 관심이 있어서 학생들이 모든 책을 입으로만 줄줄 읊게 만든다. 시험을 그렇게 치르고, 성적을 그렇게 매기니, 학생은 자연히 따른다. 뜻과 의미를 깨닫기 위해선 생각에 잠길 시간이 필요한데, 학교는 시간낭비하지 말고 외우기나 하라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독서가 버겁기만 하다. 새로운 책을 만나면 이것도 외워야 하나, 싶을 뿐이다.

 

   독서할 때는 저자가 왜 이런 책을 썼을지, 나는 책의 결론에 동의하는지, 어떤 부분이 와 닿는지, 또 어떤 부분에 반대하는지, 나라면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 바꿔놓았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독서의 주인공은 책도 아니고, 저자도 아닌, 독서를 하고 있는 ‘나’이다. ‘생각하고 있는 나’이다. 생각하며 독서하면, 책은 완전한 나의 것이 된다. 나를 위해 쓰인 책이 되고, 내가 읽기만을 기다려온 책이 된다. 이것이 생각의 힘이다. 이래야 진짜 독서다.

 

   류성룡은 ‘생각한다는 뜻은 참으로 크구나’라며 「배움은 생각하는 것을 주로 함」을 끝마쳤다. 정말, 생각한다는 뜻은 크고도 크다.

글쓴이유  진
학교 밖에서 공부하는 청소년

주요 저서
  • 『지드래곤을 읽다』, 포럼,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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