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선』은 조선 성종(成宗)의 명으로 우리나라의 ‘글’을 집대성한 책이다. 고대, 고려, 조선 초의 시문을 모으고 골라서 133권 45책으로 편찬하였다. 우리나라, 우리 문명(文明)에 대한 자존 의식의 발로였다. 이 『동문선』에 글이 수록된 인물 중에 생몰년이 가장 앞서는 이는 누굴까. 원효다. 원효는 신라 진평왕 대에 태어나 신문왕 대에 입적했다. 진평왕은 드라마로 더 유명해진 선덕여왕의 아버지이고, 신문왕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아들이다. 원효가 태어난 지 올해로 1400년이 되었으니, 실감 나지 않는 긴 시간이 흘렀다. 그가 수많은 책을 저술하였고, 동아시아 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데 대한 설명은 일단 미뤄 두자. 『동문선』에 의하면 원효는 한국 한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동문선』에 수록된 원효의 글은 「법화경종요서(法華經宗要書)」, 「열반경종요서(涅槃經宗要書)」, 「해심밀경소서(解深密經疏序)」, 「진역화엄경소서(晋譯華嚴經疏序)」, 「금강삼매경론서(金剛三昧經論序)」, 「본업경소서(本業經疏序)」 등 6편이다. 모두 각 대승경전에 대해 원효가 찬술한 주석서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각 경전의 제목과 대의를 해설한 이 글들에 대한 이해가 쉽지는 않다. 이 중 「본업경소서」는 보살의 길, 곧 인간의 길에 대해 설한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의 주석서 서문인데, 그 내용 중에 문학적 비유가 돋보이는 위 구절을 뚝 잘라 소개한다. 원효는 이 구절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정해 놓은 길에 집착 말라, 똑같은 인생이 하나라도 있더냐. 태산 같은 자존감으로 자신의 길을 가라. |