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고려 때의 문신으로, 자는 자권(子權), 호는 원재(圓齋),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나중에 정공권(鄭公權)으로 개명하였다. 원(元)나라 과거에 급제한 재사(才士)로서, 여말선초(麗末鮮初)에 명성을 떨쳤던 정총(鄭摠)과 정탁(鄭擢)이 그의 아들이다. 낮술에 취해 잠을 자다 깨어나 할 일 없이 그저 창틈에 눈을 대고 지나가는 사람들 숫자나 센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얼핏 다소 엉뚱한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마음이 여유롭고 몸이 한가롭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비가 갠 뒤의 깨끗한 뜰의 모습, 생기를 띠며 자라나는 담장 아래의 풀들 그리고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인물로 이어지는 시인의 시선은 전통적인 동양화를 떠올리게 한다. ‘시 속에 그림이 담겨 있다[詩中有畫]’고 하는 당시풍(唐詩風)의 전형이다. 제3구의 ‘무일사(無一事)’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의미로 무사태평하거나 한가로운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일(一)’자는 같은 의미의 ‘개(箇)’자로 쓰이기도 하고, ‘별다른’이라는 의미인 ‘별(別)’자나, ‘타(他)’자를 쓰기도 한다. 또 ‘전혀 일이 없다’는 의미의 ‘도무사(都無事)’ 등을 쓰기도 한다. 이 시어는 주로 칠언절구의 제3구 끝부분에 위치하는데, 뒤에 따라 나오는 제4구의 행위를 한정하는 역할을 한다. 즉, 아무 일이 없으므로 제4구에 나오는 행위만 하려고 한다는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다. 한시, 특히 근체시(近體詩)는 시조(時調)처럼 글자 수의 제약이 있으므로 긴요치 않은 글자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처소격 조사인 ‘어(於)’ 등은 당연히 생략되고, 말의 인용을 가리키는 ‘왈(曰)’, ‘언(言)’ 등도 자주 생략된다. ‘무일사’의 기법에서는 대체로 제4구에서 ‘오직~만을 일삼고 있다’는 의미의 ‘유(惟)~시사(是事)’라는 의미가 생략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번역하거나 감상할 때도 이런 어기(語氣)를 잘 살리면 한층 더 맛이 있게 된다. 이 시의 제3구는 송(宋)나라의 문호(文豪) 소동파(蘇東坡)의 칠언절구 「춘일(春日)」에 보이는 표현과 흡사하다. 낮술 취기 깨고 나니 할 일이 없어 / 午醉醒來無一事(오취성래무일사) 봄날 졸음 속에서 맑은 봄을 감상할 뿐 / 只將春睡賞春晴(지장춘수상춘청) |
누구나 바라는 여유로움이지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러 그런 여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현실을 부정한 채 이상만 좇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깐이나마 가상현실을 상정하고 대리만족할 수 있는 즐거움, 현대인들이 고인들의 시 특히 짤막한 당시풍의 시를 즐겨 읽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